미·일 독점 깨진 대반전… 전 세계 도로 삼킬 ‘한국형 자동차 설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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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커넥티드카 시대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누가 더 빠른 차를 만드느냐가 아니라, 누가 차량 소프트웨어의 ‘국제 설계도’를 먼저 쥐느냐의 싸움이다.
한국이 그 전쟁에서 결정적 고지를 선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MSIT)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8월 6일, ITU-T에서 채택된 최초의 소프트웨어 정의 차량(SDV) 국제표준 권고안을 공식 제정했다고 발표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이 번갈아 맡아온 핵심 작업반 의장직까지 한국인이 처음으로 수임했다.
SDV란 무엇인가…’달리는 스마트폰’의 국제 설계도
SDV(Software-Defined Vehicle)는 차량의 기능·성능·서비스를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로 구현하고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개념이다. 스마트폰처럼 구매 이후에도 OTA(무선 업데이트)를 통해 기능이 진화하고, 구독형 서비스 추가도 가능한 구조다.
이번에 ETRI가 개발하고 ITU-T SG21(스터디그룹 21)에서 공식 채택된 권고안은 SDV 서비스 구현에 필요한 세 가지 기능 요소, 즉 응용 기능·서비스 관리 기능·연결 및 네트워킹 기능의 기술 요구사항을 명시한 문서다. 함께 제정된 기술보고서는 SDV 개념·핵심 기술·산업 동향·표준화 방향을 망라해, 각국 정부와 기업이 정책 수립과 기술 개발의 공통 지식 기반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두 문서는 2026년 7월 6일부터 17일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ITU-T SG21 회의에서 공식 제정됐다. 이 권고안은 ITU-T 역사상 최초의 SDV 국제표준으로, 향후 관련 후속 표준의 기준점이 된다.

의장직 탈환…한국, 표준 ‘원저작자’이자 ‘심판’까지 된다
이번 성과에서 문서보다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이 있다. SDV 권고안 연구책임자인 차홍기 ETRI 지능정보표준연구실장이 자율주행 및 차량 멀티미디어 표준화 작업반(Q10/21) 신규 국제 의장으로 선임됐다는 사실이다.
Q10/21 의장은 그간 미국과 일본이 역임해온 자리다. 한국인이 처음 수임한 이 의장직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차 실장은 앞으로 SDV·자율주행 관련 국제표준화 과제를 발굴하고 회의 의제를 설정하며, 표준 승인 절차를 총괄하는 실질적 권한을 갖는다. 한국이 SDV 국제표준의 ‘원저작자’인 동시에 ‘심판’의 위치까지 동시에 확보한 셈이다.
이번 권고안과 기술보고서는 ITU 회원국인 전 세계 194개국의 정책 및 산업 현장에 적용될 전망이다. 제조사 간 규격 차이에 따른 개발 부담이 줄고, 차량 간 서비스 호환성도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표준 전쟁’ 한복판…성과와 과제는 공존한다
한국의 성과는 치열한 다극 경쟁 속에서 나왔다. 같은 SG21 회의에서 중국정보통신연구원(CAICT)은 멀티미디어 데이터 패브릭 시스템 표준 프로젝트를 신규 승인시켰다. SDV뿐 아니라 데이터·콘텐츠·케이블 TV·멀티미디어 인프라 전반에서 각국이 동시에 표준 주도권을 겨루는 전장이 바로 SG21이다.
한편으로 냉정한 시각도 필요하다. ITU-T 권고안은 법적 강제력이 없다. 실제 차량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것은 글로벌 완성차·빅테크·반도체 기업들이다. 표준 문서와 실제 시장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면, 국내 기업이 이 표준을 기반으로 레퍼런스 아키텍처를 구축하고 해외 OEM에 수출하는 실행력이 뒤따라야 한다.
한국이 SDV 국제표준의 원저작자이자 의장국 지위를 손에 넣었다는 사실은 자동차 산업의 소프트웨어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분명한 기회다. 권고안이 ‘설계도’에 머물지 않고 산업 현장의 ‘실행 기준’이 되도록, 완성차·부품·모빌리티 플랫폼 기업의 후속 움직임이 이제 관건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