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포비아’에 배터리 실명제 급물살… 차량 86종 정보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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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발생한 전기차 화재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미래지향적인 첨단기기로 인식되는 전기차가 일순간 재난 수준의 피해를 야기하는 ‘시한폭탄’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국민 모두가 깜짝 놀란 것이다. ‘전기차 포비아’가 확산되면서 소비자 관심이 전기차 배터리 정보에 쏠리자 국내외 10개 자동차 제조사 및 수입차업체는 자사 86개 전기차에 장착된 배터리를 공개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지금까지 화재가 난 전기차 배터리가 무엇인지, 화재에 취약한 배터리는 어떤 것인지에 관한 정보가 명확히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월 1일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벤츠 EQE 350+에서 발생한 화재로 주차장 내부가 새까맣게 그을려 있다. [뉴스1]8월 1일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벤츠 EQE 350+에서 발생한 화재로 주차장 내부가 새까맣게 그을려 있다. [뉴스1]

8시간 20분 만에 진화

전기차 화재는 내연기관차 화재와 발생 양상이 다르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차량 1만 대당 전기차 화재 건수는 1.3대다. 내연기관차(1.9대)보다 화재 발생 빈도는 적지만 안심할 수 없다. 전기차 화재는 ‘열폭주’ 현상을 동반해 단시간에 1000도 이상 고열로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배터리 팩이 방수·방진 처리돼 있어 화재 진화가 어려운 만큼 피해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1~2023년 전기차 화재 건당 재산 피해액은 평균 2342만 원으로, 내연기관차(952만 원)의 2.5배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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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청라 전기차 화재는 8시간 20분이 지나서야 진화됐고, 이로 인해 지하주차장 내 차량 72대가 전소됐으며, 아파트 설비와 배관 등이 녹는 피해가 발생했다. 닷새 후 충북 금산군 공영주차장에서도 전기차 화재가 발생해 관련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해당 화재는 1시간 37분 만에 진화돼 피해가 확산되진 않았다. 문학훈 오산대 미래전기자동차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배터리 내부 단락(쇼트)에 의한 화재였을 개연성이 크다”면서도 “사안이 밝혀질 때까지 시간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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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포비아가 확산하자 완성차업체들은 자사 전기차에 사용된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고 나섰다. 8월 14일 기준 국내 완성차업체 3곳(현대차·기아·KG모빌리티)과 수입차업체 7곳(벤츠·BMW·폭스바겐·스텔란티스·폴스타·아우디·렉서스)이 공개 행렬에 동참했다(표1·2 참조). 최근 화재가 난 벤츠(EQE 350+)의 경우 중국 파라시스 배터리가 장착됐고, 기아(EV6)는 SK온 배터리를 사용했다. 파라시스는 과거에도 전기차 화재와 관련된 이력이 있다. 2021년 중국 베이징자동차그룹(BAIC)이 배터리 화재 우려로 전기차 3만여 대를 리콜했는데, 해당 배터리를 제조한 곳이 파라시스였다. 벤츠의 경우 전기차 다수에 파라시스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화재 건수는 적지만 피해 규모는 커

다양한 전기차 배터리 가운데 화재에 취약한 모델이 따로 있을까. 전기차 배터리는 크게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양극재를 구성하는 물질을 기준으로 하면 NCM(니켈코발트망간),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로 나눌 수 있고, 폼팩터(형태)를 기준으로 하면 파우치형, 각형, 원통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형식마다 장단점이 있는 만큼 배터리 제조사는 필요에 따라 이들을 조합해 배터리를 만든다. 통상적으로 LFP 배터리보다 NCM 배터리가, 각·원통형 배터리보다 파우치형 배터리가 화재에 취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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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재로 불탄 벤츠 EQE 350+와 기아 EV6 역시 ‘파우치형 NCM 배터리’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각 분류군에서 상대적으로 화재에 취약하다고 알려진 모델이다. NCM 배터리는 니켈 함량이 많을수록 에너지밀도를 높여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릴 수 있지만, 동시에 배터리 화재에 취약해지는 문제가 생긴다. 파우치형 배터리는 전기차 형태에 맞춰 배터리를 채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열폭주 현상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전기차 화재 데이터 없어 비교 어려워”

다만 “NCM 배터리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화재에 취약하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전기차 화재와 관련해 구체적인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은 만큼 검증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LFP 배터리가 내열성이 좀 더 강한 덕분에 화재 확산을 방지하는 데는 유리하다”면서도 “화재 사례에 기반한 데이터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NCM 배터리와 LFP 배터리의 안정성을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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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배터리 기업들이 LFP 배터리를 주로 생산하고,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NCM 배터리를 많이 생산하는 점 역시 검증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이 교수는 “전 세계 배터리의 과반을 생산하는 중국산 배터리의 불량률이나 화재 발생률에 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는 점도 NCM 배터리와 LFP 배터리의 비교를 힘들게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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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불량이 어느 시점에 촉발됐는지도 문제의 진단을 어렵게 만든다. 전기차 화재가 배터리 설계 문제로 발생했는지, 제작 혹은 차량 관리 문제로 발생했는지에 따라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NCM 배터리의 화재 위험성이 더 높을 수는 있으나 제작사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는 얘기다. 이 교수는 “배터리 제작 과정에서 불량률을 최대한 낮춰야겠지만, 동시에 화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주차장에 화재 진화 장치를 제대로 갖추거나 배터리관리시스템(BMS)를 강화하는 접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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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전기차 화재로 배터리 품질 보증 및 안전성과 관련해 업계의 책임이 커질 전망이다. 배터리 정보 공개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커진 만큼 완성차업체들이 배터리 제조사에 더 높은 수준의 품질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용·안전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있을까

전기차 화재를 줄이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전고체 배터리를 사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고체 배터리는 양극과 음극 사이에 있는 가연성 액체인 전해질을 불연성 고체 전해질로 대체한 배터리다. 덕분에 화재 위험이 기존 배터리보다 낮다는 장점을 지닌다. 문학훈 교수는 “NCM 배터리와 LFP 배터리 모두 전해질을 사용해 충격 등에 취약하다는 특성이 있다”며 “이들 배터리 모두 화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전고체 배터리를 사용해야 화재 우려도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강병우 포스텍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높은 비용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도 “전고체 배터리를 사용할 경우 배터리의 에너지 용량을 키우는 동시에 화재 위험은 줄일 수 있어 궁극적으로는 이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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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렬 주간동아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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