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숲의 나무는 1초당 18그루 꼴로 사라지고 있다.
전 세계 7000개 가량 있다는 언어도 가히 충격적이다. 2주에 한 개씩 역사의 뒷 페이지를 장식 중이다. 이런 거창한 통계는 접어두더라도 이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시간은 흘러 과거로 사라진다. 한 마디로 소멸(消滅)의 연속이다.
어쩌면 우리도 ‘소멸의 시대’ 속 주인공일지 모른다. 그럼 주인공이 된 만큼 장르를 정해야 한다. 멜로, 스릴러, 액션 등 말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에서는 공포물에 가까운 듯하다. 먼저 언급한 통계는 맛보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일단 통계를 하나 더 살펴보자.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전국 228개 시군구 중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한 곳이 49.6%인 113곳이었다. 소멸위험지역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주민등록연앙인구 자료와 월별 주민등록 인구통계 자료를 이용한 소멸위험지수의 산출 값이 필요하다. 주민등록연앙인구란 한 해의 중앙인 7월 1일을 기준으로 한 인구를 말한다.
여기서 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고령 인구수로 나눠 소멸위험지수를 구한다. 이 값이 1.0 미만이면 위험단계, 0.5에 미치지 못하면 소멸 단계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런데 전국 시군구의 절반 가까이가 소멸위험지역에 들어갔다는 얘기다. 심지어 철옹성 같아 보이던 수도권 인근 도시마저도 소멸위험지역으로 꼽히며 위기감은 높아졌다.
한 마디로 청년들이 시골을 떠나 도시로 모이는 것을 넘어, 인구 자체가 줄어드는 설상가상의 상황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두고 지방소멸, 소멸마을, 한계마을 등으로 정의한다. 아예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기도 했다. 한 마을의 인구 절반이 65세 이상인 경우나 20가구 이하이고, 또 마을 주민 수가 50명 이하일 때 여기에 속한다.
전국방방곡곡을 소개하는 kbs ‘6시 내 고향’이나 ‘일꾼의 탄생’ 같은 프로그램만 봐도 금세 수긍이 간다. 60대가 마을의 대표 격인 이장이나, 청년으로 불리는 곳이 다반사이고, 어린 아이나 청소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것 역시 어렵지 않다. ‘2050년경에는 우리나라 행정구역의 절반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전망이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이런 인구 소멸 현상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은 일찌감치 맞닥뜨렸다. 1990년대 일본의 사회학자 오노아키라 박사는 한계마을이란 개념을 소개하며 위기감을 전했다. 실제로 2008년 정점을 찍은 이후 일본 인구는 계속 감소세이고, 고령화와 지방도시 소멸화는 우편향 중이다.
과연 시간의 흐름과도 같은 인구 소멸 현상을 이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중꺾마,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했다. 소멸에까지 이르는 길을 마냥 지켜볼 수는 없다. 어느 곳에서의 날개짓일지 모르지만 그 여파로 뉴욕에 태풍을 몰고 올 수도 있다. 그 나비효과의 본거지를 향해 떠나자는 이들이 뭉쳤다. 배우자, 그리고 소통하자로 하나 된 이들이다.
이름하여 ‘세상에 하나뿐인 비즈니스 트립(세하나)’으로다. MBN과 SBS에서 18년간 PD로 일하며 세계지식포럼과 D포럼 등 굵직한 행사를 기획한 조미호 대표가 혁신콘텐츠기획사 화제인을 통해 여행 프로그램을 내놨다. 조 대표는 한 가지에 주목했다.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문자나 종이가 세상에 등장하기 전부터 인류가 소통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이야기’였습니다. 비즈니스 등 바쁜 일상 속에서 여행을 위해 시간을 낸다는 것 자체가 어렵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세하나’에서는 좀 더 가치 있게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이야기’를 여행에 담았습니다.”
조 대표의 이 같은 아이디어에 대학교수, 기업 CEO, 정부 관계자, 창업 컨설턴트 등 다양한 이들이 여행에 함께 했다. 이들과 함께 찾은 가냘픈 날개짓의 시작점은 일본의 한 산간마을이다. 전체 인구가 5000명을 갓 넘고, 고령화율이 50%에 달하는 외딴 마을인 도쿠시마현의 가미야마(神山, Kamiyama)다.
사실 도쿠시마현도 생소하지만 가미야마는 더욱 낯설었다. 여기서 이 여행의 특성이 드러난다. 조 대표는 투어 일행에게 가미야마의 다양한 설명을 곁들인 PDF 자료를 SNS 메신저로 살포했다. 바로 소통형 비즈니스 트립을 위해서다. 목적지에 다다를 때까지 설명과 질문답이 잠시도 쉬지 않는다. 지역 얘기를 마치면 바로 일본통 가이드에게 마이크를 넘겨 역사와 사회, 문화 등의 이야기를 전한다. 버스 안이 이야기 천국이 따로 없다.
그렇게 수 시간을 달린 끝에 가미야마에 다다랐다. 버스 안 강의를 통해 가미야마와 관련해 준전문가가 된 여행객의 눈에 들어온 마을의 첫인상은 시골 특유의 분위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고즈넉함 내지는 한적함이랄까. 하지만 그 속은 달랐다. 마치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재료를 조화해 만든 분자요리 같았다.
이곳을 대표하는 사진 한 장은 이미 일본의 한 언론을 통해 보도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젊은 IT 회사 직원이 계곡물에 발을 담근 채 도쿄의 본사와 화상회의로 업무하는 모습이었다. 도시, IT, 젊은이, 화상회의까지 계곡물이 있는 시골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하지만 가미야마는 바로 이 점을 공략했다.
단순히 농업이나 삼림업 내지는 수산업 등의 1차산업에 국한하지 않고, 젊고 창의적인 젊은 IT 인재를 유치해 인구 구성의 질을 높이기로 한 것이다. 사람을 숫자로 늘리는 게 아닌 가치를 공급해 이른바 ‘창조적 인구 감소(Creative Depopulation)’를 이루고자 했다.
현재 가미야마에는 민간창고를 개조해 위성 오피스로 사용 중인 엔가와 사무소를 포함해 15개사의 사무실이 터를 잡았다. 도쿠시마현은 이들 기업을 위해 고속 인터넷 환경 구축을 지원했다. 최근에는 IT기업은 물론, 예술가, 요리사 등이 자발적으로 이주해 타지 관광객마저 찾아오게끔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도시 재생이라 부르는 지방 창생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이유다. 실제 이날도 몇몇 관광객이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인증샷 찍는 모습이 보였다.
가미야마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주거와 교육 프로젝트로 영역을 확장했다. 육아 세대에게 쾌적한 주거를 제공하는 주택 프로젝트에 지역민이 키운 지역 나무를 사용하게끔 했다. 또 주위 조경은 가미야마 농업 고등학교 학생이 직접 꾸민다. 상생을 하기 위함이다. 아울러 마을 내 유일한 고등학교가 폐교 위기에 몰리자 커리큘럼을 혁신했다. 사회에 나가 바로 적응할 수 있게 지역민이 협력하면서 중학생들의 진학 희망자가 늘고 있다.
이런 노력은 결국 또 다른 기적을 낳았다. 가미야마 1호 위성기업인 디지털 명함 관리 기업 산산이 15세부터 20세까지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창업 전문학교 개교를 결정했다. 오는 4월 문을 여는 이 학교는 엔지니어링, 프로그래밍, 마케팅 등 창업을 위한 과정을 전문적으로 가르친다. 더구나 학비가 전액 무료이다.
조 대표는 갑자기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어 미뤄놨던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이 모든 사업의 계기에 대해서다. 가미야마 마을의 변화는 관(官)이 아닌 민(民)이 주도를 했다며 그 주인공인 건설사 대표 오에미나미씨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2004년 그린밸리 가미야마란 비영리단체(NPO)를 설립해 현재의 가미야마를 있게 하는데 기여했다.
아울러 오에미나미씨의 마음을 움직인 한 인형에 대한 이야기도 이색적이었다. 그 인형 하나 때문에 지금의 가미야마 마을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재미를 돋웠다. 무엇보다 이 거대한 변화가 정부 차원이 아닌 개인 한 사람에서 시작했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뉴스나 경험상으로 공무원이 움직이는 정부 일은 단언컨대 쉽지 않다. 융통성이 아닌 ‘법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업무 속도가 느린 것은 물론, 곳곳에 규제가 도사리고 있어 난관을 헤쳐 나가기란 만만치 않을 테니 말이다. 때문에 관이 아닌 민이 나서서 진행한 것이 가미야마 마을 입장에서는 어쩌면 다행이겠다 싶었다. 나아가 정부 관계자들이 이런 아이디어를 다른 곳에 수용해보면 어떨까란 생각도 스쳤다. 어쨌든 들을수록 볼수록 무릎을 치게 할 만큼 흥미진진함의 연속이다.
닷새간의 수많은 세하나 여행 코스 중 한 곳을 들렸을 뿐인데 벌써 다양한 인사이트가 몸 안에 이식된 느낌이다. 이번 여행의 한 참가자는 “우리 농촌의 문제를 가미야마 사례를 통해 해결할 길이 열릴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고, 또 다른 참가자는 “실제 사업이 어떻게 유지되고 성장하게 될지 앞으로도 더 관심 있게 보고 배울 것”이라고 기대했다. 사람의 눈은 역시나 비슷하다.
세하나의 여행은 줄곧 이런 콘셉트로 이어졌다. 인구 1000명 밖에 안되는 산골 마을에 전 세계 유수의 디자인 어워드를 거머쥔 미래 편의점에선 미래의 비전을, 5대에 걸쳐 150년 넘게 나무통으로 담근 일본 전통 간장을 제조하는 야마모토 야스오 CEO에게선 장인의 품격을, ‘모나리자’ ‘천지창조’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명화를 도자기 벽화로 완벽히 재현한 오츠카 제약의 미술관에서는 생각의 전환을 느낄 수 있었다.
각 스폿별 면면만 들어도 여행의 이름에 딱 맞는다. 세상에 하나뿐인 비즈니스 트립. 사라진다는 ‘소멸’로 시작한 세하나의 여정은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진다. 소멸은 또 다른 탄생의 반대말이기도, 화려한 피날레이기도 하다. 물론 소멸마을에서는 그 둘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테니 말이다.
‘여행을 통해 철든다’는 말이 있다.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나, 타지에서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 등이 마음에 깨달음을 줘서일 테다. 여기에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 새로운 것을 향한 의지 등을 수혈하면 분명 그냥 철이 아닌 ‘강철’이 되리라 믿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간절하거나, 머릿속이 꽉 차 답답한 이라면 세상에 하나뿐인 비즈니스 트립에 탑승해보면 어떨까.
세하나 여행 100% 즐기는 ‘3無3有’
◆ 3無
직함이 없다 = 여행 전까지 있었던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세하나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교수도, 대표도, 팀원도, 40대도, 60대도 모두 ‘님’ 하나로 통일이다.
의전이 없다 = 모두 ‘님’이란 호칭으로 여행 기간 동안 평등생활을 해야 하기에 의례적인 의전 역시 없다. 자신의 짐은 물론 식당에서 밥 먹는 것 등도 모두 혼자 알아서 해야 한다.
자유가 없다 = 보통의 패키지여행에서 있는 ‘자유시간’이란 없다. 꽉 짜인 비즈니스 트립 일정에 쉴 새 없이 달린다. 쇼핑 역시 어렵다.
◆ 3有
얘기가 있다 = 끊임없이 소통한다.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 쏟아진다. 듣고 보고 말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는 것이 좋다. 비즈니스 트립인 만큼 그래야 얻는다.
질문이 있다 = 이곳에서 만큼은 참여자 모두가 기자를 방불케 한다. 어느 곳에 가든지 질문할, 말할 권리가 또 의무가 있다. 자신이 궁금하고 더 알고 싶다면 망설임 없이 질문해야 한다.
지혜가 있다 = 소통에 소통을 거듭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지식이 쌓이고, 그것이 지혜로 바뀌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의 짜릿함이 이 여행의 진정한 매력이다.
장주영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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