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는 수백년 동안 가업을 유지하는 ‘장수’ 기업들이 많다.
1892년 다니엘 스와로브스키가 설립한 오스트리아의 세계적인 크리스털 브랜드 ‘스와로브스키(Swarovski)’, 1639년부터 포도주를 생산한 프랑스의 포도주 명가 ‘휘겔 에 피스(Hugel et Fils)’ 등이 바로 그곳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100년이 넘는 기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일본의 경우 100년이 넘는 기업이 3천개가 넘는 반면 우리나라는 불과 10개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배경에는 일본이 우리 민족의 자본을 수탈해간 탓에 산업이 발전하기 어려웠던 일제강점기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근대화의 역사가 짧아 급격한 산업 발전이 이루어진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와 한강의 기적 등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라와 근현대사의 진통을 함께 겪으며 사업을 이어온 우리 민족기업들이 있다.
일제의 탄압까지 이겨내고 100년 넘게 사업한 우리 민족 기업 4곳을 소개한다.
1. 우리은행
1899년 고종황제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민족자본’ 은행 우리은행은 올해로 119번째 생일을 맞았다. 내년이면 ‘설립 120주년’이 되는 것이다.
우리은행 전신은 ‘대한천일은행’이다.
당시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은행을 난립해 설치하자 대한제국 국내·외에서는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은행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었다.
이에 고종황제는 황실 예산인 ‘내탕금’에서 자본금을 출자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대한천일은행’은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에 우리 전통 상인들에게 낮은 이자로 자금을 지원하는 등 일제를 비롯한 외세의 경제 수탈에 맞섰다.
2. 동화약품
동화약품은 ‘까스활명수’를 팔아 일제 독립운동을 지원한 기업으로도 유명하다. 민강 사장을 포함해 독립운동가 3명을 배출한 민족기업이다.
동화약품은 1897년 독립운동가 민강 초대사장과 그의 부친인 민병호 선생이 세운 ‘동화약방’에서 시작됐다.
국내 독립운동가들의 연락을 담당한 민강 선생은 서울 연통부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하지만 일제의 감시로 자금을 전달하기 어려워지자 민강 선생은 활명수를 중국으로 보내 직접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왔다.
민강 사장은 독립운동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두 번의 옥고를 치러야 했고 끝내 숨을 거뒀다.
3. 두산그룹
매헌 박승직이 창업주인 두산그룹은 1896년 종로에서 ‘박승직 상점’으로 시작한 국내 최장수 기업이다. 올해로 122년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박승직 상점엔 ‘박가분’이라는 이색 제품이 있었다.
박가분은 1915년 4월부터 매헌의 부인 정정숙 씨가 사업 내조의 일환으로 수공으로 제조한 화장품이다.
‘박승직 상점’은 해방 직전 1945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며 잠시 문을 닫았지만 박승직 창업주의 장남 박두병이 ‘두산상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회사를 세웠다.
4. 신한은행
신한은행의 전신은 1897년 설립된 한성은행이다.
1899년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이 전신인 우리은행과 함께 한국 금융업을 지탱한 거목(巨木)으로 꼽히고 있다.
한성은행은 1943년 동일은행과 합병한 뒤 조흥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2006년 신한은행에 흡수되며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신한은행이 인수한 옛 조흥은행은 1995년 11월 한국기네스 협회가 수여하는 국내최고(最古)은행 기네스북 기록 인정서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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