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진실한 땅, 연극”..열정의 배우 故 윤석화, 영면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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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이자 한 시대의 공연계를 이끈 위대한 예술가를 떠나 보냅니다.”
한국연극을 대표하는 무대 위 스타가 자신의 한 생을 관객과 마지막으로 나누는 길에서 후배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관객과 함께 울고 웃는 시간, 삶의 진실을 나누는 공간”으로서 무대와 연극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한 순간도 잃지 않았던, 이 시대 치열한 배우였던 고 윤석화(69)를 떠나보내는 공기는 영하의 기온마저 녹여냈다.
지난 3년여 악성 뇌출혈로 투병하다 지난 19일 오전 세상을 떠난 배우 고 윤석화의 영결식과 노제가 21일 엄수됐다. 유족과 연극계 동료들이 슬픔을 나누며 고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자리는 애끊는 안타까움에서 고인이 남긴 예술적 성취와 발자취를 돌아보는 무대가 됐다.
이날 유족과 고인의 연극계 동료들은 오전 8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윤석화의 영결식을 엄수했다. 이들은 이어 오전 9시50분쯤 서울 대학로 옛 설치극장 정미소 극장(현 한예극장) 마당에서 고인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노제를 진행했다. 이 곳은 고인이 2002년 문을 열어 2020년까지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소극장 공연을 선보여온 공간이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주관한 이날 노제에는 고인의 대표작 ‘신의 아그네스’를 통해 호흡을 맞췄던 배우 박정자와 손숙,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손진책 연출가 손진책 등 100여명이 참여해 고인과 인사를 나눴다.
고인이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이사장으로 몸 담았던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의 길해연 이사장은 이날 노제에서 추도사를 통해 “고인은 반세기 가까운 시간, 무대를 삶의 중심에 두고 연극과 뮤지컬,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한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이자 연출가·제작자로 한국 공연예술계에 깊은 발자취를 남기신 분이다”면서 “무대로 보여준 삶에 대한 깊은 시선과 존재감은 수많은 관객에게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감동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기와 명성의 정점에 있던 시절에도 ‘관객은 늘 나의 친구였다’는 그에게 연극은 언제나 “가장 진실한 땅이었다”면서 “관객에게 질문을 건네고, 그 질문이 삶 속에서 계속 이어지기를 바랐다. 투병 중에도 무대를 떠나지 않으셨던 이유 역시 그 진실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 것이다”며 추모했다.
길 이사장의 추모사에 이어 고인이 제작하고 출연한 뮤지컬 ‘토요일밤의 열기’ 출연진이 생전 고인의 애창곡 ‘꽃밭에서’를 함께 했다. 최정원, 배해선, 박건형 등 배우들은 눈물 속에 노래를 통해 선배 윤석화와 보낸 시간을 추억했다.
이날 노제가 끝난 뒤 윤석화는 장지인 경기 용인공원 아너스톤으로 향해 영면에 들었다.
1956년 서울 태생인 고 윤석화는 CM송 가수로 활동하다 1975년 민중극단의 ‘꿀맛’으로 데뷔했다. 1983년 극단 실험극장의 ‘신의 아그네스’로 첫 무대부터 전석 매진을 쓴 그는 1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연극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후 ‘딸에게 보내는 편지’, ‘덕혜옹주’, ‘나, 김수임’ 등에 출연한 고인은 제작사 돌꽃컴퍼니와 정미소 극장 등을 설립, 개관하며 공연의 외연을 확장했다. 2011년는 영국에서 ‘여정의 끝(Journey’s End)‘을 공동 제작해 웨스트엔드 최초의 한국인 공연 제작자가 되기도 했다.
1977년 ‘숙녀교실’, 1987년 ‘레테의 연가’, 1994년 ‘숲속의 여자’, 2011년 ‘봄, 눈’ 등 영화로도 관객을 만난 고인은 1995년 들꽃컴퍼니를 통해 신동헌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돌아온 영웅 홍길동’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또 공연예술 전문지 ’객석‘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일한 그는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제2대 이사장으로 나서 연극인 자녀 장학사업 등 동료 예술인의 복지를 개선하는 데 헌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