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노숙인이 두 명의 10대 청소년들에게 무참히 폭행을 당한다. 폭행 현장이 CCTV에 찍혀 온라인에 공개되면서 여론이 들끓는다. 노숙인은 중태에 빠져 의식이 없는 상태. 경찰은 10대 청소년이라는 것 외에는 범인을 특정하지 못하고, 목격자도 없다. 어쩌면 이대로 사건이 묻힐 수도 있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묻는다. 당신이 이 아이들의 부모라면 어떻게 하겠냐고. 섣불리 결정하지 못할 당신을 위해 영화는 두 형제 부부를 내세운다. 네 사람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묵인해야 한다는 쪽과, 자수를 해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쪽으로 팽팽히 맞선다. 형제의 의견이 갈리고, 부부의 의견이 갈린다.
돈 되는 일이면 살인자의 변호도 맡는 냉철한 이성의 변호사 형 재완과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의사 동생 재규, 프리랜서 번역가로 일하면서 병든 시모 부양에 자식 교육 투자에 ‘완벽한 워킹맘’이고 싶은 재규의 연상 아내 연경, 그리고 재완이 새로 얻은 젊은 아내로 이들 가족의 경계에 머무르며 조금은 다른 입장에서 사안을 바라보는 지수. 네 사람이 각기 다른 신념과 본성으로 충돌을 빚는다.
이들의 충돌은 두 형제 부부가 정기적으로 갖는 식사 자리에서 표출된다. 영화에서는 총 세 번의 식사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의 범죄사실을 인지하기 전과 후, 그 이면에 가려져 있던 진실을 인지하기 전과 후의 식자 자리에서의 인물들의 감정과 이들을 둘러싼 공간의 분위기가 모두 다르다.
사건을 수습하는 방식을 놓고 자식과 정의, 보호와 양심이 부딪치며 식사 자리는 파열음을 낸다. 공간, 조명, 소품, 각도…, 화면을 채우는 모든 장치와 요소들이 인물의 정서와 긴밀하며 얽혀 긴장감을 형성한다.
●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에너지…감독의 힘
영화는 자식 문제 앞에서는 이성적으로도, 원칙적으로도 판단하지 못하는 엘리트 가족의 민낯을 통해 이중적이고 모순적인 이중적인 인간의 본성을 들춘다. 이들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그 자식들이 저지른 범죄는 평범하지 않지만, 유사한 상황에서 자식을 둔 부모라면 누구나 같은 고민을 할 것이기에 ‘보통의 가족’이란 제목이 주는 여운이 깊다.
동시에 영화는 이들 부모와 그들의 아이들을 통해 좋은 성적을 얻고, 좋은 대학만 가면 다른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는지, 지금 우리사회가 당면한 교육문제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들이댄다.
두 형제 부부의 선택과 사건의 방향을 지켜보는 과정은 매우 흥미롭다. 관계의 균열이 빚어낸 서스펜스, 부조리극을 보는 듯한 풍자와 익살, 빠르고 예측할 수 없는 전개로 영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극에 푹 빠져들게 한다.
이는 단연코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네 배우의 밀도 높은 에너지를 발산하는 연기력과 이를 놓치지 않고 빈틈없이 화면에 담아낸 허진호 감독의 힘이다. 네 명의 인물 중 장동건이 연기한 재규가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장 변화하는 인물인데, 장동건은 이를 설득력 있게 그리며 극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이들의 자녀들을 연기하는 홍예지, 김정철 등 신인배우들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다.
‘보통의 가족’은 네덜란드 대표 작가 헤르만 코흐의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출간된 2009년 한 해에만 네덜란드에서 42만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이다.
원제와 달라진 제목만큼이나 허진호 감독의 차별화된 시선과 스타일로 완성된 ‘보통의 가족’은, 전작들을 통해 인간관계와 본성을 깊이 탐구해온 거장의 클래스를 또 한 번 확인시켜 주는 웰메이드 서스펜스 가족극이다.
감독 : 허진호 / 출연 : 설경구, 장동건, 김희애, 수현 / 제작 : 하이브미디어코프 / 장르 : 드라마 / 개봉 : 10월9일 /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 러닝타임 : 109분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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