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리오사’가 온다] 조지 밀러 감독이 밝힌 1편 vs 2편의 차이
포스트 아포칼립스의 개척자는 ‘관객이 있어야 영화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짜고, 배우들과 많은 스태프가 모여 대작을 완성한다고 해도, 결국 관객이 봐 주지 않으면 영화로서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밝혔다.
1945년생의 노장 감독이자, 동시에 가장 스타일리시한 영화를 만드는 연출자로 통하는 조지 밀러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5월 개봉하는 ‘퓨리오사:매드맥스 사가'(이하 ‘퓨리오사’)를 알리는 첫 번째 자리로 한국을 택했다.
15일 오전 서울 CGV용산에서 내한 기자회견과 영화의 일부분을 푸티지 형식으로 공개한 감독은 “영화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서 느껴지는 것”이라며 “관객이 봐야 (영화의) 존재 이유가 있다”고 몇 차례나 강조했다.
‘퓨리오사’의 푸티지 공개와 감독의 기자회견이 열린 건 한국이 처음이다. 조지 밀러 감독이 한국을 찾기도 이번이 처음. 앞서 14일 봉준호 감독과 나란히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 자리에서 신작을 소개하는 틈틈이 한국 관객이 지닌 뛰어난 영화 지식에 놀라움을 드러냈고, 영화에 대한 높은 관심의 원천을 궁금해하면서 그 원인으로 ‘다양한 영화제”를 꼽기도 했다.
● 숨막히는 3일 VS 서사 강조한 18년
‘퓨리오사’는 2015년 개봉한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이후 9년 만에 선보이는 매드맥스 시리즈의 신작이다. 주인공 맥스(톰 하디)의 성장와 반격에 집중한 이전 시리즈와 달리 이번에는 여전사 퓨리오사의 이야기에 주력한 프리퀄 작품이다. 전편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연기한 퓨리오사가 과거 어떤 역경을 겪으면서 전사로 거듭났는지를 다룬다. 젊은 퓨리오사 역은 안야 테일러 조이가 맡았다.
조지 밀러 감독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와 ‘퓨리오사’의 가장 큰 차이로 극이 다루는 “시간”을 꼽았다.
전편이 독재자 임모탄에 맞서 맥스와 퓨리오사가 벌이는 3일 간의 이야기를 긴박하게 그렸다면, 이번엔 퓨리오사가 부모를 잃고 빌런 디멘투스(크리스 햄스워스)와 임모탄(러치 험)에 의해 핍박받는 과거부터 전사로 거듭나는 과정까지 18년의 시간을 다룬다.
조지 밀러 감독은 “이런 시리즈를 만들 때 똑같은 걸 반복하거나 답습하는 건 지양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3일을 다룬 전편이 황야의 추격 장면에 집중한 것과 달리 이번엔 18년을 그리다보니 인물들이 협상하는 이야기,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을 표현해야 했고 그래서 대사가 더 많다”고 설명했다.
감독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를 내놓을 당시 함께 작업한 스태프들과 나눈 대화도 소개했다. “만약 잘 된다면 우리가 퓨리오사의 이야기도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는 이야기다. 9년 만에 이를 실현한 감독은 “밀도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작품을 할 때 저는 밀도가 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합니다. 다양한 층으로 구성된 영화를 만들고 관객이 그걸 경험하도록 해야 해요. 순수한 시네마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건 바로 ‘역동성’ 입니다. 글을 모르는 아이들도 영화는 이해하잖아요. ‘영화의 언어’가 있기에 그걸 받아들이는 거죠. 액션과 액션영화가 시네마를 정의하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무성영화부터 미국 서부극, 찰리 채플린의 코미디 영화도 모두 마찬가지에요.”
● “매드맥스가 흥미로운 건, 모든 게 메타포이기 때문”
조지 밀러 감독이 ‘매드 맥스’ 시리즈를 처음 세상에 내놓은 건 1979년. 배우 멜 깁슨이 주연해 핵전쟁 이후 황폐한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른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시작이다. 이후 감독은 1981년 2편, 1985년 3편으로 ‘매드 맥스’ 시리즈를 이어갔다.
그러다 70대에 접어들어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로 새로운 시리즈의 서막을 열었고, 세계관은 프리퀄로 확장돼 이번 ‘퓨리오사’로 이어졌다. 통산 5번째 ‘매드 맥스’ 시리즈다.
조지 밀러 감독은 ‘매드 맥스’ 시리즈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다. 간단히 정리하면 “사람들이 겪는 갈등을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서”, “사람들의 본능이 드러나고 보여질 수 있어서”라는 설명. 하지만 감독은 이 말을 하기까지 영화를 만들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먼저 풀어냈다.
“영화를 만들 때 세 가지를 중요하게 여겨요. 먼저 스토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왜 이런 이야기를 할까. 마지막으로 진보한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스토리 안에는 다양한 캐릭터가 있고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이야기를 만들지만, 결국 모든 스토리는 메타포(은유와 상징) 같아요. 저에게 ‘매드 맥스’가 재미있는 건 메타포가 있어서죠.”
감독의 설명은 이어졌다.
“사람들이 저에게 ‘매드맥스:분노의 도로’는 판타지가 아닌 다큐멘터리 같다고 말해줘요. 실제로 세계가 그렇게(황폐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말해주는 거죠. 우리는 좋든 싫든 지금 대재앙 수준의 기후 위기를 겪고 있잖아요. 한국도 그렇고 제가 사는 호주에서도 기후 위기를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일들이 (‘매드맥스’에)담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감독은 ‘매드맥스:분노의 도로’가 국내서도 393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한 이유에 대해 “관객에 많은 울림을 줬기 때문”이라며 “관객이 이번 ‘퓨리오사’ 때도 표면적인 의미 뿐 아니라 심도있는 담론으로 이해해주길 원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 “흥미로운 한국 감독이 많이 나오는 이유 생각해보니…”
이날 기자회견은 푸티지 상영에 이어 약 30분간 동시통역 방식으로 이뤄졌다. 감독은 ‘퓨리오사’를 설명하는데 머물지 않고 영화의 역할이나 관객의 중요성, 더 나아가 한국영화와 감독들이 지닌 경쟁력의 원천까지 짚었다. “답변이 너무 길어서 질문을 더 받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두 차례나 하면서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조지 밀러 감독은 한국 관객이 영화에 갖는 높은 관심과 지식, 흥미로운 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이 많은 이유로 ‘영화제’를 지목했다. 도시마다 열리는 다양한 영화제를 통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이 마련되고, 그 기회가 쌓이면서 한국영화와 영화감독들이 꾸준히 탄생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그 역시 영화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번 ‘퓨리오사’는 5월14일 개막하는 제77회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서 월드프리미어로 공개된다. 칸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도 역임했던 감독은 2017년 ‘옥자’를 통해 칸에서 시작한 봉준호 감독과의 인연도 밝혔다.
“‘옥자’의 조감독과 제가 작업을 함께 했고, 배우 틸다 스윈튼과도 작업한 경험도 있어서 당시 칸에서 다같이 만나기도 했어요. ‘기생충’이 호주영화제에 초청됐을 땐 제가 훌륭한 업적을 쌓은 봉준호 감독님을 인터뷰했는데 이번엔 봉 감독님이 저를 인터뷰 했죠.”
조지 밀러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영화가 완성되는 순간은 “관객의 선택을 받을 때”라고 재차 밝혔다. 그러면서 “영화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과정은, 나 역시 평생동안 이해하고자 하는 과정이었다”며 “아마 1000년을 해도 (영화의 과정을)완전히 이해할 순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감독은 내한 일정을 마무리하고 곧장 호주로 돌아가 ‘퓨리오사’ 후반 믹싱 작업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퓨리오사’ 공개를 앞둔 지금 “아이를 낳고 키워서 세계로 내보내는 기분”이라고 밝힌 감독은 “떨리고 많이 긴장된다”고도 했다.
조지 밀러 감독은 ‘퓨리오사:매드맥스 사가’ 개봉을 앞두고 “자식을 세계에 내놓는 기분”이라고 했다. 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