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장재현 감독이 밝힌 ‘파묘’ 풀 스토리, ‘해석’이 궁금한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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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경은 멀리 있어도 찾아가고, 맛집은 골목에 숨어 있어도 찾아낸다. 관객들은 장인 정신으로 빚어낸 작품의 진가를 알아보기 마련이다.
33만명. 개봉 첫날 스코어가 이 모든 걸 말해준다. 장재현 감독이 땅속에 파묻힌 “험한 것”을 파헤치며 창조한 영화 ‘파묘'(제작 쇼박스)가 지난 2월22일 개봉해 33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압도적인 박스오피스 1위이자 올해 최고의 기대작다운 묵직한 발걸음이다.
‘파묘’는 ‘검은 사제들'(2015년)과 ‘사비하(2019년)로 K오컬트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장재현 감독의 신작이다. 데뷔작부터 세 번째 영화까지, 작품의 결은 달리하지만 한국영화계에서는 귀한 ‘오컬트’라는 한 장르를 깊숙하고 우직하게 파내는 장재현 감독의 뚝심은 배우들은 물론 관객들에게도 다가갔다.
영화는 거액의 돈을 받고 수상한 묘를 이장하면서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 무속인 화림(김고은)과 그의 파트너 봉림(이동현)에게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담은 작품이다. ‘파묘’는 조상의 묘 이장이라는 사건에서 더 나아가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의 ‘청산되지 않은 역사’까지 다루며 장르의 외연을 확장한다.
누군가는 놀랐고, 누군가는 당황스러워했다. 하지만 장재현 감독은 힘주어 말했다. “어떻게든 발전하고 싶었다!”
장재현 감독이 ‘파묘’가 개봉날 인터뷰를 갖고 영화에 대한 다양한 뒷이야기를 공개했다. 영화에 대한 감독의 생각과 의도를 최대한 반영해하기 위해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파묘’의 시작에 대해
▲ 제작 과정에서 장례지도사 자격증에 도전해 10차례가 넘는 이장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영화에 어떤 도움이 됐나.
“크고 작은 15번 정도의 이장을 따라다녔다. 그중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날이었다. 이장은 보통 포클레인으로 한다. 그런데 그날은 비도 오고 지반이 안 좋아서 포클레인이 못 가는 날이었다. ‘왜 오늘 하냐’고 물어보니까 상주 가족 네 명이 뇌졸중이 와서 급하게 이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비를 맞으면서 삽으로 이장을 했다. 그때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봤다. 배수공사가 잘못돼서 물의 방향이 바뀌어 관에 물이 들어온 것이다. 장의사가 급하게 토치로 화장을 했다. 그날 유독 파묘라는 것이 과거의 잘못된 뭔가를 꺼내서 빨리 정상화시키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영화의 코어(중심)를 만들어주지 않았나 싶다.”
▲ ‘사바하’가 개봉한 2019년에는 ‘다음 작품을 어떻게 찍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는데, 언제부터 ‘파묘’를 구상하기 시작했나.
“이 소재는 계속 머릿속에 있었다. 이 소재로 영화를 어떻게 풀어갈까 고민하던 와중에 코로나19가 왔다. 팬데믹 때 유독 유럽의 아트 영화들, 작가주의 영화들이 많이 나왔다. 극장에서 명단을 적고, 마스크를 쓰고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답답했다. 그때 ‘극장영화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다. 코로나가 언제 괜찮아질지도 몰랐던 상황이었다. 숨통이 트이게, 화끈하고 박력 있는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그렇게 영화의 톤을 잡았다. 이 영화는 공포영화가 아니다. 공포영화라고 하면 화림에게 파묘를 의뢰한 박지용(김재철)이 주인공이 됐을 것이다. 공포영화의 90%는 피해자들의 서사이기 때문이다. ‘파묘’는 전문가들이 주인공이고, 미스터리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영화다.”
▲ 영화를 1장부터 6장으로 구성한 이유는?
“시나리오를 쓸 때는 작가적인 냄새가 나는 것 같아서 그렇게 안 썼다. 그런데 1차 편집을 해보니까 장을 나누면 사람들이 더 따라가기 쉬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풍수사, 장의사, 무속인로부터 영화의 고증을 거쳤다고 들었다. 자료조사는 어떻게 했나.
“차기작이 오래 걸리는 이유가 있다. 하하. 이 소재를 결정하고 찾아간 곳이 한국장례협회였다. 협회를 찾아가는 게 제일 빠르다. 들어보니까 요새는 장의사가 없다고 하더라. 상조회사만 있을 뿐이지. 몇몇 장의사를 소개받았다. 그분들을 통해 풍수지리사 2~3명을 만나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사이 아는 무속인들을 찾아갔다. 이 영화와 잘 어울리는 분들이다. 너무 바쁜 분들인데, ‘파묘’와 잘 어울리는 클래식한 무속인들이었다. 그렇게 도움을 받고, 중간중간 시나리오를 쓰면서 2~3년이 지났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영화를 안 보고 책을 많이 본다. 한국장례법, 일본장례법, 일본무덤문화 등 정말 재미없는 원서들을 봤다. 제가 기독교인이라서 많은 분들이 무속인을 만나는 것에 대해 물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톱클래스들은 굉장히 열려 있다. 영성 있는 목사님도 절대 배타적이지 않다.(웃음)”
▲ 그렇다면 실제 만난 풍수사, 장의사, 무속인에게서 캐릭터 설정을 따오기도 했을 것 같다.
“맞다. 실제로 무속인은 1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하다. 진짜 전성기는 30~40대라고 한다. 예약하려면 1년 넘게 걸리는 분들 말이다. 이도현이 연기한 봉길은 실제로 야구선수를 하다가 무속인이 된, 엄청 잘생긴 분이 있는데 그분에게 영감을 받았다. 풍수사나 장의사는 사라지는 직업이다. 그거에 맞는 캐스팅을 했다. 꼬장꼬장한 구세대와 20~30대가 서로 힘을 합쳐 도움을 주고받는다. 서로를 꼰대라고 부르기도 하고, 발랑 까졌다고 하기도 하지 않나. 이들은 아이들이 살아갈 땅의 의미까지 지켜준다.”
● ‘파묘’의 설계에 대해
▲ 영화는 전반부와 중후반부의 결을 달리한다. 그렇게 설계한 이유는?
“시나리오의 허리를 끊고 싶었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영화 속 대사)가 떡밥이다. 작가의 욕심이라고 해도 좋다. 이 영화도 중간에 끊어버리고 싶었다. 전반부는 중후반부의 ‘빌드업’이면서 한 단계 더 깊게 파는 역할이다. 그렇게 허리를 끊으려고 했다.”
▲ 귀신의 형상도 전반부 혼령과 후반부의 ‘험한 것’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온다.
“혼령을 어떻게 찍으면 좋을까 고민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심령사진을 다 찾아봤다. 귀신을 ‘찍은’ 사진은 없고, ‘찍힌’ 사진만 있다. 그렇다. 귀신은 찍혀야 하는 거다. 귀신이 찍히는 것처럼 (영화를)찍고 싶었다. 배우가 여섯 시간동안 분장을 받고 왔는데 희미하게 찍으니까 미안했다. 그 정도로 포커스도 안 넣고 찍었다.”
“험한 것은 음흉하게 가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뱀파이어, 미라, 강시는 잘 알지 않나. 우리 영화에 나오는 험한 것은 옆 나라(일본)에서 엄청나게 유명한 캐릭터다. 그곳 국가대표를 데려왔다. 불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진보가 없다면 저는 영화를 만들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앞의 톤처럼 그냥 담백하게 갔으면 발전이 없을 것이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끝까지 밀어붙였다.”
▲ 굳이 반일 코드를 끌어온 이유는?
“‘아’ 다르고 ‘어’ 다르지 않나. 반일이 아닌 우리나라, 우리 땅에 집중했다. 그걸 반일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시선을 옆 나라로 가지 않고 우리나라 땅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당하기만 했다. 상처가 곪아 터졌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다. 그걸 파묘해버리고 싶었다. 과거의 아픈 상처와 트라우마, 두려움을 뽑아버리고 싶었다. 험한 것이 사람 외형을 하고 있지 않나. 그가 하는 대사들이 중요하다.”
● ‘파묘’의 비주얼에 대해
▲ ‘험한 것’의 비주얼은 어떻게 고민했나.
“흔히 팔척장군이라고 말한다. 2m40cm 정도 된다. 무섭게 보여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면 톤앤매너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험한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중요했다. 그걸로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했지 절대 무섭게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 CG를 최소화하는 연출가로 알려졌다. 그걸 고수하는 이유는?
“‘파묘’는 땅을 발에 딛고 있는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CG에 한번 의존하기 시작하면 정말 많이 의존할 수밖에 없다. 블루 매트가 깔려 있으면 분위기가 잡히기 않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오케이’를 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최대한 안 하려고 한다. 감독의 1순위는 배우들이 자신의 최대치를 뽑아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배우들을 편안하게 모신다. 연기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다. 그래서 실제로 보이게 하고, 그 연기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내 연출관이다.”
▲ 도깨비불까지 실제로 만들어서 하늘에 띄웠다.
“내 생각에 우리 영화에서 가장 많은 제작비가 든 장면일 것이다. 키가 2m40cm에 달하는 사람이 웅크렸을 때 정도의 불을 만들어야 했다. 불 색깔도 맞추고 크레인과 와이어를 사용해 하늘로 띄웠다. 크레인 두 대가 들어오려면 길을 만들어야 한다. 기반을 만드는 작업이 힘들었다.
▲ 귀신이 뭐라고 생각하나.
“저도 귀신은 못 봤다. 그런데 무속인한테 들은 바로는 귀신은 한 감정의 가장 응축된 에너지라고 표현하더라. 저는 귀신, 유령, 혼령이 있었으면 좋겠다. 저는 사람을 사랑한다. 사람이 죽고 나서 없어지면 슬퍼질 것 같다. 나쁜 귀신이든, 좋은 귀신이든 영혼이라는 게 있으면 좋겠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귀신들은 이유가 있다. 슬픔이든 분노든 이유가 존재하고, 그거와 관련된 사람들에게만 접촉한다. 일본은 정령 사상이다. 컵에도 영혼이 있다는 주의다. 비디오 한 번 잘못 봤다고 다 죽이기도 한다.(영화 ‘링’의 내용) 잔혹성이 있다. 근처에만 가도 죽는다. 우리 영화에도 그런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사실 이 기사를 보고 일본 평론가들이 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렇더라.”
● ‘묘벤져스’에 대해
▲ 이도현은 스크린 데뷔작인데, 베테랑 배우들에게 뒤지지 않는 모습이다. 어떻게 캐스팅했나.
“봉길은 신인 배우로 하고 싶었다. 캐스팅이 너무 쟁쟁하면 좀…(웃음)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리스트가 있었는데, 이도현이 단연 1등이었다. 떠오르는 샛별이었다.”
▲ 김고은은 배우 박정민의 도움까지 얻어 캐스팅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이유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박정민을 통해 반칙을 썼다. 하하. 많은 분들이 화림의 대굿살 장면이 인상 깊다고 하는데 두려움에 떨면서도 긴장을 안 놓치고 일본어로 표현하는 후반부 장면이 더 놀랍다. 베테랑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연기다. 엄살이 심한 배우다. 못 한다고 하면서 겁나 잘한다.(웃음) 세계적인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전성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 최민식과 유해진은 역시나 안정적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최민식 선배의 겁먹은 표정을 보고 싶었다. 300척의 군함이 몰려와도 눈 한번 깜짝 안 하는 분이지 않나.(최민식의 최고 흥행작 ‘명량’의 내용) 이 사람의 두렵고 겁에 질린 표정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싶었다. 불만, 불평도 없다. 촬영장에도 한 번도 늦은 적이 없다. 촬영하다가 갈비뼈에 금이 갔는데 끝날 때까지 티 한 번 내지 않고, 다 끝난 뒤에 앰뷸런스를 타고 갔다. 배우로서도, 인격적으로도 너무 훌륭하다.”
“유해진 선배는 진짜 연기 장인이다. 기가 막히게 이 영화의 빈틈을 채워줬다. 자신만 빛나는 게 아니라 남을 돋보이게 해주는 것도 너무 잘하는, 말 그대로 연기 장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다.”
● 차기작에 대해
▲ ‘파묘’를 통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발전했다. 기존의 좋았던 것들을 섞어서 보여주는 감독은 되고 싶지 않다. 새롭고 도전하고 어떻게든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저의 욕망이다. 그렇지 못할 거면 아마 다른 일을 할 것 같다.”
▲ 차기작은? ‘파묘’ 캐릭터들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도 좋을 것 같은데.
“속편 제작은 생각하지 않았다. ‘파묘’보다 ‘사바하’를 속편으로 해보고 싶다. 저는 어두운 세계에 밝은 인물이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앞으로도 ‘다크’한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