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데이즈’에서 윤여정은 자신에게 음식을 배달해주는 라이더 역 탕준상과 주로 호흡을 맞췄다. 그는 현장에서 그런 젊은 배우들을 바라보면서도 그저 무심한 듯 묻는다. “어머니가 몇 살이시니?” 아버지가 1970년대생이라는 탕준상의 답에 윤여정은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너무 배우를 오래 했다”는 말로 너스레를 떨었다.
‘도그데이즈’ 윤여정① “내가 롤모델? 당신 인생과 내 인생은 달라”
“한 길을 살다 보니 외진 길이 됐을 뿐!”
연기 인생 58년, “먹고 살려고 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튼” 걸어온 길. 배우 윤여정(76)은 그 위에서 ‘미나리’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의 화려한 상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 이전이나 이후로나 아무 것도 변한 건 없다. 그저 자신이 걸어온 것처럼 지금도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월7일 개봉하는 새 주연작 ‘도그데이즈’(제작 JK필름) 역시 그 과정 가운데 한 작품이다. “내가 너무 오래 한 배우여서 이렇게 시나리오도 좋고, 돈도 많이 주는 작품은 안 들어온다”는 그는 “언젠가부터 혼자 결심”한대로 “이번에는 감독을 봤다”고 했다.
2018년 ‘그것만이 내 세상’의 주연이었던 그는 조감독이었던 김덕민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그가 내미는 ‘도그데이즈’를 받아들였다.
“어떤 때는 시나리오를 본다. 또 어떤 때는 돈만 본다. 뭐, 그러니까 그때그때 다르다. 이번에는 그냥 감독님만 보고 한 거예요. 오래 전에 만났는데 그땐 ‘노바디’였어요. 그나 나나 취급을 못 받았고, 그래서 둘이 전우애 같은 게 생겼다. 19년 동안 조감독을 하고 있다는데 인정을 못받는 게 참 안타까웠다.”
▲처음 시나리오에는 캐릭터가 ‘윤여정’이라는 이름 그대로였다죠.(완성본에서는 ‘민서’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렇게 누군가 나를 연구해가지고 시나리오 작업하고 캐릭터를 만드는 게 부담스러워요.”
▲전우애로 뭉치니 느낌이 어떠신가요?
“좋았어요. 너무 준비를 많이 해오고. 현장에서 19년을 조감독 생활을 해 배우나 스태프가 곤란한 상황을 안 만들고. 늘 우리 쪽에서 배려해 줬어요..”
영화 ‘도그데이즈’는 반려견을 소재로 다양한 사연을 지닌 이들이 갈등하고 화해하며 서로에게 다가서는 이야기이다. 윤여정은 사회적 성취를 이룬 건축가로, 반려견 완다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며 거기에서 위안을 얻는다.
▲완다와는 어떤 호흡이라고 할까요. 완다와 교감이 좀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을 듯한데.
“그건 호흡이라고 할 수가 없어. 말을 못 알아듣잖아요. 콘트롤을 할 수가 없어요. 한 스태프가 그러더라고. 액션 사인을 알아듣는 것 같다고.”
▲반려견을 키워본 적 있나요.
“있어요. 잃어버렸어요. 그때 몇 년을 막 길에 지나가면서 혹시 걔인가 보게 되고. 다시는 안 하지. 이제 기운 없는 나이가 돼서 내 몸 하나 건사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어요.”
‘도그데이즈’에서 윤여정은 자신에게 음식을 배달해주는 라이더 역 탕준상과 주로 호흡을 맞췄다. 그는 현장에서 그런 젊은 배우들을 바라보면서도 그저 무심한 듯 묻는다. “어머니가 몇 살이시니?” 아버지가 1970년대생이라는 탕준상의 답에 윤여정은 깜짝 놀랐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너무 배우를 오래 했다”는 말로 너스레를 떨었다.
▲극중 패션도 눈길이 가던데요. 평범한 청바지랑 코트를 툭 걸친 모습이 멋있어 보여요.
“다 내 옷이에요. 신발도 내 거고. 의상비가 하나도 안 들었어요. 그렇게 마음을 먹었어요. (실제 내 모습과) 비슷하게 써놨고, 그러니까 나같이 하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지.”
▲탕준상이 현장에서 에브리브를 하고 싶어 했다죠.
“그런 거 보면 우습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래요. 근데 애드리브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에요. 애드리브는 내가 굉장히 싫어해요. 난 구식 배우여서 그렇게 훈련을 안 받았기 때문에. 연기는 약속이에요. 상대하고 나하고. 그렇게 느닷없이 그러면 곤란해져요. 그런 거를 이제 젊은 애들이 많이 하는데 난 별로 좋아하지 않아.”
▲탕준상이 현장에서 너무 잘 대해주셨다고 하던데요.
“난 그냥 무심하고 그냥 많이 살아서 별로 그렇게 대단히 감동 받을 것도 없고, 대단히 슬픈 것도 없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현장에 나오는 어린 애가 하면 내가 뭐 할 수 있는 건 하고 그러겠지. 뭐, 별로 잘해준 건 없는 것 같은데.”
▲현장에서 어떤 때가 마음이 편하신가요.
“감독이 딱 이 사람이 뭘 원하는구나 알고, 내가 해야 되는 걸 알았을 때 그냥 편안하죠. 근데 이 사람이 뭘 원하는지를 모를 때, 도대체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막 감독들이 형이상학적으로 얘기하고 그럴 때는 힘들죠. 그러니까 그가 원하는 온도를 내가 딱 맞추겠는데, 그 온도를 딱 말을 안 하고 좀 길게 장황하게 설명하면 그렇죠.”
▲가장 기억에 남는 ‘도그데이즈’ 촬영현장이 있었을까요.
“우리 동네에서 찍을 때. 멀리 안 가니까. 난 (배우들이)현장을 지연시키는 거는 싫어. 자기 개인적인 문제로. 그건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니까. 우리는 그렇게 배웠거든요. 우리는 부모님이 죽어도 촬영을 했으니까. 그런 개인적인 거는 아주 요새 배우들 난리가 나고 막 인원을 많이 데리고 다니니까 그 인원들이 와서 막 하고 그러니까, 난 이상해요. 일하러 나왔으면 지금 이거는 직업적인 작업현장인데, 좀 참고….”
연기 인생 58년차의 연륜 깊은 쓴소리는 한 치의 틀림이 없는 듯 들렸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프로페셔널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 그에게도 ‘도그데이즈’ 속 캐릭터처럼 외로움이란 게 찾아들 여지가 있을까.
“일상에서 늘 외로웠죠. 또 외로운 연습을 해야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늙어가는 게 외로운 거죠. 유명한 사람이 그랬는데, 외로워지라고. 늙을수록 외로워지라고. 즐기는 건 아니지만 난 외로운 걸 좋아해요. 가만히 혼자 있는 거.”
▲극중 탕준상에게 해주는 말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마치 청년들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해서요.
“청년들 보면 얘기를 안해요. 나하고 다른 세상에 사는데 내가 걔들한테 감놔라 배놔라 한다고 해서 들을 일도 없고. 그건 오지랖이죠. 그건 걔들 인생이니까 걔들이 사는 거지. 나는 그런 충고의 말투, 이런 거 너무 싫어해요. 살다보면 젊은 사람들이 눈에 걸리는 거 많거든요. 여러분이 늙은 사람 보면 눈에 걸리듯. 근데 그걸 얘기하면 이제 꼰대라고 그러니까. 난 얘기 절대로 안 합니다.”
▲많은 후배들이 롤모델로 항상 언급하곤 하는데요.
“롤모델은 무슨…. 자기 인생대로 다 사는 거지, 나를 왜 롤모델로 삼아요. 인생이 다 다른데. 당신이 살아야 할 인생하고 내가 살아야 할 인생이 다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