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도입 두 달 만에 폐지론 시끌…혼란 극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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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15일 광주 소재 모 고등학교 한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 src=”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5/CP-2022-0036/image-eb190204-e7c0-4ee2-a68d-3e713215eacc.jpeg”><figcaption>
   지난해 10월 15일 광주 소재 모 고등학교 한 교실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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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올해 3월 고1부터 전면 시행된 고교학점제가 불과 두 달 만에 교육 현장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충분한 준비 없이 기존 입시제도는 손도 대지 않은 채 고교학점제를 적용해 학생들에게 무리한 진로 결정을 강요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폐지론’까지 나오고 있다.</p>
<p>9일 교육계에 따르면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 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해 졸업하는 제도다.</p>
<p>학생들은 공통과목 외에 다양한 교과목을 선택하고 이를 이수해 누적 학점이 192점 이상이면 졸업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과목출석률(수업 횟수의 3분의 2 이상)과 학업성취율을 40% 이상 충족해야 한다.</p>
<p>이처럼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문제는 이 같은 선택권이 학교마다 처한 여건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p>
<p>종로학원이 이날 발표한 ‘고교학점제 시행에 따른 개설과목수 분석’ 자료를 살펴보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기본 과목에 다양한 선택과목들이 각 학교에 강좌가 개설된다. 분류상으로는 공통과목, 선택과목에서 일반선택, 진로선택, 융합선택 등이다.</p>
<p>이들 전체 과목수로 볼 때 고교 3년 과정 동안 개설 과목 수가 많은 학교는 125과목, 적은 학교는 66개 과목으로 차이가 컸다. 학생수가 많고 자사고일수록 개설된 과목수가 많은 것으로 종로학원은 파악했다.</p>
<p>대체로 고교학점제와 관련된 과목은 선택과목 중 진로선택, 융합선택과목에 집중돼 있다. 대체적으로 전체 과목수에서 진로, 융합선택과목의 편성된 과목 비중이 많게는 60~70%, 적은 학교에서는 50% 정도로 편성한 상태다.</p>
<p>종로학원은 “올해 고3 학생수 기준으로 전국 일반고에서 100명대 미만인 학교는 41.5%를 차지하고 있다. 200명대가 37.8%, 300명대가 17.6%, 400명대가 3.1%다”며 “만약 등급이 산출되는 과목이라면 내신 등급제도상 수강자수가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된다. 수강인원이 현저히 적은 과목에서 내신 등급 확보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p>
<p>이어 “학교 내신 불리해진 학생들은 고교학점제로 내신을 극복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며 “현 고1 중간고사 이후부터 대입전략에서 상당한 고민이 발생할 것이다. 각 대학에서 현 고1 적용되는 2028학년도 대입전형계획 조속히 발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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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gure class=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박영환 위원장이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행된 ‘고교학점제 폐지 촉구 위한 교사 서명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박영환 위원장이 지난 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행된 ‘고교학점제 폐지 촉구 위한 교사 서명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 같은 상황을 미뤄볼 때 상대적으로 학생 수가 적은 지방일수록 진로에 맞춘 과목 선택이 어려워 ‘입시 소외’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격차의 원인으로는 교사 수급의 불균형이 지목된다. 개설 과목 수는 늘어난 반면 교원 수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교육계에서는 기존 입시제도를 그대로 둔 채 고교학점제를 도입한 점도 원인으로 꼽고 있다.

고교학점제는 진로에 따라 과목을 선택한 뒤 이수하도록 만들어진 제도지만 이는 절대평가를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여전히 내신이 5등급 상대평가로 반영되면서 학생들은 진로보다는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고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특히 내신 상대평가의 비중 확대와 2028학년도 대입 개편안이 학생들의 자율적인 과목 선택권을 사실상 무력화하며 경쟁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교사단체는 교육 격차 심화와 과중한 업무 부담을 이유로 고교학점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사노동조합연맹,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전날 서울정부청사 앞에서 ‘고교학점제 폐지 촉구를 위한 교사 서명 결과 발표’ 기자회견을 진행해 고교학점제 전면 폐지를 촉구했다.

이들은 “고교학점제는 경쟁 위주의 입시교육 완화를 위한 ‘학생 선택권 보장 및 맞춤형 교육’이라는 이상을 내세웠지만 현실은 정반대”라며 “고교학점제는 개혁이 아닌 개악으로 공교육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혼란을 초래하는 실험적 제도로 전락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복잡한 교육과정과 평가 체계로 학생과 학부모 모두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으며 학생들은 내신 성적 관리에 유리한 학생 수가 많은 대규모 학교로 몰리며 지역의 소규모 학교는 존립의 위기를 맞고 있다”며 “학생들은 조기에 진로선택을 강요받고 불안한 학부모들은 사교육 컨설팅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사의 업무가 과중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교사노조는 “학생의 선택과목 보장을 이유로 과목 수는 몇 배로 늘어났으나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교사 정원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며 “가르쳐야 하는 과목이 늘어나면 수업 준비, 평가, 생활지도, 학생부 기록, 상담까지 교사 1인이 감당해야 할 몫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는 제도 시행 과정에서의 행정적 준비 부족과 실행력 미비가 이 같은 폐지 목소리를 부추겼다며 교육당국이 현장 중심의 세밀한 정책 설계와 행정 지원 강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단국대 교육학과 이영희 교수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선택권과 자율성을 강화하고 진로에 따른 학습을 가능하게 한다. 교육의 방향성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제도”라며 “실제로 일부 교사들은 학생들이 최저 성취수준을 충족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고 학생들 역시 단순 출석이 아닌 실제적인 성취를 목표로 움직이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그러나 일선 현장에서는 학교 간 격차, 행정적 지원 미흡, 교사단체의 반발과 교육현장의 혼란 등 여러 문제점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는 제도 자체의 방향성 문제보다는 준비 부족과 현장과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혼란의 책임을 인식하고 현장 중심의 실효성 있는 행정 지원과 지역별 맞춤형 정책을 통해 제도의 정상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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