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애 나물과 꼭 닮았는데… 나물 아니라 ‘치명적 독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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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이 은방울꽃('텃밭친구' 유튜브), 오른쪽이 산마늘('인제아범농원 산마늘 명이나물' 유튜브)이다.

왼쪽이 은방울꽃('텃밭친구' 유튜브), 오른쪽이 산마늘('인제아범농원 산마늘 명이나물' 유튜브)이다.
왼쪽이 은방울꽃(‘텃밭친구’ 유튜브), 오른쪽이 산마늘(‘인제아범농원 산마늘 명이나물’ 유튜브)이다.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위험을 품고 있는 식물이 있다. 은방울꽃이 대표적이다. 계곡 깊은 곳에서 은은한 향기를 뿜으며 은방울 모양의 꽃을 조용히 피워내는 식물이다. 작고 하얀 종 모양의 꽃송이가 바람에 살랑이며 맑은 소리를 낼 것만 같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꽃은 겉모습과 달리 치명적인 독성을 품고 있다. 사랑과 행운의 상징으로 불리며 럭셔리 브랜드에 영감을 주지만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위험한 식물이다. 은방울꽃에 대해 자세히 살펴봤다.

은방울꽃 / '텃밭친구' 유튜브
은방울꽃 / ‘텃밭친구’ 유튜브
산마늘 / '인제아범농원 산마늘 명이나물' 유튜브
산마늘 / ‘인제아범농원 산마늘 명이나물’ 유튜브

은방울꽃의 특성과 이름의 유래

은방울꽃은 백합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로 서늘한 산지나 숲속에서 자란다. 잎은 넓고 타원형이며 두세 장이 뿌리에서 나온다. 5월에서 6월 사이, 가느다란 꽃대에 하얀 종 모양의 꽃이 아래로 늘어져 핀다. 꽃은 여섯 갈래로 갈라진 끝이 살짝 뒤로 말려 있다. 이 모습이 마치 작은 은빛 방울을 연상케 해 은방울꽃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일본에서는 ‘스즈란(鈴蘭)’으로 불린다. ‘종 모양 난초’를 뜻한다. 꽃말은 ‘틀림없이 행복해진다’ 또는 ‘행운’이다. 순결과 희망을 상징한다. 유럽과 아시아, 북아메리카 등지에 분포한다. 관상용으로도 인기가 많아 정원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은방울꽃은 그리스 신화에서 아폴론이 뮤즈들의 발을 보호하기 위해 깔아준 꽃이라는 전설이 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눈물이나 성인 레오나르도의 피에서 피어났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한국 전래동화에서는 은방울꽃이 죽은 소녀의 무덤에서 피어난 꽃으로 등장하며, 슬픔과 희생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은방울꽃에 신비로운 매력을 더한다.

치명적인 독성과 위험성

은방울꽃은 아름다운 외관과 달리 전 식물이 강한 독성을 지닌다. 특히 꽃과 열매, 뿌리에 독성이 집중돼 있다. 주요 독성 성분은 콘발라마린과 콘발라톡신 같은 심장 배당체다. 이들은 나트륨-칼륨 펌프를 억제해 심장 박동을 비정상적으로 강하게 만든다. 소량 섭취만으로도 심각한 중독 증상을 일으킬 수 있다. 구토와 설사는 초기 증상이다. 이후 어지럼증, 두통, 불규칙한 심박동, 고칼륨혈증, 호흡마비, 마비성 장폐색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심한 경우 3~6시간 내 심장마비로 사망할 수도 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은방울꽃은 치명적이다. 고양이가 열매 몇 개만 먹어도 심부전이나 호흡 곤란으로 죽을 수 있다. 개 역시 마찬가지다. 구토와 설사로 시작해 저혈압, 발작, 혼수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즉시 수의사 치료가 필요하다. 심지어 은방울꽃을 꽂아둔 화병의 물을 마시거나 꽃가루를 흡입해 중독된 사례까지 있다. 피부 접촉만으로도 자극이 생길 수 있다. 

문제는 산마늘, 비비추, 둥굴레와 잎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물로 착각해 먹었다가 중독된 사례가 적잖다. 산마늘은 삼겹살 등을 싸 먹을 때 쓰이는 한국인 최애 나물 중 하나다. 명이나물로 불리는 산마늘은 꽃대가 굵고 알뿌리가 있다. 은방울꽃은 가느다란 꽃대와 잔뿌리를 갖는다. 나물인 줄 알고 먹었다가 탈을 치른 사람이 많으므로 명심해야 한다.

은방울꽃 / ‘텃밭친구’ 유튜브
산마늘 / ‘인제아범농원 산마늘 명이나물’ 유튜브

유럽에서도 은방울꽃을 야생 마늘과 혼동하는 사람들로 인해 자주 사고가 벌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야생동물조차 은방울꽃을 피할 정도로 그 위험성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빨간 열매는 케르베린이라는 독성 물질을 함유해 심장마비를 유발한다. 어린아이나 애완동물이 접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은방울꽃을 다룰 때는 장갑을 착용하고, 절대 입에 넣지 말아야 한다.

약용과 그 위험성

은방울꽃은 한약재로 사용된다. 한방에서는 ‘영란’으로 불린다. 뿌리와 지상부를 말려 약으로 쓴다. 맛은 달고 쓰며, 성질은 따뜻하다. 주요 효능은 심장 수축을 강화하는 강심작용이다. 고산병, 풍습성·고혈압성·표현성 심장병, 불규칙한 심박동에 효과가 있다. 정서불안, 수면장애, 심한 두통에도 쓰인다. 다만 약으로 쓸 땐 워낙 위험해 극소량만 사용한다. 1~2g만 잘못 섭취해도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전문가의 엄격한 관리 없이는 절대 다루지 말아야 한다. 탈이 나면 강심배당체 중독을 치료해야 한다. 비전문가가 함부로 사용하면 구토, 혼수, 심지어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약초로 사용할 때는 반드시 정확한 용량과 사용법을 준수해야 한다. 일반인은 은방울꽃을 약으로 시도하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

은방울꽃의 독성은 문학이나 미디어에서도 자주 다뤄진다.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에서는 은방울꽃으로 아이를 중독시키는 장면이 나온다. 게임 ‘동방 프로젝트’의 캐릭터 메디슨 멜랑콜리는 은방울꽃밭에서 태어난 요괴다. 독을 다룬다. 이런 사례들만 봐도 은방울꽃이 얼마나 위험한지 짐작할 수 있다.

럭셔리 상징으로의 변신

은방울꽃은 독성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럭셔리 브랜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크리스찬 디올은 어린 시절 노르망디 정원의 은방울꽃에서 영감을 받아 브랜드 심벌로 삼았다. 디올은 매년 5월 1일 직원과 고객에게 은방울꽃을 선물한다.

디올의 은방울꽃 접시 / 디올
디올의 은방울꽃 접시 / 디올

1954년과 1957년 컬렉션에서는 은방울꽃을 테마로 한 드레스와 정장이 선보였다. 디올리시모 향수는 은방울꽃 향을 재현한 대표작이다. 디올 메종의 홈웨어 라인도 은방울꽃 디자인으로 꾸며진다.

은방울꽃 / 국립생물자원관
은방울꽃 / 국립생물자원관

겔랑 역시 은방울꽃을 사랑한다. 매년 봄 한정판 뮤게 향수를 5000개 출시한다. 2025년에는 AI로 디자인한 진주와 18K 도금 아라베스크 줄기의 향수병이 공개됐다. 은방울꽃은 프랑스에서 5월 1일 노동절에 행운을 빌며 주고받는 꽃이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시작된 이 전통은 샤를 9세가 궁정 여성들에게 은방울꽃을 선물하며 퍼졌다. 결혼식 부케로도 인기다. 그레이스 켈리, 케이트 미들턴, 오드리 헵번이 은방울꽃 부케를 들었다.

은방울꽃 / 국립생물자원관
은방울꽃 / 국립생물자원관

은방울꽃은 작고 섬세한 모습과 독특한 향으로 럭셔리 이미지를 얻었다. 영하 25도에서도 자라는 강인함과 구근 식물의 생명력도 매력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 숨은 독성은 언제나 주의를 요구한다.

은방울꽃은 아름다움과 위험을 동시에 품은 식물이다. 계곡에서 마주치면 그 향기에 끌리겠지만 함부로 만지거나 먹어선 안 된다. 특히 산마늘과 혼동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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