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는 꿈이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가슴 속에 포르쉐 한 대쯤 품고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 911은 포르쉐의 걸쭉한 역사를 증명하는 명차다. 자동차 좀 아는 사람이라면 911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인다. 쭈그리고 앉은 두꺼비를 닮은 외모로 도로를 짓누르는 있는 자태는 많은 이들의 심장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단점 아닌 단점이 하나 있다. 복잡한 라인업이다. 까레라, 터보, 까브리올레, 그리고 타르가. 또 4, S, 4S, 그리고 GTS까지. 어려운 단어, 숫자와 알파벳 조합으로 많은 선택지를 제공하는 911 라인업은 난해할 정도다. 뭘 알아야 꿈을 꾸든가 하지. 911의 작명 방식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까레라Carrera’는 스페인어로 ‘경주’를 뜻한다. 포르쉐에게 ‘까레라’는 레이싱 정신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911의 전신이자 최초로 포르쉐 배지를 달고 세상에 나온 차량은 ‘356’이었다. 히틀러의 독주가 끝난 뒤, 페르디난트 포르쉐는 폭스바겐 ‘비틀’의 플랫폼과 구동 방식을 계승한 스포츠카 356을 만든다. 이렇게 각종 레이스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이 차량의 최고 모델에 붙는 이름이 ‘까레라’였다. 또 터보 차저를 탑재한 911과의 구분을 위해 자연흡기 911에 ‘까레라’를 붙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엔진 다운사이징이 상식이 되며 모든 911에 터보 엔진을 싣게 되었고, 결국 오늘날 ‘까레라’는 911의 기본 라인업을 일컫는 의미로 변하게 되었다. 현행 911 터보는 일반적인 도로 주행과 고속 주행에서 최고의 성능을 보이게끔 제작된 차량으로 가격으로나 성능으로나 ‘슈퍼카’에 가까운 모델이다.
이탈리아어로 ‘방패’를 의미하는 타르가Targa는 독보적인 지붕 형태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자랑한다. 스포츠카의 기본 덕목은 경량이다. 포르쉐 역시 이 부분을 간과하지 않았고, 지붕을 젖힐 수 있는 까브리올레Carbriolet 모델이 탄생했다. 하지만 오픈 톱 스포츠카는 치명적인 단점을 갖고 있었다. 지붕이 없으니 차량이 전복되었을 때 운전자의 머리를 보호해 수 없었던 것. 드라이버의 안전을 위한 바(bar)를 B필러에 추가한 것이 ‘타르가’의 시초다. ‘타르가’는 안전 확보를 위해 고안된 방식이지만, 오늘날 포르쉐를 대표하는 시그너처가 되었다.
타이어가 노면을 움켜쥐는 트랙션 성능은 스포츠카에게 중대한 요소다. RR(엔진 후륜 뒤 배치, 후륜 구동 기반)방식을 채택한 911의 막대한 성능을 뒷바퀴가 오롯이 받아낸다면 타이어가 그립을 잃을 수도 있다. 911에 붙는 ‘4’는 4륜 구동을 의미한다. 또 S는 엔진 출력을 키워 더 높은 출력을 발휘하는 모델에 붙는다. 또 GTS는 그란 투리스모 스포츠(Grand Turismo Sport)의 축약어로 까레라 라인업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는 모델에 붙는 이름이다. 그뿐만 아니라 GTS 모델에는 GTS에서만 누릴 수 있는 옵션이나 다양한 옵션을 합리적인(?) 가격에 묶어 제공하기도 한다.
꿈은 꾸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제대로 알고 꾸는 꿈은 더 달콤하지 않을까. 포르쉐의 근간이자 일상 속 스포츠 드라이빙이라는 가치를 처음으로 실현시킨 911. 복잡한 네이밍이 혼란스러웠다면 이제 알게 됐으니 다시 꿈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