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더 글로리’의 여운이 생각나며…영화·드라마 속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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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곡사
공주 마곡사 들머리의 ‘극락교’. 마곡사는 봄 풍경이 아름다운 사찰로 잘 알려졌다. 맑은 물이 흐르고 사위에 나무가 울창하다./ 김성환 기자

곧 부처님오신날(27일). 재미있게 사찰을 즐겨보자. 인기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했던 사찰 몇 곳을 추렸다. 성탄절이 그러하듯 종교와 무관한 사람에게 부처님오신날 역시 ‘축제’의 순간이다.

보광사
파주 보광사.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 시리즈 촬영지로 알려지며 알음알음으로 찾는 사람들이 늘었다. 왼쪽 건물이 대웅보전./ 김성환 기자
보광사 대웅보전2
파주 보광사 대웅보전 외벽에 그려진 민화 형태의 벽화/ 김성환 기자

◇ 경기 파주 보광사

파주 고령산 기슭에 보광사가 있다. 최근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 시리즈(2022~2023) 때문이다. 시즌 2에서 복수를 끝낸 동은(송혜교 분)이 새로운 복수를 다짐하며 찾아간 사찰이 여기다. 이곳에서 혜정의 남편이 될뻔한 태욱의 모친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보광사는 내력이 깊다. 신라의 고승 도선국사가 창건(894)했다고 전한다. 오래된 절은 묘한 힘을 가졌다. 애쓰지 않아도 일상의 먹먹함이 시나브로 풀어진다. 여기도 예외없다. 도시에서 멀지 않지만 일단 발을 들이면 곰삭은 시간의 무게가 경직을 풀어준다. 청아한 풍경소리가 정신을 맑게 한다.

보광사에서는 대웅보전을 눈여겨봐야 한다. 단청이 퇴색한 자태가 우아하다. 외벽에 그려진 민화 형태의 벽화도 흥미롭다. 편액(문 위에 거는 액자)의 글씨는 조선 21대왕 영조가 친히 썼다. 영조의 생모는 숙빈 최씨. 무수리출신으로 조선 19대 왕 숙종의 후궁이 돼 영조를 낳았다. 영조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보광사 인근 소령원에 묻고 보광사를 추도사찰로 승격시켰다. 당시 영조가 심었다는 향나무가 지금도 어실각을 지키고 섰다. 대웅보전 맞은편 만세루에 걸린 목어는 소설가 고(故) 이외수의 산문집 ‘하악하악’ 표지에 그려진 그것이다. 사찰 뒤 전나무 숲도 운치가 있다. 불자들이 많이 찾는 석불전은 탁 트인 전망이 좋다.

마곡사 솔바람길
솔숲이 우거진 ‘마곡사 솔바람길’/ 김성환 기자

◇ 충남 공주 마곡사

‘춘마곡, 추갑사’라 했다. 봄에는 마곡사가 예쁘고 가을에는 갑사의 운치가 그만이라는 얘기다. 마곡사는 공주 태화산 기슭에 있다. 신라시대(643)에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고려시대(1172) 보조국사 지눌이 중건한 것으로 전한다. 사찰 들머리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경내로 드는 ‘극락교’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고 사위는 온갖 나무들이 봄볕을 받아 반짝인다.

마곡사는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2001)에 나온다. 환생한 여자 친구를 만난다는 이 영화의 애틋한 스토리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운이 짙게 남는 작품이다.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하게 된 주인공 인우(이병헌 분)와 여자친구 태희(故이은주 분)가 시간을 보내며 가까워진 곳이 여기다.

마곡사에는 치열한 역사가 흐른다. 백범 김구가 마곡사에서 잠시 수행했다. 백범은 1896년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이에 대한 분노로 황해도 안악에서 일본군 장교를 살해한다. 이후 이곳에서 ‘원종’이란 법명으로 출가해 잠시 머물렀다. 당시 그가 산책하며 명상을 했다는 ‘마곡사 솔바람길’도 조성됐다. ‘백범 명상길’로도 불린다. 소나무 숲이 참 울창하다. 해방 후 다시 이곳을 찾은 백범은 당시를 회상하며 향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그가 머물렀다는 요사채(백범기념관) 앞에는 그가 심은 향나무가 있다.

선암사
선암사 승선교 아래에서 본 강한루/ 김성환 기자

◇ 전남 순천 선암사

지난해 세상을 떠난 배우 고(故) 강수연의 1주기 추모제가 얼마 전 개최됐다. 영화인으로서 그의 삶을 곱씹어보는 계기였다. 그는 영화 ‘씨받이'(1987)로 이탈리아 베니스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월드 스타’로 우뚝 섰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당시 공산권 최고 권위의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두 작품을 비롯해 그의 출연작들을 상영하는 추모 영화제도 열렸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에서 순녀(故 강수연 분)가 속세의 고통을 끊고 비구니가 되기 위해 덕암사를 찾는다. 덕암사의 실제 무대가 선암사다. 순천 조계산 동쪽 기슭에 들어앉은 고즈넉한 고찰, 이른 봄이면 원통전과 무우전 담장을 타고 매화 향기 진동하는 그 절이 맞다.

영화의 여운을 음미하고 나면 일주문 앞 승선교와 해우소는 구경하자. 승선교는 곡선이 아름다운 아치형 다리다. 선암사 해우소도 아름답기로 소문이 났다. 정호승 시인은 ‘선암사’라는 시에서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고 했다. 선암사의 해우소에서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줄 것이라며 ‘실컷 울어라’고 했다.

조계산 서쪽 기슭에는 송광사가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돼 고려시대 고승인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로 번성했다. 고승을 많이 배출한 승보사찰이다. 경남 양산 통도사(불보사찰), 합천 해인사(법보사찰)와 함께 삼보사찰로 불린다. 여긴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2022)에 나왔다. 해준(박해일 분)과 서래(탕웨이 분)가 종고루에서 법고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며 서로에게 호기심과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월정사
평창 월정사 전나무숲길/ 김성환 기자

◇ 강원 평창 월정사

오대산 기슭의 월정사는 전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수백 년 수령의 전나무들이 도열하며 하늘로 뻗은 풍경이 참 시원하다. 연인에게는 이 숲길이 ‘사랑의 성지’로 통한다. 드라마 ‘도깨비'(2016~2017) 때문이다. 김신(공유 분)이 은탁(김고은 분)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 여기서 촬영됐다. 드라마에서 계절은 눈(雪) 내린 겨울. 이맘때 풍경도 천연하다. 1km 남짓한 길이지만 도시생활의 생채기를 치유하는데 모자람이 없다. 일상으로 돌아와도 여운이 짙게 남는다.

숲길 끝에 월정사가 있다. 신라시대(643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적광전 앞 마당의 팔각구층석탑은 국보다. 가람들은 한국전쟁으로 모두 불탔고 현재 건물들은 1964년에 중건됐다. 그럼에도 오래된 절집의 품위와 기개가 느껴진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입구)까지 계곡을 따라 약 8.9km의 ‘선재길’이 조성돼 있다. 걷기 좋아하는 이들은 이 길을 걸으며 사색과 ‘힐링’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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