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청남대 개관 2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으로 반 고흐, 그 위대한 여정 레플리카(replica) 展이 열리고 있다.
청남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청남대길 646 청남대관리사업소
작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다면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면 되는데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입장하기 전 배너에 인쇄된 QR 코드를 스캔해서 큐피커 앱을 다운로드 받은 뒤 위치서비스 – 내 주변 박물관 보기 – 반고흐 그 위대한 여정을 선택하면 정해진 루트에 따라 설명이 나온다.
그 우측으로 색칠공부.
테이블에 놓여 있는 배경지 중에 마음에 드는 배경지를 선택한 뒤 준비된 색연필로 색을 칠하는 것.
아이들과 함께라면 무척이나 재미있어 할 듯하지만 나와 주변으로는 아이들 모습이 보이지 않아 아쉽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태어나 1890년에 사망한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로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여겨지며 약 900여 점의 그림과 1,100여 점의 습작을 정신질환 후 자살을 감행하기 전의 10년 동안 그려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천재란 확실히 무언가 다르구나 싶다.
충정도 여행 중에 들른 청주 청남대에서 전시 중인 반고흐 레플리카(replica) 전은 6월까지 계속될 예정이므로 충청도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는 분은 청주 청남대를 들러보심도 좋을 듯하다.
더블어 모네와 르누아르 기획전도 추진한다고 하는데 정확한 전시날짜와 전시장소 등에 대해서는 모르겠고 6월까지는 반 고흐 레플리카 전이 열린다고 생각하시면 될 듯하다.
레플리카(replica)는 원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동일한 재료, 방법, 기술을 이용해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재현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회화뿐만 아니라 미술, 공예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다.
때로는 원작자가 직접 제작하지 않고 엄격한 관리감독하에 타인에 의해 제작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귀중한 작품의 복제를 위해서 또는 작가의 작품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진행되는 경우와 문화재의 형상과 색채를 복원하려는 목적으로 시도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원작자가 원작을 재현하는 것을 레플리카라고 하는 반면 타인이 원작을 똑같이 모방하여 만든 미술품의 경우는 레플리카가 아닌 리프러덕션이라고 부르며 이는 단순한 모사나 인쇄기술에 의해 제작되는 복제와는 구별되는 하나의 작품세계로 인정받는다.
가장 대표적인 레플리카로 스포츠 우승컵을 예로 들수 있다.
보통 우승컵은 우승팀이나 우승자가 수여받은 뒤 보관을 하다가 다음 대회 때 반환하고 대신 본래의 것과 똑같이 만들어진 복제품을 받아 영구히 보관하게 된다.
솔직히 나라는 사람이 반 고흐의 원작과 레플리카 작품을 놓고 비교한다면 그 차이를 알 수 있을까?
나의 경우라면 절대 모를 것이다.
1885년 작품인 감자 먹는 사람들.
이번 충청도 여행 중에 들른 청주 청남대 반고흐 레플리카 전에서는 고흐의 작품과 함께 고흐의 생애 전반에 대한 이야기라 설명되어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해서 살펴보면, 반 고흐는 1880년경에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초기에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작품을 수없이 베껴 그리면서 드로잉과 정밀 묘사를 연습했다고 한다.
사람들이 손톱만한 스티커 한 장씩을 붙여 반 고흐 작품을 완성해 나가는 이벤트.
함께 만드는 고흐의 방.
반 고흐가 1888년에 그린 <협죽도가 있는 정물>은 그가 색채에 대한 관심이 높았던 시기에 그린 그림으로 이 작품을 통해 그가 표현하고자 한 색채 배치를 살펴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반 고흐가 1890년에 그린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길>이란 작품으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마치 불타 오르는 불길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연기처럼 보이기도 하는 작품이다.
이 그림의 이면에는 고흐가 즐겨했던 산책과 그 길의 아름다움 그리고 고갱이 녹아 들어 있다.
고흐는 고갱과 함께하는 산책을 즐겼는데 이때 그림에 대한 영감을 서로 나누고 의견을 교환했다고 한다. 이들 화가들이 하루종일 작업실에 틀어박혀 캔버스만을 바라보다 이 시간이 되면 얼마나 좋았을지 상상할 만하다.
고흐는 이러한 즐거움과 보이는 풍경을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늘어놓기 일쑤였다고 한다.
장남 빈센트 빌럼 반 고흐에게는 다섯 명의 동생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아트 딜러라는 직업을 가졌던 둘째 동생 테오도뤼스 테오와 매우 각별한 관계였으며 그의 편지 내용 중’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라는 구절이 나온다. 둘째 동생인 테오도뤼스 테오는 빈센트 반 고흐가 화가가 되도록 용기를 주었고 고흐가 죽을 때까지 정신적, 물질적으로 고흐의 든든한 지지자 역할을 했다고 한다.
빈센트 반 고흐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예술적인 것은 없다’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 어느 순간 어떤 상황에서 그리 말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고흐는 사랑에 굶주린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진정한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맞는 말인 것 같다.
축구 선수가 축구장을 두려워 해서는 안 되듯이 화가가 그림을 그려야 할 캔버스를 두려워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의 경험에 비추어 캔버스를 두려워 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가 되는 것도 사실이다.
너무도 유명한 작품인 <별이 빛나는 밤 ; The Starry Night>은 1889년 작품으로 그가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입원을 결심한 뒤 요양원의 창문으로 보이는 생 레미의 시가지 모습과 밤하늘을 그린 작품이다.
불타오르는 듯한 사이프러스 나무가 그림 안에 존재하지만 본래 이 나무는 없는 나무라고 한다. 다시말해 고흐가 임의로 그려 넣은 것인데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다는 인상파의 이념에서 벗어난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삼나무가 있는 밀밭 ; A Wheatfield, with Cypresses>이란 작품으로 1889년 작품이다.
고흐는 1890년 5월 생 레미의 요양생활을 정리하고 파리 북쪽 오아주 강변의 작은 도시인 오베르로 거처를 옮긴 뒤 심해지는 정신불열 증세에도 불구하고 2달간의 기간 동안 열정과 혼을 쏟아내어 80여 점의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고흐는 1890년 7월 27일 해질녘 밀밭으로 가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했고 그의 주치의였던 가세 박사와 동생인 테오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틀 뒤인 29일 37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아래 그림은 1889년 작품인 <귀에 붕대를 맨 자화상>
이 작품을 어떤 곳에서는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파이프를 물고 귀에 붕대를 한 자화상>,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등 다양하게 부르고 있는데 영문으로는 동일하다.
살아있는 존재를 그린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 자체가 대단한 일이고
너와 내가 알고 있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다.
우린 매일매일을 대단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이다.
충청도여행 청주 청남대 반고흐 레플리카展 영상 1분 8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