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추’ 그곳, 시애틀 현지인들이 주말마다 찾는 진짜 휴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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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도심 빌딩 숲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면, 현지인들이 주말마다 약속이나 한 듯 찾는 조용한 휴양지가 나타난다. 미국인들이 ‘바이폴라(Bipolar, 양극성 장애)’라 부를 만큼 하루에도 몇 번씩 해가 뜨고 짙은 안개가 내리는 시애틀의 날씨. 도심 안에서는 그저 변덕이지만 섬에 발을 딛는 순간 가장 극적이고 서정적인 풍경으로 탈바꿈한다.
한국인들에게는 배우 탕웨이와 현빈 주연의 영화 ‘만추(Late Autumn)’의 쓸쓸하고 낭만적인 배경지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원래 샌프란시스코에서 촬영될 예정이었으나 시애틀로 촬영지를 옮겼는데 결과적으로 섬 특유의 안개 짙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영화의 서사를 완성했다.
최근에는 할리우드 명작 ‘프랙티컬 매직(Practical Magic)’ 시즌 2의 촬영지로 현지에서도 요즘 가장 뜨거운 휴양지로 손꼽힌다. 시애틀 북쪽에서 페리를 타거나, 정체가 싫다면 섬 북쪽의 다리를 통해 차로 우회해 들어갈 수 있어 현지인들의 여행지로 사랑받는 장소들이다.
1. 보트 램프 (Boat Ramp)

영화 ‘만추’의 분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싶다면 보트 램프 선착장을 꼭 들러야 한다. 이곳은 영화 속 장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러 찾아오는 장소다.
보트 램프는 원래 지역 주민들이 개인 보트나 트레일러를 바다로 밀어 넣거나 끌어올리기 위해 콘크리트로 경사지게 만든 평범한 시설이지만 여행자의 눈으로 마주하는 공간은 전혀 다르다. 푸겟 사운드 해협의 잔잔한 바다와 거친 해안선, 세월을 버텨온 목조 건물이 함께 어우러져 지극히 서정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 찾으면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짙은 안개가 밀려오는데, 선착장 끝에 서서 파도 소리를 듣고 있으면 영화 속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화려한 조형물도 번잡한 상업 시설도 없다. 자연과 고요함만 남은 공간이라 사색에 잠기거나 사진 한 장 남기기에 더없이 좋다. 바로 옆에 포트 케이시 주립공원(Fort Casey State Park)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도 좋다.
Boat Ramp
NF-6128, Gold Bar, WA 98251 미국
2. 컴포트 오브 휘드비 와이너리 겸 비앤비 (Comforts of Whidbey Winery and B&B)

시애틀을 찾는 한국인 여행자들은 보통 스페이스 니들이나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위주의 코스를 밟는다. 하지만 시애틀 사람들의 주말 문화를 제대로 경험하고 대자연 속에서 쉬어가려면, 반드시 이 섬에 하룻밤을 더해야 한다.
이곳은 현지인들이 휴가를 떠날 때 가장 머물고 싶어 하는 아지트다. 푸른 포도밭이 끝없이 펼쳐진 이곳은 완전한 디지털 디톡스를 가능하게 하는 숙소다. 객실에는 텔레비전이 없다. 대신 침대가 일반 숙소보다 유독 높게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 포인트다. 침대에 누우면 커다란 창문과 눈높이가 딱 맞아 떨어진다.

서늘한 기후에서 자란 포도로 직접 양조한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들고 높은 침대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는 것. 시애틀 사람들이 주말을 보내는 가장 게으르고 럭셔리한 방식의 휴식 장소가 이곳이다.
Comforts of Whidbey Winery and B&B
5219 View Rd, Langley, WA 98260 미국
3. 프리마 비스트로 (Prima Bistro)

섬의 아일랜드 바이브를 느끼며 로컬 미식을 즐기려면 랭글리 마을의 프리마 비스트로로 향하면 된다. 태평양 북서부의 신선한 해산물에 프랑스 브라세리 감성을 접목한 레스토랑으로 주말이면 탁 트인 바다 전망 앞에서 여유를 즐기려는 시애틀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꼭 먹어야 할 시그니처 메뉴는 당일 수확한 홍합 요리다. 화이트 와인과 마늘, 샬롯, 버터를 넣어 자작하게 끓여낸 홍합 찜은 바다의 청량함과 버터의 고소함이 완벽하게 맞아 들어간다.
통통한 홍합 살을 발라 먹고 나서 진한 국물에 바삭한 바게트를 푹 적셔 먹는 맛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바삭한 프렌치 프라이와 로컬 화이트 와인까지 곁들이면 도시의 피로를 날리기에 충분한 한 끼가 완성된다.
Prima Bistro
201 1/2 1st St, Langley, WA 98260 미국
4. 포트 케이시 주립공원

배를 채운 뒤에는 포트 케이시 주립공원으로 향하자. 1차 세계대전 당시 완공된 군사 요새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공간으로 전쟁을 대비해 축조된 콘크리트 벙커와 거대한 포대가 미로처럼 얽혀 있어 서늘한 지하 세계를 탐험하는 듯한 재미를 준다.
총포 소리가 울리던 요새는 이제 잔디밭에서 연을 날리고 바다를 바라보는 평화로운 휴양지로 완전히 바뀌었다. 공원을 걷다 보면 이 섬의 진짜 주인인 야생 블랙테일 사슴 무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광경을 아주 가까이서 마주치기도 한다. 군사 요새의 거친 콘크리트, 몽환적인 바다 안개, 그 사이를 유유히 걷는 사슴의 실루엣. 이 섬에서만 볼 수 있는 조합이다.
글, 사진 / 시애틀=권효정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