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가봤다” 클림트 ‘키스’가 특급호텔에 등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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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오스트리아를 여행하며 가장 많이 검색했던 이름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였다. 벨베데레 궁전에서 클림트의 ‘키스(The Kiss, 1908)‘ 원작을 보자마자 왜 클림트가 황금빛 색채의 화가로 불리는지 단번에 이해했다. 굳이 가이드의 설명이나 오디오 해설을 듣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금빛 물감, 꽃 하나하나의 현란한 색감을 관찰하느라 눈을 떼지 못한 채 과연 110년 전 클림트가 살던 오스트리아는 어땠을지 상상했다. 오스트리아 빈을 다녀온 분들이라면 필자의 경험에 크게 공감하리라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화가를 줄 세우면 항상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클림트. 그의 작품에 역동적인 생명력이 더해져 관객 품으로 돌아왔다. 작품을 빛과 음악으로 새롭게 재해석한 전시 ‘구스타프 클림트, 골드 인 모션’는 옛 워커힐 시어터를 개조한 빛의 시어터 개관작이다.

지난 25일 워커힐호텔 빛의 시어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아트디렉터 지안프랑코 이안누치(Gianfranco Iannuzzi)“단순히 작품 앞에 서서 즐기는 전시가 아닌 발아래를 바라보면서도 감상할 수 있는 몰입형 전시를 만들고 싶었다”“관람객이 주체, 즉 actor로 참여하며 자신만의 전시를 만드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아트디렉터의 설명을 바탕으로 워커힐 시어터와 미디어아트 전시의 만남을 풀어내봤다.

Keyword 1.

워커힐 시어터

먼저 전시 공간의 특징을 짚고 넘어가려 한다. 아트디렉터는 처음 전시 공간을 확인했을 때를 회고하며 “관객들이 직접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극장이라고 생각해 무척이나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1963년, 현대식 무대시설과 함께 개관한 워커힐의 ‘퍼시픽 홀’은 한국 공연 분야뿐만 아니라 영화, 방송,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 역사적 의미가 남아 있는 곳이다. 워커힐 쇼를 대표하는 ‘하니비 쇼’는 당시 한국 사회에서 볼 수 없던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였고, 이를 통해 한국 문화 관광을 대표하는 극장으로 자리매김했다.

1978년, ‘워커힐 시어터(구 가야금 홀)’ 신축 이후로는 민속 공연과 함께 미국 ‘라스베이거스 쇼’, ‘할리우드 쇼’, 프랑스 ‘리도 쇼’, 영국 ‘런던스 피카딜리 쇼’ 등 세계 최정상급의 외국 쇼를 초청했다. 이후 누적 관람객 962만이라는 수치를 기록, 한국 공연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2022년 5월, 워커힐 시어터는 고화질 프로젝터와 서버, 스피커, 영상 음향 자동화 시스템 및 3D 음향 등 최신 기술에 조명과 무대장치 등 기존 공연장의 특장점을 녹여낸 새로운 문화 예술 공간 ‘빛의 시어터’로 재탄생했다. 워커힐 시어터의 공간적 특색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는데, 무대 앞을 살펴보니 공연용 리프트를 발견했다. 리프트 옆에 숨어있는 전통 악기와 공연 소품들이 이곳의 역사를 보여주는 듯했다. 또한 최대 21m인 무대를 그대로 유지해 광대한 스크린으로 작품이 펼쳐진다. 실제로 웅장한 스케일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Keyword 2.

1900년대 오스트리아로 떠나는 여행

시대에는 그 시대의 예술을, 예술에게는 자유를.

Der Zeit ihre Kunst, Der Kunst ihre Freiheit

빈 분리파 표어

본 전시에서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포함한 오스트리아 빈 미술계 거장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사실 클림트는 19세기 후반 링스트라세에 위치한 호화 건축물에 들어갈 장식화를 그리던 예술가 중 하나였다. 다음 세기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그는 보수적이고 지나치게 부르주아적인 아카데미 예술에 벗어나고자 ‘빈 분리파’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전통적인 ‘빈’에서 분리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주장한 예술운동이다. 약 120년 전 빈 분리파 잡지 표지와 포스터에 쓰였던 그래픽 디자인이 생각보다 세련된 모습이라 감탄했다.

클림트는 원근법과 그림자를 작품에서 배제해 작품을 하나의 종교적인 상징물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특징이 잘 드러나는 그의 대표작 ‘아델르 블로흐-바우어의 초상(Portrait of Adèle Bloch-Bauer, 1907)’과 ‘키스(The Kiss, 1908)’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 1905-1909)’ 등은 전시 세 번째 세션 ‘클림트: 황금기 Klimt: The gold period’에 몰려있다. 거대한 공간에 고화질로 투사하니 눈동자, 피부 주름 표현 등 디테일한 부분이 더욱 잘 보였다. 원작을 볼 때 신기해서 자세히 들여다봤던 것들이 거대한 사이즈로 눈앞에 펼쳐지니 강렬한 입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빈 분리파와 결별한 후 클림트는 자신의 회화 및 색채 연구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 새로운 주제로 ‘풍경화’를 선택했다. 오스트리아 아테르제 호숫가 마을과 삼림 지대도 화폭에 담았다. 아트디렉터 지안프랑코 이안누치는 “클림트가 장식가로 활동했던 시기의 작품들을 함께 전시해 1900년 당시 비엔나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전했다.

그다음으로 빛의 시어터를 가득 채우는 것은 에곤 쉴레의 작품이다. 인물 표현을 극대화한 초상화 시리즈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후 서로 뒤얽힌 인체가 리듬에 맞춰 움직이며 등장하는데, 클림트 화풍에 익숙해진 시점에서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다. 쉴레가 만들어낸 실루엣은 곧 클림트가 그린 여성들로 바뀐다. 클림트는 점점 황금기 화풍을 버리고 색채의 무한한 가능성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클림트만의 고유의 빛 표현을 통해 여성들을 화려하게 묘사했다. 여성성에 대한 이러한 회화적 찬사를 통해 클림트가 여성에 얼마나 매료됐는지 엿볼 수 있다.

Keyword 3.

깨알 같은 뷰 포인트

전시관에서 약 1시간 동안 머무르며 발견한 뷰 포인트를 소개한다. 일단 제일 흥미로웠던 곳은 중앙 무대 뒤쪽에 백스테이지를 연상하게 하는 공간이 있다. 벽면이 곡선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에도 작품이 투사되어 더욱 입체감 있게 즐길 수 있다. 백스테이지 중간에 전신 거울이 있는데 포토 스폿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두 번째 뷰포인트는 B1층에 위치한 ‘브릿지’이다. 스튜디오 앞에 있는 측면 무대와 연결되는 다리가 있는데,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면 개방감과 깊이감이 상당하다. 2층 높이의 공간을 극장으로 운영했기 때문이다. 브릿지 옆벽에도 작품이 나타나기 때문에 더 선명하게, 더 가까이에서 작품을 즐길 수 있는 것 역시 장점이다. 벽 끝마다 우뚝 솟은 기둥을 보고 있으니 극장이었던 시절의 이 공간이 어땠을지 궁금해진다.

마지막 뷰 포인트는 메인 무대 오른쪽에 위치한 ‘그린 룸’이다. 분장실이자 대기실로 쓰였던 공간을 탈바꿈해 새로운 포토존을 완성했다. 벽면에 거울이 여러 개 설치되어 있어 사진을 남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전시관에서 살짝 피로감을 느꼈다면 이곳에서 잠시 휴식하길 추천한다.

간담회장을 빠져나가는 아트디렉터 지안프랑코 이안누치에게 한국에서 특별히 영감을 받은 여행지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고궁’이라고 답했다. 모던한 건물들 사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궁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과거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알고, 현대와 과거의 조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그의 이러한 예술세계는 이번 전시에 정확히 녹아들었다. ‘구스타프 클림트, 골드 인 모션’ 전은 현대 기술과 역사적 의미를 지닌 옛 극장이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관객들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정미진 여행+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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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시어터

서울특별시 광진구 워커힐로 177 워커힐호텔 B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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