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지금도 노태우 비자금이 거론되나…SK의 역사 ‘바로잡기’ [데스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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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매수 자금에 노 전 대통령 비자금 포함 가능성 제기

법조계 일각 “법적 안정성 흔드는 징벌적 재산분할”

“아버지의 300억 불법정치자금이 1.4조로 불어나 딸에 상속된 꼴”

대법원 판결선 가정문제 별개로 역사적 고민 담겨야

민정당 대표최고위원이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1987년 6·29 선언을 기획하고 수락하는 모습을 연출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해 노 전 대통령이 민정당 대선후보로 지명된 직후 힐튼호텔에서 열린 축하연에서 대선 필승을 기원하며 건배사를 하고 있다. ⓒ연합

출근길 전철 안. 앞자리의 앉은 나이 지긋해 보이는 어르신들. 거침없는 대화에 귀가 쏠린다.

“그래서 SK가 이렇게 큰 데는 노소영의 공이 컸다는 거야?”, “노소영 아버지가 노태우던가?”, “그래. 노태우가 만든 비자금 300억원이 SK로 흘러 들어가 이만큼 컸으니 이혼 위자료로 줘야 한대”, “아니, 그 돈도 기업들에 갈취한 돈 아냐?”, “그러게. 군인이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고 대통령이 돼서 수천억원을 기업한테 뜯어내더니 그걸 자녀 앞으로 돌려놓은 셈인데, 법이 참 좋아”,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이라더니만. 정치군인들은 후손까지 권세를 누리고 참군인·가족은 비극적 삶을 살고 있으니…. 이러니 나라가 여태껏 이 모양, 이 꼴이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항소심 판결이 노 관장의 아버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 규명 쪽으로 초점이 맞춰지면서 나라안이 온통 떠들썩하다. 단순히 한 가정의 이혼 문제를 넘어 소문으로만 떠돌던 최고 권력자와 재벌 간 돈과 이권의 거래가 핵심이 되면서 판이 커졌다. 1조3808억원대 재산분할뿐 아니라 재판부가 노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과 후원 등을 ‘유·무형의 기여’로 인정한 부분을 두고 전철 안에서 만난 두 어르신과 같은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그런데 기분이 영 찜찜하다. 노 전 대통령이 누구인가. 죄목부터 무시무시한 ‘내란수괴죄’로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중대 범죄자였다. 노 전 대통령은 1979년 12월 12일 휴전선에 배치된 휘하사단(9사단)을 끌고 내려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함께 군사 반란을 주도해 전씨에 이어 권력을 장악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개인과 일족의 물욕을 채우기 위해 국가권력을 사유화했다.

그가 기업에서 뜯어낸 돈이 2628억원에 달한다. 더욱이 그는 최종심에서 징역 17년을 선고받았지만, 특별사면을 받아 죗값도 온전히 치르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은 무기징역 선고까지 받았던 전직 대통령과 그 일가가 온갖 의혹의 대상이 되면서도 부귀영화를 누리며 활개를 치고 사는 모습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왼쪽부터 최태원 SK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연합

하지만 서울고법 가사2부의 이번 판결은 국민 일반의 법 감정과는 확연히 차이를 드러낸다. 무엇보다 천문학적인 뇌물을 받아 이리저리 숨겨놓고는 돈이 없다고 잡아떼다가 할 수 없이 나온 비자금 메모를 증거로 인정했다.

그 돈의 조성 경위나 불법성 여부 등은 따지지 않은 채 ‘선경 300억원, 최 서방 32억원’ 등이 적힌 메모를 근거로 최 회장의 대한텔레콤 주식 매수 자금에 사실상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포함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아버지 최종현 선대회장으로 받은 돈이란 최 회장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이 돈을 노 관장의 ‘기여(?)’로 인정했다. 노 관장은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종잣돈 삼아 수조원대의 재산가가 된 셈이다.

더구나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 최종현 선대회장의 방패막이 역할을 했다면서 경영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했다. 세간의 비자금 제공설, 각종 특혜설을 모두 인정했다. 권력과 기업의 검은 뒷거래를 법의 테두리내로 끌고 온 것이다. 법이 불법 자금의 상속까지 인정하는 게 과연 옳은지 논쟁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항소심 재판부가 법리나 법적 검증보다는 가정을 깼다는 부정적 선입견이나 편견들을 징벌에 대거 반영한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2심 판결이 나온 즉시 최 회장 측이 “재판이 지나치게 편파적”이라며 “비자금 유입 및 각종 유무형의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고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루어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 없다”고 상고 의사를 밝힌 것도 같은 이유다.

유책배우자로서 최 회장이 개인적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지만, 노 전 대통령이 SK그룹 성장에 어마한 기여를 했다고 판단한 것은 다른 문제다.

무엇보다 과거 이미 우리 사법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내란죄와 뇌물죄 등의 책임을 물었다. 그 주역이 이미 사망했고 시간이 오래 지났다는 것을 제외하곤, 그 판결을 달리 취급해야 할 까닭을 알기 어렵다.

아무리 가사 소송이라지만 비자금과 대통령의 후원 등 불법 요소를 재산분할에 반영하고 이것이 인정된다면 이건 정의로운 판결이라 할 수 없다.

애초에 재판부는 1조3808억원 재산분할의 근거가 된 SK C&C 주가를 잘못 계산하기도 했다. 재판부도 1998년 주당 가치는 100원이 아닌 1000원이 맞는다며 계산 오류를 인정했다. 이렇게 되면 재산분할 범위와 비율이 바뀌는 것으로 재산 분할액도 바뀌는 게 이치에 맞는다.

‘답정너'(정해진 답으로 대답만 해) 결론이 아니라면 다시 한번 대법원의 판단을 받는 게 타당하다. 그리고 이 판결로 수십 년 한국 현대사를 짓밟아온 그런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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