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집안 환경에서 자란 대기업 직원이 오랜 기간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고 호소한 글에 달린 조언 댓글이 깊은 공감을 얻고 있다.
대기업 사원 A 씨는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나도 낳음 당한 거 같아’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좋은 집안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이유 없이 우울해서 미칠 것 같다는 내용이 담겼다.
A 씨가 작성한 글은 다음과 같다.
집은 잘사는 편이고, 가족 간의 관계도 좋아. 부모님도 건강하시고, 사이도 좋으셔. 책임감 있으시고, 교육도 잘 받으셨어. 특히 어머니 댁은 대대로 부자야. 남들도 영미권 유학 다녀온 나를 금수저로 생각해.
근데 나, 살고 싶지 않아. 매일, 글 쓰는 이 순간에도.
중학교 때부터 꾸준히 상담 치료 받았고, 지금도 주기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 다녀.
근데 이유 없이 너무 우울해, 미칠 것 같아.
난 세상에 태어나기 싫었단 말이야. 진짜 진짜 하루도 빠짐없이 안 좋은 생각을 해.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태어난 이유를 모르겠어. 살아야 할 이유는 더 모르겠어. 진짜 벼랑 끝에서, 아무 삶의 이유도 없이 매일 버티는 느낌이야.
행복? 언제 느껴봤는지 모르겠어. 우리 집에서는 행복이란 단어를 나태, 안주, 뒤처짐으로 여겨서 들어본 적이 없거든.
나는 내 대에서 이 불확실성과 고통, 그리고 이유 없는 우울감을 물려주는 걸 끊기로 마음먹었어.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시면 나도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 같아. 남은 재산은 사회에 기부하고.
해당 사연을 접한 많은 누리꾼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이 가운데 한 누리꾼이 남긴 장문의 조언 댓글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해당 누리꾼이 남긴 댓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가정 환경이나 경제 상황은 다르지만, 초등학생 때부터 우울했고 중학교 때부터 극단적 선택에 관한 생각에 시달렸어요. 그래서 20대를 우울증으로 통째로 날리고, 이제 치료 막바지에 이르러가는 30대라서 공감이 돼요.
기질적으로 예민하거나 부정적인 감정이 더 활성화되는 사람들이 있죠. 저도 그랬고요. 편두통이나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는 분들은 조금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편두통이 심한 분들은 항상 아프고, 어떨 땐 견디기 힘들잖아요. 제목이 과격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감정이 고통으로 치환되는 상태에선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복통이나 두통처럼 신체적인 증상으로 발현되지 않아도 고통스럽게 느껴져요. 뇌가 그렇게 인식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이 커지면 부모님에게 원망이 돌아가는 건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어쩌면 ‘행복’을 가르쳐주시지 않은, 내가 우울증에 걸린 건 일정 부분 부모님의 탓이라는 마음이 은연중에 있을 수도 있겠고요.
글 쓴 분께서 오래 치료받으셨고 개인적으로 노력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그럼에도 차도가 없으니 절망이 되풀이되고 죽음을 탈출구로 바라시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전문가에게 이해받아도 가까운 사람에게 진정으로 이해받기 힘들죠.
제 경험을 빌리자면 그러한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느라, 어쩌면 사회에서 우러러보는 유리한 조건과 환경이 주어졌기에 더 자신을 갉아먹지 않으셨을까 생각해 봅니다. 특히 한국은 사회적 기조가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 있기에 더욱 괴리를 느끼실 거고요. 하지만 우울증은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환경적 요소들이 모두 어우러져서 박자를 맞춰 치료해야 나아가는 병이기에 한 요소가 충족돼도 다른 요소의 균형이 맞지 않으면 우울할 수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우울을 비롯한 모든 감정을 느껴요. 다만 우리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하는 감정도, 부정적이라 ‘치부’하는 감정도 과잉으로 장기간 지속되면 문제가 되는 거니까요.
글쓴이님께서 얼마나 노력하셨는지 알기에 섣불리 말하기 어렵지만, 치료의 방법이 정말 많아요. 정신과만 해도 일반적인 약물, 신약 주사, TMS, ECT 등, 심리상담도 선생님의 역량과 합에 따라 효과가 천차만별이고, 정신분석도 있죠. 운동, 규칙적인 습관, 명상, 일기 등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도 무수하고요. 그리고 호르몬 검사하신 것처럼 갑상선, 당뇨, 빈혈 외에 영양소 검사해서 부족한 영양소 채우는 것도 의외로 큰 효과가 있어요.
종교나 연인 등 외부에서 마음을 해결하려 하면 오히려 미궁에 빠지더라고요. 전 그랬던 것 같아요. 운동하시는 건 대단해요! 이미 절반은 하셨네요. 다만 운동이 생물학적으로 도움이 돼도 심리적인 원인은 해결해 주지 못해서 괴로우실 것 같아요. 🙂
우울증은 생각의 병이죠. 오래 상담 치료를 하셨다고 하시니 마음을 많이 들여다보셨겠지만, 진짜 치료는 오롯이 혼자가 될 때 시작되더라고요. 신이나 연인, 가족이 아닌 누군가를 통해서가 아닌 내가 똑바로 내 마음을 볼 때, 그리고 내 목소리를 듣고 수용했을 때 사라지더라고요. (간단하게 예시를 들면, ‘나는 우울해. 죽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 때 ‘그러면 안 돼’가 아니라 ‘아, 나 지금 죽고 싶구나.’에서 멈추는 것부터요.
그걸 표면적으로 인식해서 풀어가게 하는 게 상담이고, 혼자 하면 일기, 머릿속에서 하면 명상이 돼요.
글쓴이님은 무엇을 해보셨고, 어떤 인생을 걸어오셨을까요?
버스를 탈 때도 창가 위치에 따라 다른 풍경이 보이고, 노선에 따라 바깥이 달라져요. 그래서 댓글에서도 이전과 다른 길을, 다른 선택을 해보시라고 권하는 거예요.
어른들이 이렇게 말하곤 하죠. “이제 궁금한 것도 없다.” 그런데 저희 할머니도 막상 경험해 보지 못한 예쁜 장소에 모시고 가면 좋아하세요. 저는 국궁과 양궁을 취미로 하는데, 이것도 30대가 돼서야 처음 해보고 재밌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국궁장에는 나이가 50세가 넘어서 은퇴하고 취미 붙이는 분도 많답니다.
이렇듯 나는 나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해도 내가 몰랐던 면이 많을 거예요. 또 사람은 가변적이기에 이전에 싫었던 것이 좋아질 수도 있고요. 인생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답니다. 그렇기에 불안하지만, 짜릿하게 즐거울 수도 있고, 눈물 나게 행복해질 수도 있죠. 희망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이걸 희망이 아닌 사실로 인정하고 내 하루에게 기회를 주면 어떨까요? 그토록 노력했는데 오늘 행복하지 못했어도 어때요. 내가 노력했던 사실은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는데요. 사실은 변치 않아요. 그리고 그 노력이 엮어져 글쓴이님이 다 놓고 떨어지는 순간에 안전망이 돼 줄 거예요.
누구에게나,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문제가 주어져 있어요. 그 문제는 다른 사람에겐 쉬워도 내겐 유독 풀기 어려운 법이죠. 그런데 각자 다른 문제를 받아놓고서 문제끼리 비교할 수 있을까요? 그저 나는 나의 난제를 묵묵히 풀어갈 뿐이죠.
지나가려다 괜히 저를 보는 마음에 긴 이야기를 쓰게 됐어요.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자신에게 관대할 수 있기를.
나를 사랑하고 싶은 수많은 나날이 쌓여 끝내 나를 사랑하게 되기를.
내가 알던 나를 넘어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기를.
나아가 걸음마다 행복을 발견하게 되기를.
응원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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