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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찬란하게] 기억해야 할 수많은 소녀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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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여전히 찬란하게’가 극장가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가 극장가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단짝 정임(차미경 분)과 60년 만에 다시 만난 순옥(김혜자 분).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꿈꿔온 노래자랑에 나가기 위해 서울로 향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정임은 자신의 이름도, 꿈도, 함께했던 시간도 조금씩 잊어간다. 순옥은 사라져가는 기억을 붙잡으려는 듯 오래전 이야기를 꺼낸다.

1942년, 열일곱 살 순옥(박서경 분)과 정임(최주은 분)은 둘도 없는 친구다. 노래를 좋아하는 정임은 서울에서 가수가 되길 꿈꾸고, 순옥은 그런 친구를 스타로 만들겠다며 함께할 미래를 그린다. 하지만 마을에는 공장 취직을 빌미로 소녀들을 잡아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고, 두 사람은 위협을 피해 몸을 숨긴다.

영화 ‘여전히 찬란하게’는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을 함께한 단짝 친구를 60년 만에 다시 만난 순옥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거미숲’ ‘오직 그대만’ 등을 연출한 송일곤 감독의 신작으로, 김혜자가 2017년 ‘길’ 이후 9년 만에 선보이는 스크린 복귀작이자 연기 인생 65주년을 맞아 내놓는 작품이다. 앞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오는 21일 개봉해 더 많은 관객과 만난다. 

비극을 바라보는 사려 깊은 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영화는 일본군 ‘위안부’라는 아픈 역사를 두 소녀의 우정과 기억을 통해 풀어내는데, 자극적으로 재현하거나 피해자의 아픔을 전시하지 않는다. 대신 웃고 장난치고 노래하며 미래를 꿈꾸는 두 소녀의 시간을 담담히 보여준다. 두 소녀의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빛날수록 그 모든 것을 앗아간 시대의 비극은 더 아프게 다가온다.

진한 호연을 보여준 김혜자(왼쪽 위)와 최주은(오른쪽 아래).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진한 호연을 보여준 김혜자(왼쪽 위)와 최주은(오른쪽 아래).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도 영리하다. 60년 만에 다시 만난 순옥과 정임의 현재와 두 사람이 가장 찬란했던 시절을 오가며 조금씩 기억의 조각을 맞춰간다. 익숙하게 흘러가는 듯했던 이야기는 후반부에 이르러 새로운 의미를 얻고, 앞서 지나온 장면과 인물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 과정에서 정임이라는 한 소녀를 통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수많은 소녀들을 떠올리게 한다. 순옥이 평생 정임을 잊지 못했던 마음은 그래서 더 아프게 와닿는다. 마지막에 건넨 ‘기억할게’라는 말도 더욱 깊숙이 파고든다. 한 친구를 향한 말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수많은 이들에게까지 닿으며 그 무게는 더욱 커진다. 

배우들의 열연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어린 정임을 연기한 최주은이 인상적이다. 사랑스럽고 당찬 소녀의 모습부터 두려움과 절박함까지 섬세하게 오간다. 영화의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는 후반부 김혜자와 마주하는 장면에서도 밀리지 않고 제 몫을 해내며 강한 시너지를 만든다. 뮤지컬 장면도 흠잡을 데 없이 소화한다. 맑고 힘 있는 목소리로 정임의 꿈과 감정을 오롯이 전하며 깊은 여운을 남긴다.

김혜자는 말 그대로 압도적이다. 큰 몸짓이나 긴 대사 없이도 눈빛과 표정, 목소리만으로 순옥이 견뎌온 긴 세월을 납득하게 한다. 스크린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이다. 왜 김혜자여야 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다른 배우로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오직 김혜자이기에 가능한 순간을 완성한다. 러닝타임 118분, 오는 2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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