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 잃어도 “하고 싶은 건 작품”..고 이순재의 열정은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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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건 작품밖에 없지.”
지난 25일 타계한 배우 고 이순재(91)가 세상과 이별하기 6개월 전 병상에 누운 채 연기에 대한 끊이지 않는 열정과 애정을 드러낸 사실이 새삼 다시 알려지면서 안타까움과 함께 감동을 안기고 있다. 몸이 건강해지면 하고 싶은 것, 바로 작품이며 연기였다.
이순재가 28일 오후 방송된 MBC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배우 이순재, 신세 많이 졌습니다’를 통해 시청자를 다시 만났다. 다큐멘터리는 당초 이순재의 삶과 연기 인생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제작됐다. 하지만 그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다큐멘터리 제작이 중단됐다. 결국 다큐멘터리는 타계 이후 고인에게 바치는 헌정의 영상이 됐다.
다큐멘터리에서 이순재는 지난 5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는 모습이 담겼다. 당시 그는 자신의 소속사 이승희 대표와 대화를 나눴다. 이순재는 “선생님, 몸 건강해지시면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라는 이 대표의 물음에 “하고 싶은 건 작품밖에 없지”라고 답했다. 이에 이 대표는 “작품은 몸 회복하시고 천천히 준비하시면 될 것 같다. 마음 편하게 잡수고 계시라”고 말했다. 이순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큐멘터리는 이순재가 또 작년 자신에게 KBS 연기대상을 안겨준 드라마 ‘개소리’를 촬영할 때 이미 실명 직전의 상태였다는 사실도 알렸다. 이순재는 “작년 10월 촬영하고 올라오니까 안 보여. 병원 갔더니 (왼쪽)눈이 안 보인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에 “왼쪽 눈은 안 보이고, 오른쪽 눈도 100% 다 보이는 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순재는 연기에 대한 열정을 더욱 드러냈다. 그는 대본을 읽을 수 없는 상황에 매니저에게 대본을 큰 소리로 읽어 달라고 요청했다. 소리를 듣고 “외우겠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연기와 작품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은 이순재는 지난해 KBS 연기대상 트로피를 안고 이렇게 자랑하듯 말했다.
“야! 무겁다.”
이 대표는 “(그 말에)70년의 연기가, 세월이 녹아 있다고 생각한다”고 돌이켰다.
이날 다큐멘터리 방송에 내레이터로 참여한 배우 이서진은 더 이상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선생님, 이번 여행은 함께 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해 시청자의 가슴을 울렸다. 이서진은 2013년과 2018년 tvN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를 통해 이순재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 그 길에 신구, 박근형, 백일섭도 동행했다. 이들은 이제 동료이자 선배, 스승으로서 고인을 바라보고 있다.
시청자들도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안타까움과 고인에 대한 존경심을 나눴다.
“하늘에서도 연기하고 계실 것 같다”(레몬***) “진정한 열망과 연기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다(심플*****)” “한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신 분은 언제나 존경스럽다”(du***) 등 온라인 카페와 블로그, 언론 기사 댓글 등에서 슬픔을 공유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고 이순재는 1935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서울대 철학과 3학년 재학 중이던 1956년 연극 집단 떼아뜨르 리브르에 입단해 유진 오닐의 ‘지평선 너머’로 데뷔했다. 1960년 김의경 등과 함께 한국 최초의 동인제 극단인 실험극장을 창단했다.
1961년 KBS 개국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의 주연으로 활약하며 방송 무대로 영역을 넓힌 고인은 1963년 박종호 감독의 ‘그 땅의 연인들’로 스크린에도 나섰다. 이후 TV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오가며 활발히 연기 활동을 펼친 고인은 1992년 당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MBC 주말극 ‘사랑이 뭐길래’ 속 ‘대발이 아버지’로 추억된다.
지난 70여년 동안 175편의 드라마와 150여편의 영화, 100여편의 연극에 출연한 그는 ‘영원한 현역’으로 남았다. 정부는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