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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사는 벤처기업의 ‘백기사’인가 ‘흑기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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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사업금융회사, 이른바 ‘신기사’는 벤처투자사와 더불어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탈(VC)의 양대 축을 이룬다. 신기사는 기술을 개발·응용해 사업화하는 ‘신기술사업자’에 자금을 투자하거나 장기간 저금리로 빌려주는 융자 및 경영·기술 지도를 할 수 있다.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 경영자에게 신기사는 기업 성장을 뒷받침하는 ‘백기사’인 셈이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신기사가 사업에 실패한 중소기업 경영자의 재도전을 가로막는 ‘흑기사’가 되었다는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투자한 중소·벤처기업이 사업에 실패할 경우, 신기사는 제3자인 경영자에게 투자금 회수에 대한 연대책임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경영자가 경영권을 잃거나 대규모 채무를 지면서 다시 일어날 여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평선에너지 사례가 다시 불붙인 연대책임 논란

29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폐비닐·플라스틱으로 열분해유를 만드는 비상장사 지평선에너지의 김재흥 대표가 최근 신기사 측과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지평선에너지는 신기사인 타임폴리오캐피탈이 팍스톤매니지먼트와 함께 공동 위탁운용사(GP)를 맡은 신기술사업투자조합(이하 투자조합)으로부터 2024년 8월 말 85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투자를 받았다. 전환사채는 채권자가 일정 기간이 지난 시점부터 미리 정한 가격(전환가액)으로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 채권을 말한다. 

이때 투자조합은 지평선에너지의 전북 군산 제2공장에 채권최고액 110억5000만원까지 담보하는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동시에 김 대표에게 채무 연대책임을 지게 했고, 김 대표가 개인 재산으로 채무를 갚은 뒤 회사에 반환을 청구할 권리인 구상권 행사를 제한했다. 작년 4월에는 김 대표가 보유한 지평선에너지 주식 4만주를 추가 담보로 잡았다. 

투자조합은 지평선에너지가 2025년부터 연간 영업이익 30억원 이상을 거둬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재무약정도 체결했다. 그런데 지평선에너지는 작년에 영업이익 10억원을 올렸다. 이는 투자조합이 올해 5월에 기한이익상실을 통보하고 전환사채의 조기상환 요구 및 담보권 행사에 나선 이유 중 하나가 됐다. 기한이익상실은 채무자가 약속을 어기거나 신용 상태가 크게 나빠져서 채권자가 원리금 상환을 바로 요구할 수 있는 상황을 말한다.

김 대표는 팍스톤매니지먼트와 관련된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금융감독원에 불공정거래 신고를 했고 법적 분쟁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서울지방법원이 8월 김 대표가 제기한 담보권 실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일단은 신기사 측이 법적 우위를 먼저 차지했다. 

다만 이번 일로 신기사가 투자한 중소·벤처기업 경영자에게 너무 큰 연대책임을 요구한다는 논란이 다시 떠올랐다. 전환사채의 경우 주식 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채무자의 신용도가 매우 낮거나 회사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만 담보를 잡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타임폴리오캐피탈과 팍스톤매니지먼트가 GP를 맡은 투자조합은 군산 제2공장에 이어 김 대표의 지평선에너지 주식까지 담보로 추가 설정했다. 그리고 기한이익상실 통보 이후 전환사채의 주식 전환이나 제2공장 담보권 행사 대신 김 대표의 주식에 담보권을 실행했다.

이 투자조합은 김 대표가 보유한 지평선에너지 주식 가치를 93억9300만원으로 평가하면서, 주식 취득 뒤에도 김 대표에게 10억7400만원 규모의 채무가 남는다고 알렸다. 신기사 측의 요구대로 된다면 김 대표는 지평선에너지 경영권을 잃는 동시에 대규모 채무도 지는 셈이다.

타임폴리오캐피탈은 이와 관련 “소송 중이라 구체적인 사항을 말하기 힘들다”라고 밝혔고, 팍스톤매니지먼트는 질의에 답변을 하지 않았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8월5일 자신의 SNS에 대법원의 어반베이스 관련 판결과 관련해 우려를 나타냈다. /사진=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 SNS 캡쳐

앞서 논란 올랐던 어반베이스·오지큐

물론 타임폴리오캐피탈과 팍스톤매니지먼트가 법을 어겼다고는 볼 수 없다. 일단 신기사의 기반이 되는 여신금융전문업법에는 제3자의 연대책임을 물으면 안 된다는 내용이 없다. 김 대표가 투자계약과 주식 담보 요구를 당시에는 거절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대법원이 신기사 측의 손을 최종적으로 들어준 어반베이스와 오지큐의 사례도 있다. 

신기사 등록사인 신한캐피탈은 건축플랫폼 스타트업 어반베이스에 상환전환우선주(RCPS) 형태로 5억원을 투자했다. RCPS는 우선주에 투자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상환권과 우선주를 보통주로 바꿀 전환권을 모두 부여한 금융상품을 말한다. RCPS에는 회사 또는 어반베이스 창업자 하진우 전 대표에게 주식 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 ‘풋옵션’ 조항도 포함됐다. 

자금난에 빠진 어반베이스가 2023년 12월 기업회생을 신청하자, 신한캐피탈은 어반베이스에 풋옵션을 행사했다. 이를 회사에서 감당하지 못하자 하 전 대표에게 주식 매수를 청구했다. 법정 공방이 이어진 끝에 대법원은 올해 4월 하 전 대표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 결과 하 전 대표는 이자를 포함해 약 13억원을 신한캐피탈에 물어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신기사 브레이브뉴인베스트먼트가 비전크리에이터와 함께 공동 GP를 맡은 투자조합도 2021년 지식재산권(IP) 거래플랫폼 기업 오지큐의 게티이미지코리아 인수 성사를 전제로 90억원을 투자했다. 이때 투자계약에는 오지큐가 인수에 실패할 경우 투자대상기업 또는 이해관계인이 투자금을 상환하는 규정이 들어갔다. 

인수가 무산되자 투자조합은 이해관계인인 신철호 대표에게 투자금을 갚을 것을 요구했다. 역시 법적 분쟁 끝에 대법원이 올해 4월 상고를 기각하면서, 신 대표도 투자조합에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약 120억원을 물어줘야 하게 됐다.

둘 다 신기사가 투자기업 경영자에게 연대책임을 요구하는 것이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그러나 두 사례 모두 투자기업 경영자가 고의적 중·과실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대규모 채무를 안겨 실패를 극복하기 힘들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8월 어반베이스 사례와 관련해 올린 글에서 “스타트업 사업 실패의 책임을 창업자가 본인 돈으로 감당해야 한다면 스타트업에 뛰어들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며 “스타트업 업계에서 창업 의지를 꺾는 판결이라며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제3자 연대책임, 벤처투자사는 안 되고 신기사는 되나

신기사와 벤처투자사의 형평성 문제도 나온다. 벤처투자사의 법적 기반인 벤처투자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벤처투자법)을 소관하는 중소벤처기업부는 2023년 4월13일 ‘벤처투자조합 등록 및 관리규정’을 통해 벤처투자사가 투자계약상 제3자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것을 제한했다. 나아가 중기부는 이 조항을 벤처투자법으로 상향 입법해 작년 12월30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의적 중·과실이 없는 제3자에 대한 연대책임을 허용하지 않는다. 

벤처투자 전문가인 변승규 법무법인 세움 변호사는 “이전에는 벤처투자사도 중소·벤처기업에 투자하면서 경영자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경우가 많았다”며 “경영자에게 연대책임을 묻지 않는 게 맞다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관련 입법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신기사에게 적용하는 여신전문금융업법(이하 여전법)을 고쳐 벤처투자사와 거의 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신기사 역시 투자기업 경영자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행위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김한규·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안철수·김성원 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 의원 여러 명이 비슷한 내용의 여전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다.

여전법 소관 부처인 금융위원회 역시 지난달 17일 간담회를 열어 신기사와 벤처기업 및 전문가의 의견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김진흥 금융위 금융산업국장은 “시장의 다양한 의견과 실제 계약관행을 충분히 검토해 필요한 경우 모범규준과 법령 개선뿐 아니라 시장의 자율적 계약관행 개선 같은 다양한 방안을 폭넓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신기사 사이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 신기사가 다수 가입한 여신금융협회는 올해 2월 ‘제3자에 대한 연대책임 부과 관행 개선을 위한 모범규준’을 만들었다. 그리고 8월 이 모범규준 내용을 바꾸면서 연대책임 제한을 적용하는 기업을 신기술사업자 전체로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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