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국제 자동차 전시회 ‘2023 서울 모빌리티쇼’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9일까지 11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막을 내렸습니다. 각종 기사와 사진, 영상부터 관람객들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후기까지 각종 소식이 넘쳐나고 있죠. 행사 기간 신문 지면을 통해 충분히 다루지 못했던 모빌리티쇼와 자동차, 그리고 산업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첫 번째 순서는 KG모빌리티(옛 쌍용자동차)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빌리티쇼. 그러니까 예전 용어로 모터쇼의 꽃은 역시 ‘월드 프리미어(세계 최초 공개)’입니다. 이번 2023 서울 모빌리티쇼에서는 신차와 콘셉트카(개발 방향을 담은 시제차)를 포함해 월드 프리미어 8종이 출품됐습니다. 아시아 프리미어(아시아 지역 최초 공개)는 4종, 코리아 프리미어(국내 첫 공개)는 9종이었죠.
월드 프리미어 8종 중 최다인 4개를 선보인 회사가 바로 KG모빌리티(KG)입니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토레스의 전기차 버전 ‘토레스 EVX’를 포함해 콘셉트카 F100, O100, KR10까지 다양한 자동차를 쏟아냈습니다.
KG는 모빌리티쇼 행사장에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2100㎡ 넓이의 부스를 마련했습니다. 가장 넓은 전시장 면적을 사용한 현대자동차(2602㎡)에 비해 조금 작기는 했지만, KG 전시장도 충분히 넓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주말 평일 가리지 않고 수많은 관람객들이 몰려들어 KG모빌리티의 차량들을 살펴봤습니다. 소비자들의 높은 관심이 이어지자 KG 관계자들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끊이질 않더군요.
전시장 가장 중앙에 위치한 차는 토레스 EVX였습니다.
KG모빌리티로 사명이 바뀌기 전, 쌍용자동차가 내놓은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토레스의 전기차 버전이죠. 전조등 등 외관은 약간 다릅니다만, 전체적인 느낌은 상당히 유사합니다. 아무래도 토레스의 인기가 좋고, 같은 이름을 쓰는 만큼 디자인을 크게 바꿀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다만 양산형 실차가 아니라 전시를 위해 만들어놓은 모델인 만큼 향후 디자인은 미세하게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전시용 차량이기 때문에 기자들은 물론 일반 관람객들도 토레스 EVX 내부에 앉아볼 수는 없어 아쉬웠습니다.
KG는 모빌리티쇼 개막과 함께 토레스 EVX 사전 예약에 들어갔습니다. 올해 하반기(7~12월) 판매에 들어갈 자동차 치고는 상당히 빠르게 사전 예약이 시작됐는데요. 이는 ‘KG모빌리티’ 사명 선포식과 관련이 있습니다. KG모빌리티는 지난달 30일 새 사명 선포식을 열고 ‘쌍용’이란 이름과 결별했습니다. KG모빌리티로 새 출발을 선언하면서 ‘토레스 EVX’을 공개했죠. 아직은 ‘쌍용 토레스’가 익숙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KG의 토레스 EVX’로 빠르게 바꾸어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양산 시점이 2달여 남은 만큼 토레스 EVX의 가격과 상세 재원은 미정입니다. 다만 KG모빌리티 측은 토레스 EVX의 가격대를 트림에 따라 △E5 4850만~4950만 원 △E7 5100만~5200만 원 수준으로 제시했습니다. 국고 보조금 한도 전액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이고, 지역에 따라 3000만 원대 진입도 노려볼 수 있다는 설명이 함께 붙었네요. 전기차 구매자들이 중시하는 1회 충전 시 주행거리는 420㎞ 이상이지만 이 역시 바뀔 수 있다고 합니다. 쌍용차가 가지고 있던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있는 자동차라는 정체성을 전기차에서도 유지하겠다는 의지로 보입니다.
토레스 EVX 못지않게 관심을 끈 모델은 F100입니다. 쌍용차의 대표 상품인 준대형 SUV 렉스턴의 헤리티지(유산)를 이어받게 될 차라고 합니다. 직선적이면서도 강인한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전기차임을 표현하기 위해 전면에 블록 느낌을 주는 조명을 설치해 미래형 자동차의 느낌을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KG 전용 전기차 플랫폼을 처음 적용한 차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넓은 실내 공간을 갖출 것이란 기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밖에 토레스 EVX를 기반으로 한 전기 픽업트럭 콘셉트카 O100, 전기차 및 내연기관으로 동시에 개발되고 있는 KR10 콘셉트카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 차들을 통해 KG가 강인하고 오프로드(험로 주행)에 적합한 형태, 그리고 누가 봐도 ‘아 KG 차구나’라고 할 만한 ‘패밀리룩(제조사를 상징하는 외관)’을 완성해가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KG모빌리티가 서울 모빌리티쇼에 힘을 주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최대한 빠르게 쌍용차라는 이름 대신 KG모빌리티를 대중에게 인식시키는데 이보다 적절한 무대는 없어서겠죠.
쌍용차의 새 주인으로 KG그룹이 낙점된 게 지난해 6월, KG모빌리티로 새 사명이 결정된 게 올해 3월 22일입니다. 하지만 1988년부터 이어온 쌍용차라는 이름을 KG모빌리티가 단기간 내에 뛰어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은 토레스가 지난해 6월 ‘쌍용’의 이름으로 판매를 시작한 점도 못내 아쉬울 겁니다. 비록 그동안 쌍용차 앞면에 달렸던 ‘쌍용’ 엠블럼이 빠지면서 새 출발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소비자들의 뇌리에는 여전히 ‘쌍용 토레스’가 박혀 있을 테니까요. 실제로 현장에서 만난 관람객들은 “KG가 뭐지? 아, 쌍용차네” 같은 반응이 주를 이뤘습니다.
토레스 EVX 등 전시된 차량의 타이어 휠에 박힌 ‘윙’ 엠블럼 역시 쌍용차 시절부터 있었던 것이었죠. 윙 엠블럼 역시 2000년 초반부터 쌍용차의 수출차량, 그리고 쌍용의 대형 세단 체어맨 등에 쓰이며 오랜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KG가 쌍용과 결별을 원하고는 있지만, 쌍용 브랜드의 힘을 당장 무시하기 어렵다는 걸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KG가 쌍용차의 이미지를 지우고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선 결국 신차가 필요합니다. 다만 당장 토레스를 뛰어넘을 양산차를 뚝딱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신차와 콘셉트카를 적절히 배합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들의 이목 끌기에 나섰고,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 남은 건 토레스 EVX, 그리고 발표한 콘셉트카를 기반으로 한 양산형 모델을 이른 시일 내에 제대로 시장에 선보이는 일이겠죠.
쌍용차를 대체할 브랜드 명칭도 필요해 보입니다. 사명은 KG모빌리티로 바뀌었지만, 자동차 브랜드 명칭은 없습니다. KG 측은 “현 시점에는 당장 브랜드를 만들어낼 계획은 없다”고 합니다. KG모빌리티가 만든 ‘토레스 EVX’로 불러달라는 것이죠. 하지만 소비자나 각종 매체는 관습적으로 차명 앞에 자동차 브랜드를 붙여 부릅니다. ‘쌍용 토레스’ ‘현대 아이오닉5’ ‘벤츠 E 클래스’ 처럼요. 이 때문에 시장에선 자연스럽게 KG 토레스 이런 식으로 불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KG라는 명칭이 굳어졌을 경우 국내외 시장에서 얻을 효과에 대해서는 미지수입니다. KG라는 명칭은 경기화학공업의 경기(Kyeong Gi)에서 왔는데요, 이를 자동차에 그대로 적용하기에 썩 적합해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쌍용차 브랜드가 되살아날 가능성은 없습니다. KG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쌍용이라는 이름이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았다. 서구 문화권 등 해외에서는 ‘용(龍)’이 부정적 이미지를 주는 사례가 많다”고 했습니다.
산적한 과제를 안고 있는 KG는 여기에 숙제를 하나 더 추가합니다. 4일 서울 모빌리티쇼에서 열린 ‘비전 테크 데이’를 통해 “전동화 모델 개발과 소프트웨어로 정의된 차(SDV), 자율주행차, 클라우드 기반의 인공지능(AI) 등 모빌리티 기술 분야에 집중해 미래 모빌리티 동반자로서 존경 받는 기업, 자랑스러운 회사로 성장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현대차·기아는 물론 모회사가 있는 한국GM, 르노코리아차 등에 비해 KG모빌리티(쌍용차)는 미래 모빌리티 개발 준비가 늦을 수밖에 없었죠. 이 기술 격차를 단시간 내에 메우기는 어려울 겁니다. 다만 이 같은 변신을, 이제는 쌍용차의 이름이 아니라 KG모빌리티의 이름으로 성공시키겠다는 회사의 의지를 드러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KG모빌리티가 쌍용차를 뛰어넘는 자동차 회사로 성장할지, 다음 모빌리티쇼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 지 흥미롭게 지켜볼 일입니다.
이건혁 기자 g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