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추월당하고 미국 관세 위기 처한 K반도체
대미 투자계획·생산전략 등 차질 불가피
반도체법 등 ‘골든타임’…국내 전문가 “서둘러야”

한국 경제의 핵심인 제조업이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트럼프 충격파와 중국의 약진, 탄핵정국으로 인한 정부 주도의 정책 동력이 약화되면서 5대 제조업(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석유화학)이 세계 선두권에서 밀려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국내 산업의 근간인 제조업의 위기는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어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편집자주」
한국 반도체 업계의 시름이 좀처럼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관세 폭탄’과 중국의 매서운 추격으로 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 국내 정세도 경영을 이어가기에 녹록치 않아서다. 세계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놓쳐선 안되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 입장에선 국내 탄핵 정국이 발목을 제대로 잡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1년 4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지난해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이어진 ‘100억달러 이상 반도체 수출 기록’도 멈춰 섰다. 여기에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반도체 지원법(칩스법) ‘폐지 카드’까지 꺼내들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여·야 협의회’가 6일 반도체특별법,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 등 쟁점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협의에 나선다. 당초 여·야·정 국정협의회가 논의에 나서기로 했지만, 탄핵 정국으로 불거진 행정부와 입법부의 갈등으로 정부를 베제한 채 핵심 쟁점들에 대한 협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법안에는 반도체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국가가 보조금을 지원하고 전력과 용수, 인력양성 등 산업 인프라 전반에 걸친 전폭적인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규제를 제한적으로 풀어주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특별법 제정에 가장 이견이 컸던 사안은 ‘연구직종 근로자의 주 52시간 예외’ 조항이다. 반도체 업계에 종사하는 연구개발(R&D) 직종의 근로자에 대해 노동법에 근거한 주 52시간 근로 시간 준수를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게 핵심이다.
정치권에서는 R&D 직종에 한해 근무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주 52시간 적용 예외’ 조항이 악용될 수 있다는 의견이 충돌하며 제대로된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었다. 아울러 탄핵 정국으로 여·야·정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이에 대한 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지기도 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반도체특별법의 통과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반도체 패권 경쟁이 한창인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규제 완화가 수많은 리스크에 직면한 국내 기업의 숨통을 트게 할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실제로 한국 반도체 산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폭탄’과 중국의 매서운 성장세로 대외적인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트럼프는 당장 이달 내로 반도체에 관세 부과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 투자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법과 관련,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 기업에 보조금을 주지 않고도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며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관세 부과가 공식화하면 최소 25%를 시작으로 향후 1년에 걸쳐 관세율이 인상될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관세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면 미국에서 반도체를 생산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미국에 공장 건설을 진행 중이지만, 문제는 양사의 주력 제품인 메모리 공장이 아니란 데 있다. 주력 제품들에 한해선 관세가 부과되고 가격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 반도체 기업의 경쟁사인 대만 TSMC는 선제적으로 ‘트럼프 달래기’에 나서며 총 1650억 달러(240조원) 투자 카드를 꺼내기도 했다.
중국의 기술력이 갈수록 고도화되고 있다는 점도 국내 반도체 업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중국 반도체 업계는 자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통해 D램을 비롯한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분야에서 약진하고 있다.

여전히 반도체특별법의 법안 통과 여부가 불투명하지만, 이른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목전에 두는 등 국내 기업들이 동력을 잃지 않을 상황은 조금씩 마련되고 있다.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반도체 기업이 시설에 투자할 경우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세액공제율은 20%, 중소기업은 30%로 올라간다. R&D 투자 시 대기업과 중견기업은 30~40%를, 중소기업은 40~50%의 세액 공제 혜택이 부여된다.
아울러 정부는 전날 50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신설해 5년간 반도체, 인공지능(AI), 2차전지 등 10개 산업에 집중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첨단기술에 대한 주도권 확보를 위한 선제적인 대규모 투자가 절실해진 만큼, 정부가 나서 이를 위한 지원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 기금을 기초로 산업은행, 시중은행 등과 협력하면 최대 100조원 이상을 집중적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이 모든 금액이 반도체에 집중되진 않겠지만, 국내 기업들의 숨통을 트일 정책이란 데는 업계 내 이견이 없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탄핵 정국으로 업계가 가진 우려는 생각보다 크고 깊었다”면서 “점차 국내 정국의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반도체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을 조치들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이런 법안이 반도체 산업에 큰 변화를 가져오진 않을 수 있겠지만, 같은 기술에 대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 지원이 있고 없고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면서 “그간 정쟁 때문에 지원을 제대로 못해준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정쟁을 끝내고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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