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이 제주도 자연, 땅의 중심이라면, 제주목관아는 사람과 관련한 제주도의 중심이다.
제주도에서 행해지는 모든 정치적 행위와 절차, 행정에 관한 정리와 명령 그리고 실행이면서 동시에 모든 문화적 숨결이 흡수되고 또 발산되는 핵심 장소이기에 그 역사적 의의가 매우 큰 곳이기에 제주시 가볼 만한 곳이라 한다.
제주목 관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 25
제주목 관아 관람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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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시간 : 09: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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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무일 : 없음(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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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전화 : 064-710-6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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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안내 : 10:00~17:00 / 064-710-6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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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료 : 어른 1인 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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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개장 : 하절기(5월~10월) 무료입장 18:00~21:30
제주목관아의 대외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왼쪽에 정면 5칸, 측면 4칸의 커다란 관덕정(觀德亭)이 위치한다.
관덕정은 제주공항근처 볼거리로 너무나 유명한 곳으로 제주도 여행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주시 가볼 만한 곳으로 가장 먼저 손꼽는 곳 중 하나다.
이 관덕정은 세종 30년인 1448년 조선시대 지방에 특사로 파견하던 관직인 안무사(安撫使)였던 신숙청이 창건했으며 이후 성종 11년인 1480년에 고려 시대부터 지방의 행정을 맡아보던 관청인 ‘목’에 부임하는 정 3품 지방관인 목사 양찬에 의해서 중수되었다. 당시 우리나라 전역에 ‘목(牧)’은 20곳이었고 제주도는 나주, 광주와 함께 전라도에 속해 있는 목이었다.
진해루(鎭海樓)라 표기된 외대문(외삼문)은 문헌에 탐라포정사(耽羅布政司) 진해루라 적혀 있는 제주목 관아의 관문이며 2층 누각으로 되어 있고 종루로 활용해 이곳에서 새벽과 저녁에 종을 쳐서 성문을 여닫았다고 한다. 1435년 홍화각 창건 시에 건립했다고 전하며, 1699년 남지훈 목사가 개건했다고 한다.
수령(목사) 이하의 사람들은 말에서 내려 걸어가라는 의미의 하마비 표지석으로 태종 13년인 1413년에 종묘와 궐문 앞에 세운 것이 시초라고 한다. 제주목 관아 앞의 하마비가 언제 세워진 것인지 정확한 연대가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순조 34년인 1834년에 한응호 목사가 종전에 있던 비석을 대체하여 세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그전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관덕정에서 내려와 매표소 앞으로 걸어가며 보인다.
왼쪽의 긴 행랑은 현재 제주목 역사관이 운영되고 있다. 제주목 관아를 테마로 한 전시관으로 크게 3개의 전시실로 구분되어 있다. 전체가 그러하겠으나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 제주공항근처 볼거리이자 학습의 장이라 하겠다.
죄수를 관리하는 군졸이 대기하면서 업무를 관장했던 군뢰청과 관아의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서원이 민원인들에게 준호구 등의 신분증명서를 발급하던 호적방 등을 살펴볼 수 있다.
제주목 관아 역사관의 1전시실은 제주목의 역사적 변천사와 발굴 및 출토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2전시실은 부임 목사의 생활상 및 행렬도, 3전시실에는 제주읍 성내 주요 건물 및 변천사 등을 전시하고 있다.
편액에 우련당(友蓮堂)이라 표기된 이 건축물은 중종 21년인 1526년 목사 이수동이 성 안에 우물이 없으면 적이 침입하여 성을 포위하거나 화재가 발생했을 시 구급하기 어렵다 하여 만든 것으로 방형의 우물을 파고 물을 가두어 연꽃을 심은 뒤 그 위쪽에 정자를 세워 평상시 연회 장소로 활용했다.
그 뒤 목사 양대수가 개구리울음소리가 시끄럽다 하여 흙으로 덮어 평지를 만들었는데 이때 만들어진 속담이 ‘양대수 개구리 미워하듯 한다’라고. 다시 연못이 만들어진 것은 1694년 목사 이익태에 의해서라 한다.
우련당 앞의 방형 연못.
제주공항근처 볼거리로서뿐만 아니라 예쁜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잘 알려진 우련당 앞 연못.
반영 사진이 예쁜 곳이다. 개인적으로 관덕정 다음으로 멋진 곳이란 생각을 해본다. 관덕정이 무료로 개방된 장소에 위치하고 있어 그 중요도를 높지 않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관덕정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그 크기도 크기지만 건물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이 웅장하다. 이곳 연못의 예쁨과는 다른 특별함이다.
우련당 오른쪽의 잔디밭은 과거 영리장방지로 현재 건물은 없고 터만 남았다.
이곳에 있던 ‘영리장방지’는 제주영(濟州營)에 소속된 서리(胥吏)들이 집무(執務)를 보거나 거처(居處)하는 방(房)을 말하며 서리를 다르게는 ‘아전(衙前)’이라고도 불렀다.
탐라영사례(耽羅營事例)에 의하면, 호장(戶長), 이방(吏房), 부리방(副吏房), 공사호방(公事戶房), 심리방(審吏房), 형방(刑房), 예리(禮吏), 도진색(都鎭色), 주진색(主鎭色) 등이 거처했던 곳이라 한다.
홍화각(弘化閣)은 절제사가 사무를 보던 곳으로 그 웅장함이 탁월해 관아건물(官衙建物) 중 탐라고각(耽羅高閣)이라 불리었을 정도라 한다. 창건된 것은 세종 17년인 1435년으로 최해산 안무사가 지었으며 이후 김여수 목사에 의해 중수된 기록이 있다.
숙종 39년인 1713년에 방어영으로 승격되어 별도로 정아를 설치함에 따라 홍화각은 영리청이 되었다.
이름이 홍화각이라 명명된 것은 임금의 어진 덕화가 백성에게 두루 미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다.
제주목, 정의현, 대정현 등 세 고을의 호적을 보관했던 장소인 호적고지(戶籍庫址)로 우련당과 영리장방지 뒤로 길게 세워진 건축물인데 현재는 주춧돌만 남아있는 상태다.
홍화각에는 절제사(방어사) 집무실, 판관방, 향리방, 무기고 등이 있었다.
숙종 이전에는 절제사라 부르다가 숙종 이후 방어사로 명칭이 변경되었는데 이는 지방의 병권을 갖는 대장을 의미하며 대체적으로 목사가 겸직하는 형태였다. 판관방에는 중앙에서 파견되어 업무를 수행하는 이들의 집무실로 제주목에는 모가, 판관, 교수, 현감 등이 있었다.
터만 남은 이곳은 예고지라 부른다.
예고(禮庫)란 예방고라고도 부르며 진상품을 보관하던 장소이다. 제주에서 보내던 진상품의 목록은 전복, 해삼, 표고버섯, 미역, 비자, 동백, 오징어, 은어, 민어, 청어, 오미자 등이다.
중대문은 동헌(東軒)으로 통하는 외대문(外大門)과 내대문(內大門)의 중간에 있었던 대문을 말한다.
이곳은 교방지, 마구지, 심약방지가 있던 곳으로,
교방은 관기와 악공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곳이었고, 마구지는 제주목사 이하 관원들이 타는 말을 관리하는 곳으로 일명 마구간이라 부른다. 심약방지의 ‘심약’은 중앙정부에 바치게 될 약재를 심사, 감독하기 위해 파견된 종 9품의 관원을 말하며 심약방은 ‘심약’이 거처하는 방을 말한다.
이 건물은 영주협당(瀛洲協堂)이라 부르며 군관들이 근무하던 관청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 팔작지붕 건물이다.
입구에서부터 계속해서 마주하는 여러 중국인 관광객들.
이곳은 어쩌면 제주시 가볼 만한 곳으로 우리에게보다 중국인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곳일지도 모르겠다.
내부에는 관기들에게 악기를 가르치는 교방, 심약과 의생들이 거처하던 심약방, 관아에 소속된 계집종들이 거차하던 관비방, 진상품이 보관되던 예고 등의 구분되어 있다.
이 방은 목사를 보좌하는 군관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곳으로 군사 사무를 보는데 필요한 각종 복식들과 도구들이 비치되어 있는 곳이다.
영주협당(瀛洲協堂)에서 예쁜 사진을 찍느라 바쁜 중국 관광객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그들이 아무리 우리나라 한복을 그들의 것이라 거짓부렁을 날름거려도 우리네 한복이 제대로 된 한복이고 그 아름다움이 어데 짝퉁과 비할 바인가. 그러니 중국의 젊은이들도 이곳 제주도로 여행을 와 한복을 빌려 입고 제주목 관아에서 추억사진을 기록하는 것 아닌가. 다니며 중국인을 가장 많이 봤지만 베트남인이나 필리핀인들도 꽤 여럿을 만나게 되는 것으로 보아 제주시 가볼 만한 곳으로 이곳이 외국에는 많이 알려진 것 같다.
이곳은 귤림당(橘林堂).
귤림당은 거문고를 타고 바둑을 두거나 시(詩)를 지으며 술을 마시는 장소로 이용되던 곳이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에 홑처마 사모지붕을 하고 있어 그리 크지 않은 건축물이다.
관덕정만큼이나 큰 건물, 망경루(望京樓)는 북두성(北斗星)을 의지하여 임금님이 있는 서울을 바라보며 그 은덕(恩德)을 기리는 신지(信地)이며 중요한 제주목관아의 하나였다. 어찌 보면 하나의 종교적 성격을 띠는 게 아닐까 싶은 맹목성이 드러나는 건축물이란 생각도 든다.
이 건물은 명종 11년인 1556년 김수문 목사에 의해 창건된 뒤 현종 9년인 1668년에 이인 목사에 의해 개건되었고 순조 6년인 1806년 박종주 목사에 의해 중수되었다. 1층 내부 공간에 보물로 지정된 탐라순력도를 테마로 한 체험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망경루 1층 탐라순력도 체험관.
무언가를 체험하고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여행지를 방문함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한다. 체험을 즐기는 분이라면 제주공항근처 볼거리로 소개할만하다.
이 체험관은 숙종 28년인 1702년 이형상 제주목사가 제주도 내 각 고을을 순력한 내용을 그린 화첩인 탐라순력도를 테마로 했다. 순력(巡歷)이라 함은 각 처로 돌아다닌다는 의미로 목사가 그리 다녔다는 것은 자신이 관할의 책임을 갖고 있는 제주도를 구석구석 돌아봤다는 것으로 지방관의 기본적인 업무 중 하나다.
망경루 2층 누각에 오를 수 있다.
누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또 색다르며 보기에 좋다.
망경루 누각에서 오른쪽 대각선 방향으로 제주목관아(濟州牧官衙延) 연희각(延曦閣)이 보인다.
누각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또 하나의 제주공항근처 볼거리라 하겠다. 사적지의 누각을 오를 수 있는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연희각은 목사가 집무를 하던 곳으로 판관의 집무처인 이아(二衙)와 구분해 상아(上衙)의 동헌(東軒), 목사의 정아(正衙) 등으로도 불렸다. 연희(延曦)라 함은 궁굴 밖의 신하가(외신 ; 外臣)이 나라와 임금에게 충성(忠誠)을 다하고자 하는 정성(精誠)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연희각의 창건 연대와 관련된 정보에 대한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탐라지에 기록된 정황으로 보아 1638년에서 1640년 사이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며 1924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헐렸던 건물을 1990년대에 복원한 것이라 한다.
제주목 관아(Jeju-mok Government Office , 濟州牧 官衙)는 제주대학 조사단이 1991년 10~12월, 92년 5~12월의 2차에 걸친 발굴 조사를 실시한 결과 탐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여러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보물로 지정된 제주 관덕정과 함께 사적지로 지정된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제주시 가볼 만한 곳이나 제주공항근처 볼거리를 찾으신다면 꼭 들러보시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