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혜의 자연도 화려한 도시도 좋지만 여행의 진짜 묘미는 사람이 아닐까. 이번 남프랑스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그 지역, 도시, 마을 사람들의 삶을 많이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함이었다. 남프랑스 중에서도 관광객으로 붐비는 휴양지를 피해 프로방스 지역 소도시들에 주목했다. 발음도 어려운 도시 이름은 낯설 테지만, 자세히 보면 결코 낯설지 않은 것들이 펼쳐지는 작고 매력적인 곳들로 향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로즈 에 마리우스, 메종 부아숑, 아틀리에 퓌조 드 라벙드, 랑팔 라투르 비누 공장.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프로방스에는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장인들의 명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관저에 들인 향수부터 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비누 공장까지. 프로방스 ‘재능 부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가봤다.
01 엑상프로방스 로즈 에 마리우스 |
엑상프로방스 거리. /사진= 고아라 작가
프로방스 라이프스타일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도시 엑상프로방스는 학생이 많은 젊은 도시로 활력 넘치는 분위기를 품고 있다. ‘Aix’는 라틴어로 물을 뜻하는 단어다. 이름에 걸맞게 도시 곳곳에서 1000 개가 넘는 분수를 볼 수 있다.
로즈 에 마리우스 전경. /사진= 고아라 작가
프로방스의 5성급 호텔들에서 유독 자주 보이는 향수가 있다. 10년 전 프로방스 지역의 명물, 로제 와인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로즈 에 마리우스의 향수다.
로즈 에 마리우스 내부 모습.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회사 대표 마갈리(Magali)는 파리에서 일을 하다 관두고 남편과 세계여행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그가 매년 가족과 함께 보냈던 프로방스를 사랑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프로방스만의 고급 향수를 만들고자 다짐했고, 자신의 추억을 담은 향수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로즈 에 마리우스 시그니처 로제 와인 향수.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향수는 프랑스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아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선택을 받아 대통령 관저 앨리제 궁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로즈 에 마리우스에서는 대표적인 로제 와인 향수에 대한 이색적인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우선 3가지 프로방스 로제 와인을 시음해보고 향수 제작에 영감을 준 와인을 맞춰보는 블라인드 테스트가 있다. 와인과 향수에 대해 잘 몰라도 문제없다. 오크통에 담겨 있어 우디한 향이 남는다든지, 레몬과 메론, 오렌지로 만들었다는 등 직원의 힌트를 듣고 와인과 향수를 비교하다보면 점차 정답과 가까워진다. 홈페이지, 전화를 통한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며 영어 진행도 가능하다. 체험 비용은 35유로(약 4만8500원).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로즈 에 마리우스.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이밖에도 향초, 향수 등을 제작하는 다양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방문 전 참가 가능 여부를 확인해보자. 체험을 하지 않더라도 가게에서 다양한 종류의 향수와 더불어 비누, 향초, 리모주 도자기로 만든 컵 등도 여럿 구매할 수 있어 프로방스 기념품 쇼핑으로도 좋은 선택지다.
02 샤토뇌프 뒤 파프 메종 부아숑 |
샤토뇌프 뒤 파프 풍경.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보르도, 부르고뉴와 함께 ‘프랑스 3대 와인’으로 꼽히는 샤토뇌프 뒤 파프는 남부 론을 대표하는 와인 마을 이름이자 세계적인 고급 와인 중 하나다. ‘교황의 새로운 성’이라는 뜻의 이 마을은 14세기 아비뇽에 거주하던 교황의 여름 별장으로 인기가 높았다.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늘 교황의 식탁에 올랐기 때문에 ‘교황의 와인’이라고 불린다.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신의 물방울’ 촬영지이기도 하다.
메종 부아숑 전경. /사진= 고아라 작가
메종 부아숑은 1898년에부터 4대째 내려오고 있는 와이너리다. 원래는 오크통을 제조하던 곳이었으나 와인 제조법을 배우기 시작하며 와인 하우스로 운영하게 됐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와인의 80%가 레드와인이다. 화이트와인의 경우 1년에 3000병만 만들고 수출은 하지 않고 있다.
메종 부아숑 내부 모습.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보르도, 부르고뉴와 달리 샤토뇌프 뒤 파프는 포도 품종을 여러 가지 섞어 만드는 게 특징이다. 레드와인은 8종(그르나슈, 시라, 무르베드르, 쌩소, 테레 누아, 뮈스카댕, 바카레즈, 쿠르누아즈), 화이트와인은 5종(부르블랭, 클레레트, 루싼느, 삑뿔, 피카르당)의 포도를 섞어 만든다. 따라서 사용한 포도 종이 크게 쓰여 있는 많은 와인들과 달리 라벨에 와이너리-와인-산지 순으로 기입한다.
와인 시음 워크숍을 진행 중인 플로랑 리고(Florent Rigaud) .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메종 부아숑은 와인 워크숍, 빈티지 카 2CV를 타고 진행하는 와이너리 투어 등을 선보인다. 그중 와인별로 어울리는 초콜릿을 소개하고 함께 맛보는 워크숍을 추천한다. 오크통에 숙성되고 있는 와인을 바로 꺼내 음미해볼 수 있고, 와인잔 드는 법 등 흥미로운 교육도 진행된다. 워크숍은 1시간 30분정도 소요되며 가격은 35유로(약 4만8500원)다.
오크통에서 바로 꺼낸 와인을 시음해보고 와인잔 드는 법도 배울 수 있다.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시음 후 취향에 맞는 와인과 초콜릿은 모두 와이너리에서 구매할 수 있다. 메종 부아숑은 현재 90개국으로 와인을 수출하고 있지만 한국은 시장이 작은 편이다. 한국에서 구하더라도 한 병에 보통 20만원이 훌쩍 넘기도 하지만, 이곳에서 대표적인 제품 기준으로 30유로(약 4만1500원)정도의 합리적인 가격으로 사갈 수 있다. 수하물로 가져가도 파손되지 않도록 포장도 꼼꼼히 해주니 캐리어에 여유 공간을 충분히 마련해오는 게 좋겠다.
03 레 보 드 프로방스 아틀리에 퓌조 드 라벙드 |
아틀리에 퓌조 드 라벙드 라벤딘 밭.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무더운 날씨에도 여름 시즌 남프랑스 여행객이 많은 건 프로방스 라벤더밭의 보랏빛 물결이 한몫 하지 않을까. 2000년 전 처음 발견된 라벤더는 로마인들이 목욕할 때 물에 넣거나 향을 내는 데 쓰이다가 의학적 효과를 발견한 이후 약초로도 사용됐다. 19세기에 접어들면서 프랑스 향수 산업이 커졌고, 라벤더 수요가 많아지자 야생에만 있던 라벤더를 밭을 조성해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아틀리에 퓌조 드 라벙드에서 키우는 라벤딘, /사진= 고아라 작가
프로방스에서 라벤더를 보기 가장 좋은 시기는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다. 프로방스는 해가 세서 다른 나라보다 라벤더가 빨리 피는 편이라 5월 말 방문했을 때도 옅은 보랏빛을 뗬다. 대개 8월 말까지 보랏빛 라벤더를 볼 수 있다. 라벤더로 불리는 보랏빛 식물은 크게 두 종으로 나뉘는데, ‘트루 라벤더’는 800m 높이의 고지대에서만 자라고 현재 라벤더 종류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건 ‘라벤딘’이다. 라벤딘은 색이 매우 진하고 오일을 많이 만들 수 있지만 약효는 없다고 한다.
아틀리에 대표 엘사 렌탈. /사진= 고아라 작가
레 보 드 프로방스에서 라벤더 퓌조(리본과 라벤더를 한땀 한땀 땋아 꽃의 향기를 오래 간직할 수 있는 공예품) 아틀리에를 운영하는 엘사 렌탈(Elsa Lenthal)은 퓌조와 머리띠, 쿠션, 향초 등을 만들고 있다. 퓌조는 18세기 말 프로방스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대부분 집안의 여자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서랍에 넣어 탈취제로도 사용하며 린넨을 보호하고 향을 입히기 위해서도 사용하곤 했다. 라벤더로 퓌조를 만드는 곳이 많이 없어져 전 세계에 딱 2곳만 남았는데, 그 중 한 곳이 바로 여기다.
예약제로 운영하는 퓌조 만들기 수업.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올해 퓌조 만들기 수업은 7월 1일에 시작해 9월 3일까지 예약제로 총 5회 진행 예정이다.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일정을 확인할 수 있으며, 프라이빗 수업을 원한다면 따로 메일로 연락해 요청하면 된다.
퓌조 만드는 법을 설명 중인 엘사 렌탈.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퓌조 만들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신선하게 재배한 라벤더로 만들기 때문에 최대 4년까지도 향이 남아있다. 수업은 2시간 동안 진행되며, 참가비는 인당 65유로(약 9만원)다. 만들기 체험 외에도 엘사 렌탈이 만든 공예품을 구매할 수도 있다. 퓌조 다음으로는 머리맡에 두면 숙면을 도와준다는 라벤더 베개가 인기라고 한다.
04 살롱 드 프로방스 랑팔 라투르 비누 공장 |
살롱 드 프로방스 마을 전경. /사진= 고아라 작가
살롱 드 프로방스는 의사 겸 점성가이자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가 정착해 사망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1870년~1920년대 사이에 많은 양의 기름과 비누를 생산하면서 산업도시가 됐다.
랑팔 라투르 비누 가게 전경.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랑팔 라투르 비누 공장은 1828년 피에르 랑팔(Pierre Rampal)이 마르세유에서 시작해 5대째 이어져 오고 있다. 1835년 당시 비누를 사용하기 좋게 몸에 맞는 모양으로 만들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아들 피에르 랑팔(동명)이 만든 ‘라 코트 다쥐르(La Côte d’Azur)’ 비누와 오일이 1900년에 개최된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받으며 큰 성공을 이루게 됐다.
랑팔 라투르 비누 가게 내부 모습.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그는 71살이던 1907년 살롱 드 프로방스에 ‘랑팔 피스(Rampal-Fils)’라는 비누 가게를 개업했다. 100년 뒤 그의 손자 르네 랑팔(René Rampal)이 자신의 비누 가게 ‘랑팔 파투(Rampal Patou)’를 장 루이 플로(Jean-Louis Plot)에게 넘겨주면서 현재까지 장 루이와 그의 부인이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장 루이 플로와 함께 비누 가게를 운영 중인 그의 아내. /사진= 고아라 작가
르네 랑팔은 장인 정신과 노하우를 존중하고, 이를 지키며 시대에 맞게 변화하려는 장 루이 플로의 노력을 높이 사 2세기에 걸쳐 내려오던 랑팔 가문의 비누 제작 노하우와 레시피를 전수했다. 그렇게 ‘랑팔 라투르(Rampal Latour)’가 탄생했다.
시대별 비누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비누 공장 투어.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1907년 처음 살롱 드 프로방스에 자리를 잡은 후 100년이 지난 2016년 새로운 공장이 탄생했다. 비누 제조 과정은 전통 방식을 고수하되, 비누 장인들의 건강과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지었다. 처음 지어진 비누 가게는 물론 새로운 공장도 방문 투어가 가능하다.
옛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비누 공장. /사진= 강예신 여행+ 기자
마르세유 비누는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를 넣어 만드는 게 특징이다. 올리브가 들어간 초록색과 코코넛을 넣은 흰색 비누가 시그니처다. 순하고 향이 자극적이지 않아 피부가 민감한 사람은 물론 아기들도 사용하기 좋다. 한국에서도 랑팔 라투르 비누를 수입하고 있어 기념으로 한번 사 왔다가 이후 한국에서도 꾸준히 찾아 쓰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프로방스(프랑스)= 강예신 여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