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여행 단종 복위 운동 성지 순흥 금성대군신단 소수서원 경자바위 피끝마을
여행자의 집 조회수
|
영주 여행 단종 복위 운동 성지 순흥 금성대군신단 소수서원 경자바위 피끝마을 글&사진/산마루 260223 |
영주 여행 단종 복위 운동 성지 순흥 금성대군신단과 핏끝마을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산마루 여행작가입니다.
요즘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영화 한 편이 있죠. 바로 조선의 6대 왕이었던 단종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왕과사는남자 인데요. 장항준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폐위된 단종이 영월 청령포에서 촌장과 마을 사람들과 마지막을 보내는 과정을 그려냈어요.
계유정난과 왕위찬탈이라는 역사에서 비켜난 유배지 이야기를 픽션을 가미해 유쾌하게 촬영했는데 강원도 영월 청령포가 단종의 유배지였다면, 영주 순흥에 있는 금성대군신단은 단종 복위 운동 성지입니다.
오늘은 역사와 자연이 함께 숨 쉬는 경북 영주, 그중에서도 단종 복위 운동의 성지인 순흥 ‘금성대군신단’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해요. 단종 복위 운동의 정점에서 죽임을 당한 금성대군의 사연이 깃든 장소라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깊답니다.
그럼 저와 함께 순흥으로 떠나볼까요?
조선 6대 왕 단종 복위 운동
◆단종 복위 운동의 역사적 배경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은 13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삼촌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기고(계유정난) 영월 청령포로 유배당하고 말았습니다. 어린 단종은 권력 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큰 고통을 겪게 되었죠.
단종의 작은 아버지 금성대군과 사육신 등은 그를 복위시키기 위해 힘을 합쳤어요. 여러 차례 거사를 준비했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금성대군과 사육신의 역할
금성대군은 조선 세종의 여섯 째 아들이자 단종의 작은 아버지였어요. 성삼문, 박팽년,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이렇게 여섯 명은 단종 복위 운동을 주도하다가 세조에게 발각되어 죽임을 당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금성대군 마저 순흥땅으로 유배당하게 되었어요.
◆순흥에서의 단종 복위 운동
이후 단종이 영월로 유배당하자 순흥에 유배온 처지인 금성대군은 당시 부사 이보흠과 함께 격문을 작성하고 지역 유림들과 힘을 합쳐 단종 복위 운동을 도모했다고 해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전에 관노의 밀고로 발각되며 실패로 돌아갔고, 금성대군을 비롯한 많은 인물이 희생됐습니다. 이 일은 단종 복위 운동의 비극적인 면을 잘 보여줍니다.
이처럼 순흥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역사의 아픔이 깃든 장소라는 점에서도 특별합니다.
영주 금성대군신단
◆금성대군신단의 의미와 현재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을 지나 순흥 방면으로 가다보면 도로 옆에 조성된 금성대군신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곳은 금성대군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제단이에요.
숙종 9년(1683)에 금성대군과 함께 목숨을 잃었던 이들이 복권되었고, 숙종 45년(1719)에는 금성대군 신위를 모시는 단이 세워졌어요.
낮은 담장으로 둘러 싸인 출입문을 너머 서면 단소 앞에 제사를 지내는 건물 제청과 제사를 준비하는 건물 주사가 있고,
건물을 지나면 금성단 편액이 걸린 문이 하나나 더 있고 이 문을 너머야 신단과 마주할 수 있어요.
비록 세조에 의해 사약을 받고 죽었지만 금성대군은 순흥 사람들에 의해 신령으로 모시고 있었기에, 제단은 신단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돌로 만든 세 개의 제단은 품(品)자 처럼 배치했으며, 앞 동쪽 제단은 부사 이보흠을 모신 단이고, 서쪽 단은 함께 죽은 선비들을 모신 제단입니다.
마지막 중앙 뒤쪽에 있는 제단이 금성대군신단입니다.
지금의 금성대군신단은 당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방문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신단을 나와 담장을 따라 뒤로 돌아가면 은행나무 한 그루를 찾을 수 있어요.
순흥도호부 폐부 당시 불태워 죽어 가던 은행나무는 수령 1200년을 훌쩍 넘었다고 해요. 잎사귀 모양이 오리발 처럼 생겨 압각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224년이 지난 숙종 시기 새싹이 돋아 나더니 그 이듬해 순흥도호부가 복설되었다고 합니다.
말없는 은행나무마저 순흥땅의 아픈 역사를 기억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소수서원 경(敬)자바위
◆소수서원 경(敬)자바위
소수서원 경렴정 정자 아래에서 건너다 보면 붉은 글씨로 敬자가 새겨진 바위를 찾을 수 있습니다. 주세붕은 죽계천 바위에 ‘선비는 모름지기 자신의 마음 수양을 통해 항상 삼가고 조심하라’는 의미로 공경할 경(敬)자를 새겼다고 해요.
붉은 페인트로 덧 칠해진 경자 바위에는 이런 아픈 역사가 베여 있답니다.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던 1457년 7월 11일 안동 부사 한명진은 포졸을 거느리고 순흥도호부에 들이 닥쳤다고 해요. 그들은 관가 사람은 물론이고 일반 백성들까지 닥치는 대로 죽였고 도호부 건물은 불태워 버리게 됩니다.
설상가상으로 한양에서 급파된 철기군들은 ‘삼십 리 안의 모든 사람들은 죽여라’는 명령에 의해 순흥 청다리 밑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고,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백성들의 혼은 이승을 떠나지 못한채 죽계천을 떠돌았다고 합니다.
혼령들의 울음 소리는 죽계천을 맴돌았고 이에 주세붕이 경자에 붉은 칠을 하고 제사를 지냈더니 이후로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는고 해요, 경자 위 백운동 글씨는 퇴계 이황이 썼다고 알려집니다.
충절의 고장 피끝마을
◆충절의 고장 동촌1리 피끝마을
영주 시내에서 소수서원을 가기 위해서는 서천을 따라 충절의 마을 동촌1리 피끝마을을 지나게 됩니다.
단종 복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무고한 순흥 백성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했고, 이때 흘린 피는 죽계천을 적시며 흘러 내리다가 이곳에서 멈추었다고 해요.
그래서 피가 그친 마을이라는 뜻으로 마을 이름이 피끝마을인 것이죠. 1457년 정축년에 일어난 변고라 하여 역사는 정축지변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주에서 가볼 만한 곳
영주에는 금성대군신단 말고도 둘러볼 곳이 많아요. 예를 들어 소수서원과 선비촌은 역사를 느끼고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명소입니다.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오랜 역사를 품고 있어요.
선비촌에서는 조선시대 전통 한옥과 실제 생활상을 경험할 수 있어서 아이들과 함께 가기에도 좋습니다.
◆여행 팁과 마무리
영주를 여행할 때는 금성대군신단뿐 아니라 소수서원, 선비촌도 꼭 들러보세요. 이 세 곳은 서로 가까이 있어 하루에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거든요.
또, 역사에 대해 조금 알고 방문하면 여행이 훨씬 더 특별하게 느껴질 거예요.
지금까지 단종 복위 운동의 현장, 순흥 금성대군신단과 소소서원 경자바위, 그리고 정축지변의 이픈 역사를 간직한 충절의 고장 피끝마을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유배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수양대군으로 부터 억울하게 왕권을 탈취 당하고 유배된 단종을 위해 복위 운동을 펼친 금성대군과 사육신, 생육신의 이야기는 여전히 역사 속에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역사와 자연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뜻깊은 추억을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영주 금성대군 신단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소수서원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선비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96
동촌1리경로당
경상북도 영주시 안정면 회헌로 567
#단종복위운동 #금성대군 #조선6대왕 #단종 #순흥도호부 #금성대군신단 #소수서원경자바위 #피끝마을 #영주가볼만한곳 #영주여행 #역사여행 #소수서원 #선비촌 #경북여행 #경북가볼만한곳 #경상도여행지 #경상도여행지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