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유럽의 중심 체코. 독일과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폴란드와 접경하고 있는 체코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 중 하나다. 가장 잘 알려진 곳은 수도 프라하. 중세 도시 풍경이 살아 숨 쉬는 프라하는 요즘 신혼여행으로도 많이 간다. 프라하는 몇 번 가봤다 하는 여행 고수라면 체코 제2의 도시 브르노(Brno)를 추천한다. 아직 덜 알려져 더 매력적인 도시 브르노를 파헤쳐 보자.
# 남부 모라비아의 중심 ‘브르노’
고풍스러운 분위기에 젊은 에너지를 더하다
체코는 면적 7만8800㎢으로 인구는 약 1050만명이다. 우리나라 면적 3분의 2만한 크기에 서울 인구보다 조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체코는 크게 보헤미아, 모라비아, 실레시아 지방으로 나눈다. 보헤미아의 중심이 수도 프라하이고 모라비아의 중심도시가 브르노다.
남부 모라비아의 주도 브르노는 대학교가 곳곳에 있어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젊은 사람이 모이다 보니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바 그리고 커피숍 문화가 발달했다. 브르노는 오스트리아와 묶어 여행하기도 편하다. 비엔나까지는 기차로 1시간 10분이 걸린다. 실제로 브르노 사람들은 외국을 나갈 때 프라하 공항보다는 비엔나에 있는 공항을 더 많이 이용한다고. 5~9월이 되면 모라비아 지역 와이너리를 여행하기도 좋다. 역시 기차로 20~30분만 이동하면 도심을 벗어나 포도밭이 펼쳐지는 와이너리를 방문할 수 있다.
브루노에서 5년째 거주하고 있는 교민 진수미 씨는 “2012년에 처음 브르노에 여행으로 왔다”며 “지난 10년 사이 브르노는 엄청 국제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브르노는 문화 예술이 발달했고 특히 ‘음악의 도시’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와 세계적인 작곡가 레오쉬 야나체크(Leos Janacek)와 차세대 주요 지휘자로 주목받는 야쿱 흐루샤(Jakub Hrůša)가 브르노 출신이다. 모차르트도 브르노에 방문했었다.
음악의 도시 브르노에서는 연중 공연이 펼쳐진다. 공연은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브르노에 있는 음악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학생과 그 가족들에게만 공개하는 공연이 있고, 일반적으로 티켓을 사서 관람하는 공연 그리고 마지막은 크고 작은 음악 축제에서 선보이는 것이 있다. 5~10월 거의 매주 작은 축제가 벌어진다.
9월 초 즈노이모, 니쿨로프 등 주요 모라비아 와인 산지에서 열리는 와인 축제는 물론, 부활절 축제, 살구 축제, 고추 축제, 마늘 축제, 아스파라거스 축제 등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정을 나누는 축제가 5~10월 열린다. 심지어 내륙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굴 축제도 연다. 그리고 크고 작은 축제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음악 공연이다. 학생들이 직접 연주를 하고 그것에 맞춰 연극도 선보인다. 진 씨는 “브르노에서는 체코 사람들의 삶 속에 녹아들 수 있다”고 말한다. 물가도 프라하 중심보다 훨씬 저렴하다.
# 산책하듯 둘러보는 브르노 중심 시가지
브르노의 전체 면적은 230㎢으로 프라하의 절반, 서울의 3분의 1 크기다. 인구는 약 40만명. 도심의 주요 명소는 2~3시간이면 전부 둘러볼 수 있어 도보 여행하기 좋다. 브르노를 찾은 것은 5월 마지막 주 주말이었다. 자유광장에서는 지역 축제가 한창이었다. 전통 옷을 입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무대에 올라 연극을 펼치는 현지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프라하보다는 훨씬 한적했다. 특히 관광객보다는 현지인이 더 많았다. 깃발 든 가이드와 단체 여행객도 보지 못했다.
자유광장 근처에는 브르노에서 호불호가 가장 갈리는 설치 미술품이 있다. 바로 ‘천문시계’다. 천문시계는 전혀 시계 같지 않은 외관을 하고 있다. 검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높이 6m의 천문시계는 마치 커다란 총알 같이 생겼다. 브르노 천문시계는 스위덴 군을 격퇴한 역사를 담아 2010년 설치했다. 30년 전쟁(1618~1648) 당시 스웨덴 군대가 브르노를 처들어 왔고 3달 동안 도시를 포위했다. 당시 스웨덴 장군이 정오까지 공격하고 그때까지 성을 함락하지 못하면 그길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브르노 사람들이 한 시간 먼저 시계 종을 울렸고 이를 들은 스웨덴 군사들이 퇴각해 도시를 지킬 수 있었다.
브르노에는 3개의 광장이 있다. 하나는 앞서 말한 자유광장이고 나머지 두 곳은 양배추 광장과 모라비아 광장이다. 가장 전통적인 분위기는 양배추 광장에서 느낄 수 있다. 17세기 궁전에 지은 모라비안 박물관, 레두타 극장 등 고풍스러운 옛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양배추 광장이라는 이름은 예부터 이곳에서 농산물을 파는 시장이 열렸기 때문이라고. 지금도 일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에 오전 8시쯤 장이 선다. 레두타 극장 앞에는 모차르트 동상이 서있다. 모차르트가 11살 때 이곳에서 공연을 열었던 것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양배추 광장 근처 구시청사는 현재 여행자 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정문 안으로 들어오면 브루노에서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담은 악어 조형물을 볼 수 있다. 옛날 브르노에 용이 나타나 마을 사람들을 괴롭혔다. 한 용감한 정육점 주인이 용을 잡겠다고 나섰고 석회를 동물 가죽에 담아 먹이처럼 꾸민 다음 용을 유인했다. 용이 석회가 담긴 가죽 꾸러미를 먹었고 이후 물을 마시자 석회가 부풀어 올라 터졌다는 이야기다. 용이 죽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사람들이 구시청사 천장에 용 시체를 매달았다고 한다. 전설 속에서는 ‘용’이라고 했지만 구시청사에 매달린 것은 ‘악어’다. 중세 시대 유럽을 배경으로 숱하게 등장하는 용의 전설 이야기가 브르노에도 존재한다.
세인트 토마스 교회 앞 모라비아 광장이 가장 힙한 분위기다. 이곳에서는 가끔 야외 디제이 공연이 열린다. 커다란 말 동상이 있어서 찾기 쉽다. 브르노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 결혼식에는 다 같이 모여 춤을 추고 지역 축제에서도 단체로 사교춤을 추는 경우가 많다고.
최근 3~4년 사이 브르노에서는 한식이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발효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김치를 직접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브르노에서 유통되는 김치 브랜드가 4개나 된다. 실제로 호텔 조식 ‘비건 코너’에서 김치를 볼 수 있었다. 브르노 내에는 현재 한식당이 두 곳 있다. 한국식 바비큐 식당과 분식집이다. 한국 식품점이 있는데 주로 현지인 10대들이 많이 찾는다. 한국 문화를 즐기는 K-파티도 가끔 열린다.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국 음식 만들어 먹고 K-팝을 들으면서 춤을 춘단다.
# 드보르작이 민족을 위해 작곡한 오페라 ‘루살카’
음악의 도시 브르노에서 공연 관람은 필수로 일정에 넣어야 한다. 주말 광장에서 펼쳐지는 짧은 공연도 좋지만 하루 저녁 정도는 옷을 잘 차려입고 현지인들과 어울려 문화생활을 해보는 건 어떨까. 브르노에서 가장 중요한 공연장은 야나체크 이름을 딴 ‘야나체크 극장’이다.
1965년 10월 개장한 야나체크 극장은 공연이 있든 없든 현지인이 많이 찾는 곳이다. 웅장하게 지은 극장 앞으로 분수 광장이 있다. 2015년 리모델링한 분수 광장은 낮보다 특히 밤이 더 아름답다. 밤이 되면 화려하게 불을 밝히는 분수를 감상하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야나체크 극장에서 오페라 ‘루살카’를 관람했다. 루살카는 체코 출신 음악가 안토닌 드보르작(Antonin Dvorak)이 작곡한 오페라로 체코어로 진행한다. 루살카는 슬라브 신화에 등장하는 물의 요정이다. 루살카가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마녀와 거래를 해 인간이 되는 대신 목소리를 잃게 된다. 왕자는 말을 못하는 루살카에게 점점 흥미를 잃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 마녀는 다시 물의 요정이 되려면 왕자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루살카는 왕자를 죽이지 못하고 죽음의 정령이 된다. 이후 왕자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루살카에게 키스를 해달라고 한다. 루살카는 자신과 키스를 하면 죽게 된다고 말했지만 왕자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루살카와 키스한 왕자는 죽고 루살카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 세상을 떠돈다.
인어공주와 비슷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고 오페라를 보니까 이해가 빨랐다. 루살카는 총 3막으로 되어 있는데 이날 공연은 2막으로 중간 쉬는 시간은 한 번만 있었다. 루살카의 심리 상태에 따라 변하는 무대 장치도 인상적이었다. 무대가 열리고 안쪽 깊이까지 배우들이 꽉 들어찬 무도회 장면이 특히 좋았다. 무대 상단에 자막도 나왔다. 가장 윗줄엔 체코어 가운데 영어 그리고 마지막에 독어 순이다. 오페라 자체도 생소한데 체코어로 진행하면 얼마나 어려울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집중이 잘됐다.
야나체크 극장에서는 오페라, 발레, 클래식 연주와 연극 등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다. 오페라의 경우 1년 6~7개를 돌아가면서 무대에 올린다. 7월에는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의 ‘카르멘’, 8월엔 베드르지흐 스메타나(Bedřich Smetana)의 ‘팔려간 신부’와 주세페 베르디(Giuseppe Verdi)의 ‘라 트라비아타’가 예정되어 있다. 가격은 312코루나(약 1만8800원)부터 888코루나(약 5만3500원)까지 좌석에 따라 다양하다.
체코(브르노)=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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