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9년만의 야심작 공개…’457만원’ MR헤드셋 내년 출시
-애플, WWDC서 헤드셋 ‘비전프로’ 공개 ‘넥스트 스마트폰’ 도전…팀 쿡 “모바일 넘는 새로운 컴퓨팅 시대 열렸다”
애플 ‘비전 프로’를 착용하고 업무를 보는 모습/사진=애플 |
애플이 9년 만에 MR(혼합현실, 현실과 가상 세계의 결합) 헤드셋을 공개했다. 최근 메타버스 헤드셋 흥행이 주춤한 가운데 애플의 MR 헤드셋이 ‘아이폰’과 ‘애플워치’를 잇는 혁신적인 제품이 될지 주목된다.
애플은 5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파크에서 열린 ‘연례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MR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를 선보였다. 2014년 애플워치를 소개한 후 9년 만에 내놓는 야심작이다. 애플은 2015년 독일 AR(증강현실) 소프트웨어 업체 메타이오를 인수하면서 VR(가상현실)·AR(증강현실) 기술을 연구해왔다.
팀 쿡 애플 CEO는 “컴퓨팅 방식의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라며 “맥(Mac)이 개인 컴퓨터, 아이폰이 모바일 컴퓨터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비전 프로는 공간 컴퓨팅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전 프로는 이용자들에겐 엄청난 경험을, 개발자에겐 신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스키 고글 형태의 비전 프로 착용하면 언제 어디서든 개인 영화관이 된다. 180도 고해상도 영상을 지원하는 4K 디스플레이(2개)와 첨단 공간 음향 시스템으로 영화를 보거나 게임을 즐길 수 있다. 맥과 연동해 업무를 보거나 페이스타임으로 화상회의도 한다. 애플은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실감 나는 몰입형 영상을 제공한다”라고 강조했다.
비전 프로 특장점은 현실과 가상세계의 단절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 비전 프로는 ‘아이 사이트'(EyeSight) 기능을 적용,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화면이 투명해지며 주변을 인식할 수 있게 했다. 상대방도 착용자의 눈을 바라볼 수 있다. 헤드셋을 벗지 않아도 주변과 소통할 수 있는 셈이다.
또 ‘비전 OS운영체제’는 자연광을 인식해 그림자까지 드리워 이용자가 공간의 크기와 거리감도 자연스럽게 느낄수 있도록 했다. 기존 제품과 달리 별도의 컨트롤러 없이 사람의 눈과 손동작, 음성만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애플은 비전 프로에 자체 설계한 M2와 R1 반도체를 동시에 장착했다. R2는 카메라 12개, 센서 5개, 마이크 6개에 입력된 정보를 처리해 콘텐츠가 실시간으로 보이도록 했다. 눈을 한번 깜빡이는 시간보다 8배 빠른 12밀리초 안에 새로운 이미지를 화면에 띄워 디지털 멀미(빠른 화면으로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을 느끼는 증상)를 줄였다는 설명이다.
/사진=애플 |
비싼 가격과 짧은 배터리 사용 시간은 흥행의 걸림돌로 꼽힌다. 내년 초 시장에 풀리는 비전 프로 가격은 최소 3499달러(약 457만원)로 메타 신제품 ‘퀘스트3(499달러)’의 7배 수준이다. 또 비전 프로는 전원을 연결하면 하루종일 사용할 수 있지만, 외장 배터리의 최대 이용 시간은 2시간에 그친다. 영화 한 편의 러닝타임이 보통 2시간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이날 애플 주가는 장중 184.95달러까지 치솟아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장 후반 약세로 돌아서 0.76%(1.37달러) 내린 179.58달러로 마감했다.
넥스트 스마트폰 vs 460만원 장난감…애플 ‘비전 프로’ 미래는
-15억 아이폰 이용자와 ‘연결’ 관건
팀 쿡 애플 CEO가 ‘비전 프로’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애플 유투브 캡처 |
“원 모어 띵.”(One more thing.)
팀 쿡 애플 CEO는 5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파크에서 열린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MR(혼합현실) 헤드셋 ‘비전 프로'(Vision Pro)를 발표하기 직전 이를 외쳤다. 이는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가 신제품 발표회에서 깜짝 공개할 때마다 즐겨 썼던 문구로, 애플 팬 사이에선 사실상 주인공의 등장을 알리는 말이다.
실제 올해 WWDC의 주인공인 비전 프로를 애플은 ‘최초의 공간 컴퓨터’라고 명명했다. PC와 모바일을 넘어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 자체가 디지털 세계를 잇는 가교역할을 한다는 설명이다. 애플은 “비전 프로는 실제 공간에 디지털 콘텐츠가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제공한다”라며 “전통적인 화면의 경계를 초월해 무한한 캔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팀 쿡이 “구글과 메타의 VR(가상현실) 제품과는 다르다”고 강조해온 만큼, 표면적으로는 메타가 선점한 ‘메타버스’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다. 다만 메타버스가 현실과 가상세계 결합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비전 프로는 메타버스 촉매제가 될 전망이다. 로이터통신 역시 “애플이 메타가 지배하는 시장에 뛰어들었다”며 “아이폰 이후로 가장 위험한 베팅”이라고 평가했다.
비전 프로가 구현하는 세상은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비전 프로로 OTT ‘디즈니플러스’를 시청하면 미키마우스가 우리 집 거실을 뛰어다니고 내가 마블 영화 속 주인공이 된다. 맥과 연동 시 내 방은 하나의 거대한 4K 디스플레이가 된다. 거대한 창을 띄워 업무를 보는 모습은 흡사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떠올리게 한다.
별도의 컨트롤러가 필요한 기존 기기와 달리 사람의 눈과 손동작, 음성만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선 고(故) 스티브 잡스가 떠오른다. 잡스는 2007년 아이폰을 첫 소개 당시 “우리는 세계 최고의 도구를 갖고 태어났다. 바로 열 손가락”이라며 휴먼 인터페이스(자판 대신 말이나 글씨·촉각으로 컴퓨터에 데이터를 입력하는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내년 90만대 판매 목표…”457만원” 말하자 객석에선 ‘우~’
/사진=애플 |
이 같은 혁신성에도 최소 3499달러(약 457만원)의 비싼 가격은 비전 프로 대중화에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실제 팀 쿡이 가격을 공개하자 애플 파크에 야유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앞서 메타도 지난해 10월 전문가용 VR 헤드셋 ‘메타 퀘스트 프로’를 1499달러(196만원)에 내놨지만, 비현실적인 가격이라는 비판만 받았다. 현재는 999달러로 가격을 대폭 낮춘 상태다.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애플 팬 사이에선 ‘1세대는 거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실험적인 첫 제품일수록 시행착오가 많다는 뜻이다. 미 IT전문매체 더 버지 역시 “애플은 비전 프로가 TV나 컴퓨터 모니터를 대체하는 방법을 오래 설명했지만 이를 위해선 엄청난 양의 처리능력과 디스플레이 성능이 필요하다. (2개의) 4K 디스플레이도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애플은 내년에 비전 프로가 90만대 이상 판매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고가의 VR·AR(증강현실) 기기 시장이 주춤한 만큼 업계에선 첫해 출하량이 10만대에 못 미칠 것으로 본다. 글로벌 투자은행 DA데이비슨도 애플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 조정했다. 자칫 소수의 고가 장난감으로 남을 수 있다는 평가다.
관건은 애플이 15억명 이상의 아이폰 사용자를 어떻게 비전 프로와 연결할지다. 이에 애플은 비전 프로를 위한 별도의 앱스토어를 구축하는 동시에 기존 아이폰·아이패드 앱도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애플의 블루투스 기기인 매직 키보드·마우스 등과 연결해 사실상 공간 기반의 컴퓨터라는 점을 강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범주 유니티코리아 에반젤리즘 본부장은 페이스북에 “약 500만원의 가격이 비싼 것 같지만 물리적 제약 없이 자신만의 대형 스크린과 최신 맥북 사양의 컴퓨터, 3D 카메라가 포함된 가격이라면 납득할 수 있다”라며 “애플스토어에서 작은 모니터가 하나 달린 맥북을 살지, 디스플레이 환경을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는 공간 컴퓨터를 살지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