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동산대출 올해만 1000억 ‘역성장’…실패로 끝난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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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 말 1조5000억원대 그쳐

6조까지 키우겠다던 정부 ‘공염불’

현실성 부족해도 강행된 ‘탁상공론’

서울 종로구 소재 정부서울청사 내에 금융위원회 현판이 걸려 있다. ⓒ금융위원회

국내 은행권이 설비나 시설물과 같은 동산을 담보로 기업들에게 내준 대출이 올해 들어 반년 동안에만 1000억원 넘게 역성장하며 1조5000억원대까지 쪼그라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이같은 동산대출을 6조원까지 키워 기업의 새로운 자금줄로 자리 잡도록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이제는 실패로 끝난 실험이라고 봐도 무방한 실정이다.

금융당국이 현실성이 부족한 탁상공론을 무리하게 밀어붙인 결과란 지적과 함께, 이를 유야무야 넘어가려는 태도가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까지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3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 국내 은행이 동산을 담보로 실행한 대출 잔액은 총 1조5847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5%(1106억원) 줄었다.

동산대출은 부동산 담보가 부족하거나 신용대출 한도가 꽉 찬 기업을 위해 출시된 실물 재산 담보 대출이다. 담보로 맡길 수 있는 동산은 생산시설과 같은 유형자산을 포함해 원자재와 재고자산, 농·축·수산물, 매출채권 등이다.

이처럼 제동이 걸린 동산대출 흐름에 더욱 눈길이 가는 이유는 금융당국이 과거에 내놨던 청사진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2018년 동산금융 활성화 추진 전략을 발표하면서 이 시장을 2022년 말까지 6조원으로 키우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현주소를 들여다보면 금융당국의 계획은 사실상 물거품이 된 상황이다. 금융위가 관련 플랜을 내놓던 2018년 말 4361억원 수준에 그쳤던 은행권의 동산대출 규모는 ▲2019년 말 9228억원 ▲2020년 말 1조4466억원 ▲2021년 말 1조7857억원 등으로 확대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듯했다. 하지만 이듬해 말 1조7506억원을 기록하며 정체되더니 지난해 말 1조6953억원에 이어 올해 들어 감소 폭이 더 커지고 있다.

은행권 동산대출 잔액 추이. ⓒ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금융당국이 동산대출 강화 정책을 내놨던 건 부동산 담보에 쏠려 있는 대출 구조를 개선하고 중소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새로운 물꼬를 트겠다는 취지였다. 중소기업 자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동산이 부동산과 인적담보를 보완할 새로운 신용보강 수단으로서 잠재력이 높고, 부동산과 달리 기업이라면 누구나 동산을 가지고 있는 만큼 창업기업과 초기 중소기업의 유용한 자금 조달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가 정책을 공개할 때부터 은행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 현장의 여건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사업을 밀어붙이고 있다는 볼멘소리였다.

최대 관건은 부동산에 비해 담보로서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동산대출의 리스크를 어떻게 최소화할 수 있을 지였다. 동산은 사후 관리가 어려워 금융사로서는 위험 관리 측면에서 부담이 만만치 않은 영역이다.

금융위도 이런 우려를 알고 있는 만큼 인프라와 제도 개선을 약속하긴 했다. 동산담보 부실채권에 대한 조기상각을 허용해 세금 부담을 완화해주고 효과적 건전성 관리를 위한 가이드라인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변화를 찾아보긴 힘들었다.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말만 믿고 선뜻 동산 대출을 늘리기에는 위험 부담이 만만치 않은 환경이 지속돼 왔다.

이런 가운데서도 금융당국이 입을 닫고 있는 데 대한 비판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동산대출은 분명한 정책 실패임에도 이를 주도한 금융당국은 어떤 후속 조치나 평가도 없이 조용히 넘어가려는 분위기”라며 “민간 금융사들로서는 정말 정부의 메시지를 믿고 사업에 나서도 되는 건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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