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 ‘3년 넘는’ 장기 예금 10조…고금리 끝물에 ‘베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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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 동안에만 2조 가까이 늘어

이자율 정점 지나면서 수요 몰려

예금 이미지. ⓒ픽사베이

국내 5대 은행이 고객들로부터 받은 예금에서 만기가 3년 넘게 남은 장기 계약의 규모가 한 해 동안에만 2조원 가까이 불어나면서 10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각보다 오랜 기간 이어져 온 고금리 기조가 이제는 정점을 지나고 있는 만큼, 최대한 높은 이자율의 예금에 가능한 오랜 기간 돈을 묶어두려는 고객들이 몰린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더해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기반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사태로 금융투자 상품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면서 안전 자산에 대한 수요를 더욱 부채질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이 확보하고 있는 정기예금에서 잔존 만기가 3년을 초과하는 잔액은 총 9조542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6%(1조9478억원) 늘었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이 보유하고 있는 잔존 만기 3년 초과 정기예금이 2조8961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115.5% 급증하며 조사 대상 은행들 중 최대를 기록했다. 우리은행의 해당 금액은 2조4890억원으로 다소(0.7%) 줄었지만, 여전히 규모가 큰 편이었다.

이어 신한은행은 2조4008억원으로, 농협은행은 9521억원으로 각각 19.5%와 1.8%씩 잔존 만기 3년 초과 정기예금이 증가했다. 하나은행의 관련 액수도 8040억원으로 0.7% 늘었다.

5대 은행 정기예금 중 잔존 만기 3년 초과 잔액 추이. ⓒ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이처럼 은행 장기 예금으로 자금이 쏠리는 배경에는 앞으로의 금리 전망이 담겨 있다는 해석이다. 이제 더 이상은 금리가 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고금리 시기의 마지막 수혜를 최대한 길게 누리고자 하는 심리가 깔려 있다.

한국은행은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현재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를 유지 중이다.

미 연준의 결단이 계속 늦춰지면서 금리 인하 타이밍은 계속 밀리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한국은행으로서도 선뜻 통화정책 전환이 어려워진 실정이다. 연초까지만 해도 한은 역시 올해 안에는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에는 그 시기가 내년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하지만 결국은 금리가 내려갈 것이란 예상에 정기예금 이자율은 이미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다. 앞으로는 지금과 같은 조건의 예금을 찾기 힘들 것이란 심리가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실제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신규 취급액 기준 은행권의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3.83%로, 같은 해 중 최고를 나타냈던 전달보다 0.13%포인트(p) 낮아졌다. 연초인 지난해 1월과 비교해도 0.04%p 떨어진 수치다. 이런 추세는 올해 들어 한층 짙어지고 있다. 지난 3월 은행권의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3.53%로, 지난해 12월보다 0.30%p 하락했다.

여기에 더해 투자 위험을 최대한 피하려는 기류가 형성되고 있는 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콩 H지수 ELS 상품에서 불거진 조 단위의 손실이 논란이 되자, 은행 예·적금을 다시 찾는 고객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의 시장 금리가 피크를 찍고 내려올 때에는 장기 예금을 찾는 수요가 반짝할 수 있다”며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이런 흐름도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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