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핼쑥해진 얼굴… 일제가 얼마나 모질었는지 알 수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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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주년 광복절 맞아 도산 안창호 선생 신상카드 재조명

국사편찬위원회

일제로부터 해방되어 주권을 되찾은 지 79년이 됐다.

광복 79주년을 맞은 지난 15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진 3장이 재조명되며 많은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해당 사진은 2018년 10월 1일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포함된 안창호 선생의 사진이다.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는 일제 경찰이 독립운동가, 항일운동 관계자 등 소위 블랙리스트로 낙인찍은 이들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신상 카드로 4,857명의 신상정보가 담겼다.

이 카드에는 안창호, 유관순, 윤봉길, 이봉창, 김마리아 등 일제에 저항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출생연월일과 출생지, 주소, 신장 등 개인 정보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활동, 검거, 수형에 관한 사실들도 기록되어 있다.

안창호 선생의 신상카드는 총 3장으로 첫 번째 카드는 1925년 10월 20일에 만들어졌다.

사진 속 안창호 선생은 단정한 정장 차림에 콧수염을 기르고 굳센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이 사진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안창호 선생의 모습이다.

편찬위는 “경찰에 체포되어 찍은 사진은 아니고 신상카드에 죄명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하면 경찰이 안창호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혹독한 수감 생활로 야위어 가는 안색… 독립운동가의 고단한 삶 보여줘”

약 7년 후 1932년 7월 4일 만들어진 두 번째 신상카드 속 안창호 선생은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이다.

이 당시 안창호 선생은 중국 상하이에 있었는데,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의 여파로 경찰에 연행되어 국내로 압송되었다.

2년 6개월의 옥고를 치른 안창호 선생은 1935년 2월 가출옥(가석방)했다. 죄명은 ‘치안유지법 위반’이었다.

편찬위는 “혹독한 수감생활로 점점 야위어가는 선생의 안색이 독립운동가의 고단한 삶을 보여주는 듯하다”라고 전했다.

1937년 11월 10일 만들어진 도산 안창호 선생의 세 번째 신상카드 / 국사편찬위원회

1937년 11월 10일에 만들어진 마지막 세 번째 신상카드 속 안창호 선생의 모습은 동일 인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안창호 선생은 1937년 6월 ‘동우회 사건’으로 다시 체포됐다.

일제는 계몽운동에 앞장선 동우회 관계자 180여 명을 체포했는데, 이 중에는 안창호 선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안창호 선생은 앞선 수감생활로 이미 건강이 크게 상한 상태였다. 병보석으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결국 1938년 3월 10일 순국했다.

안창호 선생의 변화가 담긴 신상카드를 접한 누리꾼들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일제가 얼마나 혹독하게 했으면 저 정도로 사람이 변할 수 있나”, “정말 가슴이 아프다”, “저런 모진 수모를 당하면서도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하시다니 정말 대단하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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