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0일, 우리나라의 전국 대학병원 전공의들이 병원 현장을 떠나면서 커다란 의료공백이 생겼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 동년 동월 1일에 발표한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에 대한 반발이었다. 정책은 2025학년도 대입부터 의과대학 정원을 기존의 약 3천 명에서 5천 명대로 2천 명을 늘리기로 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삼고 있다. 지금부터는 발표된 정책에 대한 각계각층의 목소리를 모아서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자 한다.
의료 서비스 붕괴의 조짐
▲의료대란의 주 현장 중 하나인 서울대학교 병원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곳보다도 뛰어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국가로 꼽힌다. 건강보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염가에 질 높은 진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희귀병, 일부 중병, 난치병 등 건강보험의 손길이 아직 닿지 않는 곳도 많지만, 의료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영역의 폭은 실로 넓다. 하지만 머지않아 이도 옛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구구조의 변화가 하나의 요인이다. 의료 서비스가 필요한 연령대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으며, 시스템을 떠받치는 보험료는 한정적이다. 또 하나의 축은 진료를 봐야 하는 의사 수의 부족이다. 절대적인 의사의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필수 의료를 위한 의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라는 상황이다. 전공뿐 아니라 지역의 편차도 심하다. 수도권을 벗어나게 되면 국민들이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의 질과 양은 급격히 낮아지게 된다. 지방에서 만날 수 있는 의사의 수가 수도권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모자라기 때문이다.
부족한 만큼 의사를 더 만들자는
생각에서
▲의사의 절대적인 수가 부족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의과대학 정원 확대 정책은 의사의 수가 모자라니까 그만큼 더 늘리자는 기본적인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사실 의과대학 정원 확충은 윤석열 정부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논의되던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의대 정원은 200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3천 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의료 서비스 붕괴에 대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의대 정원 확충은 논의되었으나, 이는 매번 의료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좌절돼 왔다. 그리고 이 모습은 대중들에게 ‘의사들의 기득권 지키기’의 형태로 비춰져 왔다.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의료계가 온전히 기득권만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라고 치부하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우리나라의 의사 수 자체는 부족한 상황이 아니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원 확충이 답이 아니라는 의료계
▲의사들 사이에서도 전공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는 문제가 있다
당연하지만 모든 전공이 고르게 인기가 있을 수는 없다. 어떤 전공은 시간이 지날수록 선호도가 더 떨어져, 지원자를 찾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일이 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형외과, 치과, 안과 등이 지망생들이 선호하는 전공으로 꼽히며, 필수 의료에 속하는 외과, 소아과 등은 기피하는 전공으로 이야기된다. 가장 큰 이유는 전공에 따라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다르다는 점이며, 또 하나는 필수 의료 전공의 의사들이 진료에 있어 더 많은 위험부담을 안게 된다는 점이다. 필수 의료 분야는 의료 사고의 가능성과 이를 통한 소송의 위험성을 더 많이 안고 있다. 그렇기에 현재의 정원 내에서도 필수 의료 분야 지원자는 항상 모자란 상황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의사들의 선호도가 낮은 필수 의료 분야의 전공 지망자들은 계속 미달을 기록하고 있다. 의사들이 의과대학 정원 확충을 반대하는 가장 큰 근거는 여기에 기인한다. 의사들의 전공, 그리고 지역을 제대로 재분배하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의료 서비스 붕괴 위기는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다.
정부의 안이 환영을 못 받는 이유
▲윤석열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는 주요 현안이 모두 담겨있으며, 구체적인 해결책은 제시돼 있지 않다
윤석열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확충 정책은 전체적으로는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에 포함된다. 여기에는 의료계에서 이야기하는 필수 의료 기피의 원인에 대한 해결책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의대 정원의 확대를 통한 의료인력의 확충과 함께 지역의료 강화, 의료사고 소송 부담 완화, 필수의료수가 인상 등의 내용이 여기에 포함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세부적인 실행계획이 전혀 없었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필수의료수가 인상에 대한 재원 마련 방법도, 조정안도 제시되지 않았다.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말만 하고, 구체적 계획 없이 덜컥 의대 정원만 늘리겠다는 이야기에 의료계는 본격적으로 반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의협에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
▲의사들의 특권의식을 빗대어 ‘의룡인’이라는 말이 통용될 정도다
보건복지부의 의대 정원 확충 소식이 전해지면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는 즉각 반발의 성명을 내고, 설 연휴 직후에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의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의학 분야 단체로, 모든 의사들은 의사 면허를 받는 순간 자동으로 가입하게 되어있다. 의협의 주된 활동은 의사들의 이익과 권리를 대변하는 것에 집중돼 있다. 그렇기에 이들의 활동은 종종 매체의 비판을 받기도 한다. 파업으로 이어진 금번의 상황에서도 의협은 비판의 중심이 됐다. 주요 매체들은 이번에도 의협의 대응을 비판하고 나섰는데, 다른 어떤 때보다도 비판의 크기는 거셌던 것이 특징적이었다. 거의 모든 매체가 의사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의사의 수가 늘어나지 않기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파업으로 인해 잃어버린
국민의 지지와 신뢰
▲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의대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해 의협을 중심으로 전공의들은 사직서를 제출하고 의료현장을 이탈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실제적인 의료 서비스의 공백이 발생하게 됐다. 그렇다면 이 사태로 인해 실제로 득을 본 이들은 누구이며, 피해를 본 이들은 또 누구일까. 가장 먼저 사건의 당사자로 들 수 있는 전공의들은 손해를 보는 이들로 분류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것은 그나마도 미미했던 국민들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보건의료노조가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9.3%는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파업 이후로 여론은 오히려 전공의들에게 더 안 좋은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사이익을 누리는 개업의들
▲남은 의료진은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매일 한계를 넘는 노동을 하고 있다
모든 의사들이 지금의 상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공의가 아닌 개원의의 경우에는 오히려 이번 사태를 통해 반사이익을 얻는 상황이다. 3차 병원에 속하는 전국 45개의 상급 종합병원 대신 종합병원과 전문병원 등을 포함하는 2차 병원, 그리고 일반적인 전국 약 3만 5천 개소의 의원이 의료공백을 메우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3차 병원의 신규 환자 입원은 24%, 수술은 상급 종합병원 15개소 기준 약 50%가 감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의 의료공백은 1, 2차 병원의 매출로, 그리고 3차 병원의 남은 의료진의 피로도 증가의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지지율 반등에 성공한 여권
▲하락세의 국정 운영 지지율은 현재 반등한 상황이다
또한 반사이익을 가장 크게 보고 있는 것으로 ‘여권’을 들어야만 할 것이다. 의대 정원 확충은 실로 민감한 이슈이기에, 지금껏 어느 정권도 단호하게 대처를 하지는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의료계 집단행동에 대한 강경한 대응 방침을 유지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국정 운영 지지율은 상승세를 그리고 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 긍정 평가 비율은 전주 대비 상승한 34%로 집계됐다. 긍정 평가 이유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의대 관련 이슈로, ‘의대 정원 확대’가 ‘외교’에 이어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긍정 평가 이유로 ‘보건의료 정책’을 꼽은 비율도 4%나 됐다. 이는 2월 초의 29%를 기록하며 지속적으로 하락하던 지지율의 반등에 성공한 것이라 평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당에 있어서도 의료 서비스 붕괴는 호재라 할 수 있다. 총선을 앞둔 현재의 상황에서 대부분의 이슈가 의료 서비스 붕괴에 묻히고 있기 때문이다.
원격의료 테마주도 급부상
▲원격의료 테마주는 이번 사태로 인해 큰 폭의 상승을 기록했다
의료공백의 상황 속에서 이득을 본 또 하나의 테마는 ‘원격의료’다. 의사와 환자가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아도 진찰과 처방이 가능한 비대면 진료, 원격의료 등과 관련된 종목들은 최근 주가가 크게 올랐다. 정부가 전공의 집단이탈 대책으로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면서, 모바일 진료 예약 서비스 똑닥의 운영사인 비브로스의 지분을 보유한 유비케어의 주가는 전달 대비 50% 가까이 상승했다. 국내 최대 헬스케어 플랫폼사인 케어랩스는 최대 77%의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 기회를 살린 간호사, 한의사
▲간호사, 한의사, 약사 업계에서는 금번 사태가 호재로도 읽힌다
의사의 독점구조를 깨고자 했던 간호사, 한의사, 약사 업계 또한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정부는 전공의 집단이탈에 따른 의료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간호사가 일부 의사 업무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도록 ‘간호사 업무 시범사업 보완 지침’을 시행 중이다. 간호사들은 사망진단, 척수마취 시술 등 대법원이 판례로 명시한 다섯 가지의 금지행위, 그리고 대리 수술과 전신마취 등을 제외한 다양한 업무를 병원장 책임 아래 할 수 있다. 대한간호협회는 이 기회를 살릴 수 있도록 “새로운 간호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한의사를 대표하는 대한한의사협회 또한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의사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정부를 향해 필수의료 분야 정책과 미용시술 자격에 자신들을 포함해달라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약사를 대표하는 대한약사회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의료공백이 이어질 경우에는 대체조제 활성화를 위한 움직임을 보일 것으로 짐작된다.
의협의 경우는 어느 쪽일까
▲방영을 3개월 앞둔 슬의생 스핀오프의 방영일도 이번 사태로 인해 조정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사태를 주도한 의협은 어떨까. 의협이 전공의들만 모인 단체라면 지금의 상황은 의협에게 불리하다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의협의 비중은 오히려 개업의가 더 높은 편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의사들은 의사 면허를 받으면 자동적으로 의협에 가입되고, 전공의의 수보다는 개업의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3차 병원의 전공의, 그리고 당장 2,000명이 늘어나게 될 교육 현장의 교수진과 학생들이다. 의사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의협의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은 어느 정도의 득과 실이 공존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가장 큰 피해는
▲강대강 대치가 계속되면 사태는 장기화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거론된 모든 집단들보다도 훨씬 더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일반 대중, 국민들이다. 의료 파업으로 인해 3차 병원에서 수술을 앞뒀던 중병 환자들은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의료 서비스의 전체적인 질은 파업 기간이 길어질수록 저하될 것이 자명하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인질로 잡힌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누군가가 분명한 이익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와 의사들의 강 대 강 대치는 언제까지 이어지게 될까. 각자가 현재 누리는 이익과 입는 피해를 잠시 내려두고, 대화를 통해 절충안 혹은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찾는 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국민의 생명이 담보로 잡힌 지금의 광경은 당분간 이어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 : 최덕수 press@daily.co.kr
공감 뉴스 © 데일리라이프 & Daily.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