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부부’ 정우성·이정재 만든 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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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용광로처럼 들끊는 김성수 감독의 세계, ‘비트’부터 ‘아수라’까지

붉게 타오르는 용광로처럼 활활 들끓는다. 김성수 감독의 신작 ‘서울의 봄’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데일 듯 뜨겁고 강렬한 긴장을 선사하는 활화산 같은 작품이다.

11월22일 개봉을 앞두고 9일 언론·배급 및 VIP 시사회를 통해 작품을 공개한 직후, 영화를 먼저 확인한 이들 사이에서 ‘충격’이라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원하는 이야기를 힘있게 펼치면서도 영화적인 재미를 갖추고, 동시에 극의 완성도까지 최상치로 끌어올린 감독의 집요하고도 집요한 시도가 가히 압도적이다.

올해 한국영화가 기억해야 할 단 한명의 이름이 있다면, 그 자리는 김성수 감독의 몫이다.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로 영화계에 입문한 김성수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를 거쳐 1995년 이병헌이 주연한 영화 ‘런어웨이’를 통해 장편영화 연출자로 데뷔했다. 30년 넘도록 오직 영화로 숨 쉬어온 감독은 초기 ‘비트’와 ‘태양은 없다’를 통해 청춘의 방황을 비극의 서사로 풀어내 동시대 젊은 관객을 사로잡았다. 이후 무협 액션 ‘무사’로 세계관을 넓혔고, 욕망과 욕망에 맞붙어 빚어낸 지옥같은 세상을 다룬 ‘아수라’로 연출을 이었다. 그 세계 안에는 배우 정우성이 있다.

‘서울의 봄’ 개봉을 앞두고 반드시 확인해야 할, 김성수 감독의 집요하고 압도적인 작품 세계를 살폈다. ‘서울의 봄’을 보고 난다면 다시 한번 찾아보고 싶은 욕망을 일깨우는 감독의 대표작 4편이다.

● ‘비트’… 청춘영화의 상징 그리고 ‘정우성의 시대’

‘비트’는 ‘청춘’의 다른 이름이다. 청춘의 방황과 반항,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상황의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좌절을 그린 작품으로 청춘영화의 상징이자 대표작으로 꼽힌다. 1997년 개봉한 영화가 세상에 나온지 벌써 27년이 흘렀지만 그 고유한 상징성은 변하지 않았다.

‘비트’는 지금의 김성수 감독을 있게 한 작품이자 배우 정우성을 넘볼 수 없는 스타로 도약하게 만든 작품. 이후 ‘태양은 없다’와 ‘무사’ ‘아수라’를 거쳐 이번 ‘서울의 봄’까지 무려 5편의 영화를 함께 일군 감독과 배우의 ‘운명’이 시작된 출발이다.

영화는 폭력으로 얼룩진 10대를 보내고 위태로운 나날을 살아가는 주인공 민(정우성)이 친구인 환규(임창정), 태수(유오성)과 얽혀 겉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드는 이야기다. 경험은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 모두가 거친 그 치열하고 뜨거웠던 청춘의 갈망을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정우성이 읊조리는 “난 꿈이 없었어”라는 대사는 당시 유행어처럼 번졌고, 정우성이 그린 민 캐릭터 역시 1020 남성 팬들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덕분에 지금도 정우성을 ‘우성이 형’으로 부르는 남성 팬덤이 존재하고, 그 팬들의 범위는 일반인을 넘어 후배 영화배우들 사이에서도 구축돼 있을 정도다. ‘남성 배우들이 선망하는 배우’ 정우성의 시작이다.

'태양은 없다' 정우성과 이정재 사진제공=우노필름
‘태양은 없다’ 정우성과 이정재 사진제공=우노필름

● ‘태양은 없다’… 정우성과 이정재, 둘 다 죽지 않은 기막힌 ‘제작 비하인드’

‘태양은 없다’는 김성수 감독이 ‘비트’의 세계를 이어가는 동시에 확장한 또 다른 대표작이다. 복서인 도철(정우성)과 흥신소에서 심부름을 하면서도 허세로 가득찬 홍기(이정재)가 화려한 세상의 한 켠에서 밀리고 찢기면서도 그들만의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영화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세상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서서히 깨닫고도 또 다시 치기 어린 마음으로 ‘한방’을 노리는 거친 청춘의 모습을 정우성과 이정재라는 걸출한 청춘스타의 얼굴로 표현한 수작이다.

‘태양은 없다’는 김성수 감독이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출발했다. 지난 8월 부안 변산해수욕장에서 열린 ‘팝업시네마 무빙’에서 ‘태양은 없다’를 상영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가진 감독은 ‘비트’와 ‘태양은 없다’에서 다룬 청춘의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밝혀 주목받기도 했다.

당시 감독은 “젊을 때는 청춘에 대해서 끊임없이 방황하고 좌충우돌하고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를 표출하면서 불나방처럼 사는 시기라고 생각했지만 나이를 먹고보니 그때 생각했던 청춘과 지금 생각하는 청춘이 다르다”고 말했다. “겪어보니 젊은 시절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다”는 말이다. ‘비트’와 ‘태양을 없다’에 열광했던 관객이 지금 이들 작품을 다시 본다면 어떤 감상을 꺼낼지 궁금해지는 말이다.

동시에 ‘태양은 없다’는 김성수 감독과 주연 정우성, 이정재의 ‘피끓는 에너지’로 탄생한 작품이기도 하다. 당초 시나리오에서는 영화 말미 정우성이 죽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하지만 영화를 촬영하던 정우성은 감독에게 조심스레 ‘감독님, 저 죽지 않으면 안돼요?’라고 물었다. 앞서 ‘비트’ 등 작품에서 줄곧 죽는 역할을 맡아온 탓에 그 여파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탓이다.

이에 설득된 감독은 정우성 대신 이정재를 죽는 설정으로 바꾸고자 했다. 이번엔 이정재도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두 배우의 완강한 의견에 결국 감독은 제작자를 만나 ‘두 배우가 안죽는다고 한다’며 ‘둘 다 살려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이번엔 제작자가 발끈했다. 주인공 한명이 죽고 안죽고에 따라 영화의 스코어가 달라진다면서 펄쩍 뛰었다. 제작사 뿐 아니라 투자사까지 나서서 ‘한명은 꼭 죽어야 한다’고 감독의 의견을 반대했다.

영화만큼이나 젊은 패기로 똘똘 뭉친 당시 김성수 감독과 정우성, 이정재는 ‘죽지 않겠다’고 버텼고 결국 ‘태양은 없다’는 주인공들이 모두 살아남아 해피엔딩(!)을 맞았다.

● ‘무사’… 돌아오지 못한 고려인들이 벌이는 대서사

2001년 개봉한 영화 ‘무사’는 한국영화 장르에서는 드문 무협 액션에 도전해 탁월한 완성도를 구축한 작품이다. 중국 사막 지역에서 진행한 대규모 로케이션, 비장미 넘치는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대전투, 그 극한의 상황에서 꽃피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다뤄 관객을 사로잡았다.

영화는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명나라 사신으로 갔다가 귀양길에 오른 고려 무사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김성수 감독은 ‘또’ 정우성과 손잡고 대담한 도전을 시도했다. 정우성의 역할은 고려 사신을 지키는 호위무사. 사막에 고립된 이들은 몽골군에 납치된 명나라 공주(장쯔이)를 구출하고 이로 인해 돌이길 수 없는 비극에 휘말린다.

‘무사’는 20여년전 제작된 영화이지만 지금 기준으로 평가해도 고난도 로케이션을 통해 완성한 웰메이드 무협 액션으로 손색없다. 더욱이 이때부터 김성수 감독의 ‘집요함’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영화 러닝타임 대부분에 액션이 등장하기에 감독은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스태프는 물론 배우들을 밀어부쳤다. 함께 작업한 이들은 완벽을 추구하는 감독의 독한 지휘에 혀를 내둘렀고, 관련한 이야기들은 흡사 ‘무용담’처럼 영화계에 퍼졌다.

● ‘아수라’… “독한 김성수 감독이 더 독해진 영화”

정우성은 2016년 영화 ‘아수라’를 통해 김성수 감독과 4번째 인연을 맺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수라’는 “김성수 감독이 더 독해진” 영화다.

사실 정우성이 김성수 감독을 향해 갖는 믿음은 연출자가 지닌 ‘독한 집요함’에서 비롯된다. ‘비트’부터 ‘태양은 없다’ ‘무사’까지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감독의 출연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그는 ‘아수라’ 역시 “진짜 하고 싶은 영화가 있다”는 감독의 말을 듣고, 곧바로 ‘저와 하시죠’라고 말하면서 시작했다.

‘아수라’는 김성수 감독이 관객에게 진면목을 과시한 작품이다. 수도권 한 도시를 지배하는 악랄한 시장(황정민)과 그에게 기생하는 하수인 형사(정우성)가 서로를 의심하고 경계하면서 맞는 지옥같은 세상을 다루고 있다. 4번째 작업이었지만 정우성은 김성수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또 다시 “놀랐다”고 했다. 여전히 독했고, 그 독한 스타일은 더욱 집요해졌기 때문이다.

끝까지 밀어부치는 김성수 감독의 집요함은 결국 영화의 완성도로 직결된다.

‘아수라’는 가상의 도시를 배경으로 허구의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사실은 정치권과 공권력, 검찰 권력이 맞붙어 피튀기는 전쟁을 다룬 이야기로 읽히면서 영화 관객의 아드레날린을 한껏 끌어올렸다.

그 집요함에 치를 떨만도 한데, 정우성은 김성수 감독에 매료돼 ‘서울의 봄’을 통해 무려 5번째 만남을 이어간다. 물론 감독은 달라지지 않았다.

정우성은 9일 열린 ‘서울의 봄’ 언론시사회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아수라’를 촬영하면서 배우가 감독을 죽일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스트레스를 줬었다”고 다소 과장을 섞어 이야기하며 “‘서울의 봄’에서는 또 다른 집요함과 치열함을 줬다”고 돌이켰다.

배우에게 주는 스트레스가 엄청났기에 정우성은 “(감독님의 이야기가 듣기 싫어)때론 혼자 음소거 모드로 감독님의 얼굴만 바라볼 때도 있었다”고 털어놓았지만 “그런 감독의 세계관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인물들은 진정성이 있다”고 만족을 표했다.

감독의 압도적인 집요함은 ‘서울의 봄’으로 확인할 수 있다.

1979년 12월12일 일어난 신군부에 의한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는 실화를 소재로,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구태의연한 명제를 보기 좋게 깨부수면서 ‘살아 숨쉬는 실화’의 저력을 과시한다. 아직 관객의 평가가 남아있지만, 올해 가장 돋보이는 한국영화이자 오랫동안 기억될 작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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