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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깊어지고, 넓어지고… 하지원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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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하지원이 영화 ‘비광’으로 스크린에 돌아온다. / 해와달엔터테인먼트
배우 하지원이 영화 ‘비광’으로 스크린에 돌아온다. / 해와달엔터테인먼트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하지원이 영화 ‘비광’으로 관객 앞에 선다. 톱스타에서 생계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하는 연예인으로 추락한 남미로 분해 화려함을 걷어내고 이전과 또 다른 얼굴을 꺼내 보인다.

‘비광’은 톱스타 부부였던 중구(류승룡 분)와 남미(하지원 분)가 갑자기 나타난 중구의 딸 동주(김시아 분)로 인해 파경을 맞은 뒤 8년 후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린 동주를 구하기 위해 마지막 남은 모든 것을 걸고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미쓰백’ 이지원 감독이 약 8년 만에 내놓은 스크린 신작으로, 2021년 촬영을 마친 뒤 약 5년의 기다림 끝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극 중 한때 대중의 사랑을 받던 톱스타였지만 모든 것을 잃고 생계형 연예인으로 살아가는 남미를 연기한 하지원은 과거와 현재의 큰 낙차를 오가며 외적인 변화는 물론 말투와 호흡까지 세밀하게 달리해 삶에 지친 인물을 완성했다. 생활감에 무게를 둔 연기로 캐릭터에 생생함을 더했다.

최근 시사위크와 만난 하지원은 오랜 기다림 끝에 ‘비광’을 선보이게 된 소감부터 남미를 이해하고 완성해 간 과정, 배우로서 품고 있는 고민과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이유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완성된 영화를 본 소감은. 오랜 기다림 끝에 관객과 만나게 됐다. 어떤 마음이었나.

“감독님이 끝까지 다 완성한 버전은 나도 어제 처음 봤다. 예전에 가편집본을 본 적은 있는데, 워낙 예전에 찍은 작품이고 시간이 지난 뒤 다시 마주하다 보니까 남미의 입장이 아니라 그냥 관객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예전에는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도 했다. 내 영화인데도 즐기면서 봤다. 개봉하길 정말 손꼽아 기다렸다. 감독님이 나를 안고 울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감독님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비광’에 정말 공을 많이 들였고 잘 찍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봉이 조금 늦어지면서 쌓인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그 감정이 와닿았던 것 같다. 촬영도 1년 정도 늦춰지면서 준비할 시간을 더 갖게 된 거라고 생각했다. 일단 나는 작품을 선택하면 ‘고’라서, 믿음을 갖고 기다렸다.”

-작품을 택한 이유는. 

“나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였다. ‘나’라는 사람과 배우를 하고 있는 나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면서 페인팅 작업을 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만 살던 하지원이 아니라 세상에 놓인 나, 그리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그러던 때 ‘비광’의 남미라는 캐릭터를 만났다. 나 역시 여배우로 살아가면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남미도 자신이 놓인 세상에 대한 상처와 고민들이 있지 않나. 지금도 그 과정 안에 있지만 계속 그런 고민을 하면서 작업했다.”

톱스타 남미를 연기한 하지원. / 플레이그램
톱스타 남미를 연기한 하지원. / 플레이그램

-연기 변신에 대한 갈증도 작품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미쳤나.

“갈증 때문에 선택했다기보다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예전에는 강하고 판타지적인, 캐릭터성이 뚜렷한 역할을 많이 했다면 이번에는 정말 삶에 놓인 인물이었다. 남미를 비롯해 가족들의 캐릭터가 굉장히 생생하고 살아 있는 느낌, 그들의 삶이 느껴지는 부분이 매력적이었다.”

-남미를 이해해 간 과정은 어땠나. 

“시나리오에 있는 상황을 하지원이라는 사람으로서 받아들이고 이해하기에는 동주와의 관계나 여러 상황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남미라는 사람이 가진 상처와 그가 살아온 배경을 고스란히 바라보려고 했다. 그런 지점을 이해하고 하나씩 풀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성숙해지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동주는 남미와 너무 닮아있는 아이다. 남미도 어렸을 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랐고 배우가 됐다. 동주 역시 그렇다. 그래서 남미에게 동주는 거둘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존재이자 마치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 같은 아픔이 아니었을까. 남미였기 때문에 동주를 그렇게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같은 배우로서 남미에게 더 깊이 이입할 수 있었던 지점도 있었나.

“더 이입할 수 있었던 건 내가 사는 세상에서도 내 직업이 배우고, 남미가 사는 세상에서도 배우기 때문이다. 물론 시나리오 안에서의 삶이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부분이 있으니까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더 크게 보면 배우라는 직업을 떠나 우리는 사회가 원하는 나로 살아가는 세상에 있지 않나. 엄마가 바라는 나, 회사에서 바라는 나, 학교가 바라는 나, 선생님이 바라는 나 같은 것들이다. 그런 사회의 시선에 대한 고민을 계속했고 작업으로도 그런 이야기를 해왔다. 나 역시 남미처럼 추락하는 큰 경험을 한 것은 아니지만, 여배우로 살아가면서 사회에 놓인 ‘여배우 하지원’이라는 존재가 있지 않나. 그런 부분은 늘 어렵다. 정말 하나하나 더 조심하게 되고, 한 번 더 생각하고 신중하게 된다. 책임감 또한 굉장히 크게 느끼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남미를 연기하면서 품었던 키워드나 이미지가 있나.

“처음부터 ‘이런 인물이다’라고 정해놓기보다는 프리 단계에서 하나하나 완성해 나갔다. 의상이나 헤어, 메이크업부터 말투, 분위기, 톤까지 감독님과 정말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한 신을 두고 몇 시간 동안 이야기한 적도 있고 며칠 동안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그런 준비 기간이 길었던 게 남미를 연기하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됐다. 프리 단계에서 충분히 준비했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오히려 비우고, 남미처럼 그 삶에 놓여서 받아들이는 감각을 더 느낄 수 있었다.

감독님이 설정을 굉장히 잘해주셨다. 과거와 현재의 큰 차이가 남미의 매력인데, 톱스타일 때는 말투도 조금 더 거칠고 세게 했다. 골드 드레스를 입는 등 굉장히 화려한 모습도 보여준다. 반면 남미가 추락한 뒤에는 머리도 탈색해서 더 상하게 했고 피부 관리도 하지 않았다. 감독님이 2주 정도 시간을 주셨는데 미안해 하시더라. 살을 빼야 했기 때문이다.(웃음) 8년 전에는 건강한 모습이었다면 8년 뒤에는 생활감이 더 느껴지고 삶에 놓인 남미를 보여주기 위해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하는 등 외적인 변화를 줬다. 말투나 언어의 톤, 대사의 톤도 달라졌다. 남미가 너무 지치고 부대끼며 살아온 만큼 분위기나 호흡까지 감독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캐릭터를 잡아갔다.”

하지원이 캐릭터 구축 과정을 떠올렸다. / 플레이그램
하지원이 캐릭터 구축 과정을 떠올렸다. / 플레이그램

-남미를 준비하는 데 꽤 긴 시간을 들였다고. 그 시간이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나.

“그만큼 남미라는 캐릭터가 계속 숙성됐던 것 같다. 천천히 하나씩 입혀나가고 되짚어봤다. 감정을 더 높여보기도 하고, 욕도 해봤다가 묵혀두고 다시 해보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렇게 캐릭터를 충분히 숙성시키는 동안 스타일이나 헤어, 메이크업까지 더해지면서 남미가 완성돼 갔다. 그런 과정이 굉장히 중요했다. 남미뿐만 아니라 내가 살아가면서 맺고 있는 엄마, 친구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도 다시 한번 돌아봤다. 그러면서 남미가 놓인 관계들을 그려보기도 했다. 여러 가지로 참 많은 생각을 했던 시간이었다.”

-영화에 담기지 않은 8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연기했나.

“8년이라는 시간이 점프하지만, 8년 후 남미를 보면 자신의 삶을 막 밀어내려고 하지도 않고 어떤 욕망 때문에 부딪히려고 하기보다는 그 삶에 놓인 채 그냥 버틴다.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버티고 견디다가 어느 순간 그냥 그 삶에 놓이게 된 것 같다. 그렇게 먹방도 찍으면서 더 이상 갈 수 없는 상황까지 놓이지 않았나 생각했다. 남미가 아무리 버티려고 해도 사회가 받아주지 않고, 반대로 사회가 그녀를 다시 끌어들이려고 해도 남미에게 의지가 없다면 힘들지 않나. 그건 남미가 여배우이기 때문에 겪는 일이라기보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류승룡과 부부로 호흡을 맞춘 소감은.

“(류승룡이) 평소에 굉장히 재미있잖나. 아재 개그도 엄청 많이 하는데 촬영할 때는 안 했다.(웃음) 나보다 먼저 캐스팅돼 있었다. 함께 작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영광이었고 꼭 같이 해보고 싶었다. 중구와 남미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복잡하고 미묘한 부부 관계이지 않나. 류승룡 선배가 현장에서 그 무드 자체를 만들어줬다. 따로 리허설을 하기보다 이미 너무 잘 받아줘서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같이하는 장면이 많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였다. 정말 감사했다. 촬영장에서는 그렇게 아재 개그를 안 하더니 요즘에는 엄청 한다. 숨을 못 쉴 정도로 계속한다.(웃음)”

-욕설 연기를 두고 이지원 감독이 20점을 줬다. 본인은 몇 점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100점이다.(웃음) 욕은 발음이나 그런 것보다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욕을 1~2년 한 사람과 10년 넘게 한 사람의 차이랄까. 나는 정말 진정성 있게 우러나서 뱉은 거라 100점이다. 진짜 욕을 하면서 연기했으니까. 집에서 엄청 연습했다. 녹음한 걸 계속 들으면서 연습했고 테라스에 나가서 나무를 향해 소리도 많이 질러보고 화도 내보고 욕도 하고 그랬다.(웃음)”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하지원. / 해와달엔터테인먼트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하지원. / 해와달엔터테인먼트

-최근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대학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다. 직접 해보니 어땠나.

“무대 위의 하지원이 아니라 진짜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이 세상을 이해하려면 나와 다른 제너레이션과도 소통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그러던 중 ‘26학번 지원이’ 제안을 받았고, 정말 궁금하고 알고 싶어서 콘텐츠를 찍게 됐다. 너무 고마웠던 건 동기들과 선배들이 나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말 나를 26학번 신입생으로 대해줬다는 거다. 덕분에 나도 그 안에 몰입할 수 있었다. 너무 감사했고 정말 재미있었다. 신기했던 건 카메라를 별로 낯설어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우리 때와는 또 다른 것 같다. 지금 세대의 친구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카메라에 익숙해서 그런지 대본도 없고 주어진 설정도 없는데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카메라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신기했고, 나를 친근하게 잘 받아주는 느낌도 굉장히 신기했다.”

-공약을 지키기 위해 음악방송 무대에도 올랐다. 직접 무대에 서보니 어땠나.

“너무 떨렸다. 몸도 정말 아팠다.(웃음) 일정이 잡히고 나니까 불안해서 잠을 못 자겠더라. 눈만 감으면 안무가 생각나고, 새벽에도 중간중간 깨서 혼자 연습했다. 3일 전부터는 침대에서 자면 안무를 까먹을 것 같아서 소파에서 자면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으려고 했다. 그렇게 무대를 마치고 나서야 숙면을 취했다. 평소에 안 추던 춤을 추니까 온몸이 다 아프더라. 겨우 무대에 올랐는데 원래 더 잘한다.(웃음) 너무 떨려서 중간에 안무가 생각나지 않아 몇 군데 놓쳤다. 안무를 다 외웠는데 기억이 안 나니까 너무 속상했다. 앞으로 공약은 신중하게 해야겠다.(웃음)”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하는 에너지는 여전히 유지하고 있지만, 배우로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져 간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로서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홈런’으로 음악방송도 하고, ‘26학번 지원이’도 하고, 예전에는 액션도 하고. 어떻게 보면 나에게는 쉬운 일들이 아니다. 굉장히 어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고, 하나하나가 도전이다. 물론 힘들지만 하고 나면 내가 확장되는 것 같다. 마음도 그렇고, 내가 바라보는 세상도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다. 그런 경험을 통해 세상과 더 소통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어떤 깊이나 내공을 내 안에 쌓아두는 것보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시야를 조금씩 더 넓혀가고 싶다. 그래야 나도 조금씩 세상으로 더 나아갈 수 있고, 앞으로 다양한 캐릭터나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작품을 만날 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비광’을 보게 될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라는 사람을 조금 숨을 고르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족 안에서의 내가 될 수도 있고, 회사 안에서의 내가 될 수도 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한 번 더 숨을 고르고 생각해보면, 그 생각을 통해 나라는 존재를 알아갈수록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비광’이 그런 것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보러 오십시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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