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불 수교 140주년, XR로 잇는다… KF ‘빛의 다리’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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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감형 콘텐츠가 국가 간 문화교류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지난 7월 열린 제30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는 50개국 321편을 상영하며 전년 대비 약 45% 늘어난 규모를 기록했는데, 이 가운데 XR 부문이 28편, AI 부문이 38편을 차지했다. 영화제와 미술관을 넘어 공공외교 영역에서도 같은 흐름이 확인된다.
KF(Korea Foundation,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송기도)는 주한프랑스대사관 문화과와 함께 한국-프랑스 수교 140주년 기념 확장현실(XR) 기획전 《빛의 다리(Bridge of Light)》를 8월 27일 개막했다. 전시장은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KF XR 갤러리이며, 11월 27일까지 이어진다.
전시는 ‘빛’을 축으로 양국 관계 140년을 되짚는다. 회화가 빛을 화폭에 옮기고 영화가 빛을 움직이게 한 이래 두 나라는 각자의 방식으로 빛을 다뤄왔고, 오늘날에는 XR과 가상현실(VR),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실감형 예술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것이 기획의 출발점이다.
구성 방식이 특징적이다. 양측이 각각 자국 작가와 작품을 직접 선정해 한자리에 걸었다. KF가 한국 작가 5팀의 작품 7점을, 주한프랑스대사관 문화과가 프랑스 작가 7팀의 작품 7점을 골라 모두 14점을 소개한다.
한국에서는 강이연, 우박스튜디오, 이세형, 임민욱, 전소정이 참여한다. 이들은 시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의 기억과 감각, 양국이 함께 마주한 동시대의 질문을 빛으로 다룬다. 이 가운데 세 점은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돼 처음 공개된다. 우박스튜디오는 칸영화제 이후 첫 신작인 VR 작품을, 파리에서 활동 중인 이세형은 신체와 땅을 주제로 한 퍼포먼스형 미디어아트를, 전소정은 기후위기를 다룬 신작을 각각 선보인다. 세 작품 모두 KF의 창·제작 지원을 받았다.
프랑스 측에서는 니콜라 테포(Nicolas Thépot), 모모코 세토(Momoko Seto), 세노코즘(Scenocosme), 아드리안 로크만(Adriaan Lokman), 위고 아르삭(Ugo Arsac), 유비소프트(Ubisoft), 제레미 그리포(Jérémy Griffaud)의 작품이 걸린다. 회화와 문화유산, 도시와 자연, 인간과 비인간, 기억과 데이터를 가로지르며 서로 다른 매체와 시대를 거쳐 진화해 온 빛의 궤적을 보여주는 구성이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해외문화진흥원(Institut français)이 추진·지원하는 글로벌 디지털 창작 프로젝트 ‘디지털 노벰버(Digital November)’의 일환으로 열린다. 2026년 주제인 ‘행간 사이에서(Entre les lignes)’는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말해진 것과 말해지지 않은 것 사이의 경계와 틈을 탐색한다. 빛이 남긴 선을 따라 한불 교류의 궤적과 그 사이의 이야기를 읽어보려는 《빛의 다리》의 기획 의도와 맞닿는 지점이다. 프랑스 측 자료에 따르면 올해 디지털 노벰버는 기념 회차로, 전 세계 문화 네트워크가 이 주제를 공통 기준으로 프로그램을 짜고 있다.
송기도 KF 이사장은 “한불 수교 140주년은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자리인 동시에, 문화와 예술, 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양국의 협력을 넓혀 나가는 새로운 기회”라며 “이번 전시가 양국의 문화예술 교류를 한층 확장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피에르 모르코스(Pierre Morcos) 주한프랑스대사관 문화원장은 “《빛의 다리》는 올해 수교 140주년을 맞은 프랑스와 한국 간 문화교류의 풍요로움을 보여준다”며 “프랑스와 한국의 예술가들을 디지털 창작이라는 주제로 한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는 예술적 혁신이 양국 간의 대화를 지속적으로 풍성하게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세부 내용은 KF 누리집과 공식 소셜미디어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BIFAN도 협력기관으로 참여한다.
KF XR 갤러리는 그간 인류 보편 가치나 국제 담론을 실감형 콘텐츠로 풀어내는 기획전을 연이어 편성해 왔다. 지난해 개막해 올해 2월까지 이어진 ‘플랫폼: 보다 인간적인’은 폴란드·체코 기관과 협력해 13점을 걸었고, 3월 31일부터 7월 31일까지는 국제 인권 담론을 다룬 ‘마주하는 얼굴들’이 열렸다. 이번 전시는 특정 양자 관계의 기념을 전면에 내걸었다는 점에서 앞선 기획전들과 결이 다르다.
한불 수교 140주년을 실감형 콘텐츠로 풀어낸 사례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BIFAN이 7월 운영한 뉴미디어 프로그램 ‘비욘드 리얼리티’에서도 140주년을 기념하는 프랑스 미디어아트 작가의 돔 시네마 작품이 소개된 바 있다. 기념 사업의 상당 부분이 전통적인 공연·전시가 아니라 XR과 돔 상영, 미디어아트를 매개로 설계되고 있다는 뜻이다.
수교 140주년 기념 사업이 11월까지 이어지는 만큼, 양국의 디지털 창작 교류가 일회성 행사에 그칠지 상설 협력 구조로 넘어갈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가 된다. 국내 실감콘텐츠 창작자 입장에서는 KF의 창·제작 지원처럼 신작 제작비를 대는 공공 트랙이 얼마나 지속되느냐가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