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맨 끝줄 소년’ 최민식, “열패감이 가득 담긴 인간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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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식은 언제나 인간의 가장 깊숙한 곳을 파고드는 배우다. 이번에도 그는 선인도, 악인도 아닌 욕망과 열등감, 후회와 집착으로 흔들리는 평범한 인간의 얼굴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그려냈다.
넷플릭스 시리즈 「맨 끝줄 소년」에서 그가 맡은 허문오는 단 한 편의 소설 이후 더 이상 작품을 쓰지 못한 채 국문과 교수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문학을 사랑하지만 재능 있는 제자와 성공한 친구 앞에서 점점 무너져가는 그는 끝내 자신의 욕망과 질투에 잠식된다. 최민식은 그런 허문오를 “발가벗겨 정육점에 걸어놓은 고깃덩어리 같은 인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표현했다.
공개 전만 해도 “여름에는 「참교육」이나 「김부장」처럼 시원하게 응징하는 이야기가 잘 어울리는데, 이 작품은 불편해서 과연 좋아하실까 걱정했다”고 웃어 보인 그는, 막상 작품이 공개된 뒤 이어진 호평에 안도했다고 털어놨다. 캐릭터를 구축한 과정부터 최현욱과의 호흡, 허문오의 블랙코미디적인 면모, 그리고 45년째 이어지고 있는 배우로서의 욕망까지. 여전히 인간을 탐구하는 이야기에 가장 큰 매력을 느낀다는 배우 최민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공개 이후 좋은 반응들이 쏟아졌다.
리뷰를 다 꼼꼼히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처음엔 기대를 안 했다. 사실 「참교육」이나 「김부장」 같은 드라마는 여름에 보기 좋지 않나. 여름인데 시원하게 나쁜 놈들 응징하는 드라마를 보셔야 하는데, 「맨 끝줄 소년」은 좀 답답하지 않나. (웃음) 이야기가 편하지만은 않고 불편한 구석도 많아서 과연 좋아들 하실까 의구심이 있었다.
허문오라는 캐릭터에 어떻게 접근했나.
허문오라는 캐릭터를 봤을 때는 ‘이건 발가벗겨야겠구나’ 싶었다. 정육점에 걸어놓은 고깃덩어리 같은 인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상과 비정상의 개념 차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상식에는 굉장히 반하는 인간이다. 지식인이고 작가라지만, 배운 것과 인격은 관계가 없다. 배운 사람이 세상을 리드하기도 하지만 인격체가 완성되는 건 아니다. 우리는 그런 걸 많이 봤다.
꼭 배웠다고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욕망덩어리, 열패감과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민낯을 발가벗겨서 걸어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마음으로 캐릭터에 접근했다.
이 드라마를 보고 「올드보이」를 떠올린 이들도 있다.
대본을 보고 연기하면서는 「올드보이」 생각을 안 했다. 솔직히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런데 보니까 비슷한 구석이 있더라. 그놈이 세 치 혓바닥 잘못 놀려서 난리 부르스를 쳤는데, 이번에도 또 뻐꾸기 잘못 날려서 그 애한테 인수분해가 된다. 그런 평들이 재미있었다. 나중에 ‘그러네, 비슷한 게 있네’ 하고 알게 됐다.
원작 희곡 「맨 끝줄 소년」과 희곡을 영화화한 「인 더 하우스」는 봤나.
원작은 안 봤다. 희곡도 안 읽어봤고 얘기는 들었다. 프랑수아 오종 감독이 「인 더 하우스」로 영화화했다고, 참고하라고 알려줬는데 영화도 안 봤다. 이제 보려고 한다. 그걸 보면 아무래도 「맨 끝줄 소년」을 하면서 영향을 안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듣기로는 원작이나 영화는 좀 더 문학적 색채가 짙고, 창작자의 윤리나 관음에 대해 더 심도 있게 파고든 작품인 것 같다. 우리는 거기에 한국적 서스펜스를 더했다. 예를 들어 인과에 대한 이야기, ‘구업’ 그러니까 말로써 지는 업, 그것으로 인해 나약하고 욕망덩어리인 인간이 자기가 옛날에 그런 말을 했는지도 기억 못 하는 것 때문에 파멸에 이르는 이야기다. 그게 우리의 각색 포인트였다.
최현욱 배우 오디션에도 함께 참여했다고 들었다.
이강 역할 오디션을 한다는 말이 있어서 2~3일 정도 봤다. (최)현욱이 나이대 친구들이 많이 왔다. 농담으로 “「맨 끝줄 소년」 말고 「맨 끝줄 소녀」는 어떻습니까?” 이런 얘기도 했었는데, 그중 현욱이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흡족했다. 잘하지 않았나. 정말 잘했다.
제작보고회 때도 말했지만 나는 리시브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친구의 연기를 잘 받아치기만 하면 드라마가 무난하게 굴러가겠다고 봤다. 이강이라는 인물이 깔아놓은 판에서 내가 놀아나는 것이다. 한마디로 얘한테 휘둘리는 거니까 잘 휘둘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제작발표회 때 이 작품은 6회까지 한 번에 봐야 힘이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매회 다음 회를 이끌 힘도 필요했을 것 같다.
의도적으로 끌고 가야 한다는 강박은 없었다. 대본 자체가 그런 힘을 갖고 있었다. 나는 대본을 음표라고 생각했다. 그 음표에 맞게 정확하게 연주하면, 불협화음이 나지 않게 음계에 따라 연주하면, 매회 갖고 가는 텐션과 빌드업이 잘 표현될 거라고 믿었다.
내가 새로 각색하거나 설정을 집어넣거나 작위적으로 노력한 건 없다. 이번만큼은 대본에 충실하려고 했다. 텍스트 자체가 원작을 기반으로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한국식으로 추가한 허문오의 서사, 김수훈과의 관계, 아내 안은주와의 관계, 이걸 이용하는 이강 등 각색된 부분도 명확했고 인물의 동기부여도 분명했다.
시험지를 훔치고 교정을 뛰어가는 신이 있다. 점프도 열심히 하며 달리던데 촬영 비하인드가 궁금하다.
죽는 줄 알았다. (일동 웃음) 대구다, 대구. 계명대. 진짜 더웠다. “NG 내지 말자. 세 테이크 넘어가면 땡칠이 돼서 촬영 못 한다” 하고 죽어라 뛰었다. 아마 두 테이크만에 찍은 것 같다. 내가 왕년에 그래도 좀 뛰었다. (일동 웃음)
그 뜀박질과 함께 어린아이 같은 얼굴이 나오는 게 좋았다. 그 장면에 대해 더 말해준다면.
허문오가 갖고 있는 다층적이고 다면적인 모습이다. 드라마에서 허문오는 부정적인 요소가 많다. 교수라는 놈이, 작가라는 놈이 왜 저러나 싶고, 가정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지질하다. 그런데 아주 악한 놈은 아니다. 작가로서, 창작자로서 내실을 다지고 본질에 접근해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한 노력해야 하는데 유명 작가에 대한 동경, 친구에 대한 라이벌 의식 같은 조건들이 허문오를 열패감에 사로잡히게 만들었다.
다만 허문오라는 인물이 열패감만으로 6부작을 끌고 가기엔 무언가 부족한 점이 있는 것 같아 감독님과 약간 블랙코미디적인 변화를 주자고 했다. 막 깔깔대는 재미가 아니라 “아, 참 미친 놈이네” 싶은 실소가 터져 나오는 부분 말이다.
시험지를 빼돌리고 좋아하다가 나중에 현숙이에게 혼나지 않나. “뭐 하는 거냐, 지금. 이게 당신이 해야 될 짓이냐”고 하는데 허문오는 “짜릿했다”고 하지 않나. 그런 걸 보면 애 같은 면이 있다. 교수로서의 윤리 의식은 온데간데없고 일탈에 대한 해방감이 있는 것이다. 그런 것만 봐도 허문오가 얼마나 취약하고 나약한 인간인지 알 수 있다.
엔딩도 좋았다. 최현욱 배우가 말하기로는 세월을 겪고 무너진 얼굴 하나로 촬영장을 압도했다고 하더라.
허문오는 이강이 다시 나타날 것이라곤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그 모습을 설득시키는 게 제 일이다. 그게 참 죽을 맛이다. 어떻게든 훅, 뭔가 쓸고 지나가는 느낌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내가 하나 설정한 건 있다. 그런 모진 일을 겪고, 와이프도 떠나고, 학교에서도 잘리고, 작가로서 명성은커녕 대외적으로 쓰레기가 됐는데 매일 멸치에 소주를 먹고 있는 것이다. 정신 오백 년쯤 나간 놈이다. (일동 웃음) 뭔가 이야기에 몰두해서 끄적이고 있는데 소주와 멸치를 먹고 있는 설정은 내가 생각했다. 소품팀에서는 처음엔 “멸치요?” 하더라. 그런데 총장님(김규태 감독)은 딱 통했다고 하더라. (일동 웃음)
시청자 반응을 보면 둘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재밌지만 불편하다는 반응이고, 또 하나는 생각하지 못한 모습을 보며 성찰하게 된다는 반응이다. 연기하면서 기억나는 대사나 애정하는 장면이 있나.
내 대사보다 허준호 배우의 대사가 오래 남는다. “할 이야기가 없으면 그냥 안 해도 되지 않나? 그냥 그렇게 살아도 괜찮잖아” 그 말이 되게 섬뜩했다. 대본으로 읽을 때도 그랬다. 작가에게는 무서운 말이다. 장명우 작가를 다시 봤다. 무서운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 대사를 다시 문오가 김수훈에게 돌려주지 않나. 그 장면도 인상 깊었다.
어설프게 돌려주다가 괜히…. (웃음) 참 지질하다. 정말 지질한 놈이다. 과거에 잊고 살았던 김수훈이 다시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책을 가지고. 그런데 대놓고 분노할 수는 없다. 그걸 감추면서 라면 끓일 때 냄비 뚜껑 사이로 김 나오듯이, 나름 머리를 써서 다시 돌려주려고 했다. 그런데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김수훈은 노련하다. “작가와 독자가 뜻이 맞다는데 이보다 더 신나는 일이 어디 있습니까?” 하면서 오히려 받아친다. 공격했다가 그 노련함에 더 찌그러지는 것이다. 일식집 장면이 그렇게 된거다. 저는 그 신을 되게 좋아한다. 허준호가 너무 잘했다.
허문오는 교수인데도 원색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
일부러 의도해서 비속어나 “대박” 같은 말을 쓴 건 아니다. 아까 말했듯 민낯이다. 지식인의 위선. 그들도 혼자 있을 때는 욕도 많이 한다. 소위 화이트칼라, 먹물들이 욕을 더 잘한다. 사람은 사람이니까. 교수라고 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교수 같은 건 아니다. 그런 걸 디테일하게 표현하려고 했다.
이 사람을 발가벗겨 민낯을 걸어놔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욕이나 비속어가 캐릭터를 표현하는 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지만, “대박”은 나도 모르게 나온 것이다. 대본에 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솔직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다.
허문오에게 계속 “멈춰”라고 말하고 싶었다는 시청자 반응도 있더라. “그만 말해”, “그 행동 하지 마” 같은 식으로. 그런데 허문오는 왜 끝내 멈추지 못하고 계속 갔을까.
분명한 건 이강의 문학적 소양이 뛰어났다는 것이다. 기존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는 다 허접했는데, 이놈은 달랐다. 친구를 가장해 집에 들어가 관음하고, 거기서 느낀 감정과 서사를 쓰는 모양새가 학생이 썼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걸 캐치한 거다.
그리고 궁금했을 거다. “이놈을 한번 문학수업으로….” 선생으로서 뭘 가르쳐준다는 마음도 있었겠지만 즐기고 싶었을 것 같다. 이강의 은밀한 관음적 행태와 글 자체에 끌렸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나름의 작가적 양심, 교수로서의 양심은 있었다. “관음하지 마라. 관찰만 하라고 했지 언제 관음하라고 했냐”, “작가는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한다. 스카프를 넣어 가정부 누나를 도둑으로 몬 것에 대해서도 도덕의식을 갖고 대화한다. 즐기더라도 선을 넘지 말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김수훈이라는 걸 알고부터 뚜껑이 날아간다. 도덕의식이든 작가로서, 교수로서, 선생으로서의 의식이든 온데간데없어진다. 잠자고 있던 복수심, 질투, 열패감이 한꺼번에 뒤섞인다. 거기에 안은주, 와이프까지 더해져 “너는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 간 놈”이 된다. 그동안 이강에게 받았던 글이 다 수훈이였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끝난다.
은주를 향한 감정이 김수훈에 대한 감정만큼 깊고, 그것이 이강이 쓰는 소설과 결합되면서 허문오가 한 치 의심 없이 이강의 소설을 사실로 믿게 하는 요인이 됐다고 생각했다. 남자에게 첫사랑이 저렇게 생각을 마비시킬 정도인가 궁금했다.
그렇지 않을까? (일동 웃음) 내 경우는 아니지만 여자도 그렇고 남자도 그렇고 인생을 살면서 꽂히는 사람이 있지 않나. 어릴 때 얘기든 뭐든 오랜 잔영이 남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다만 허문오가 바라보는 은주에 대한 감정은, 그 대상이 김수훈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만약 허문오에게 트라우마를 주지 않은 괜찮은 다른 사람의 아내였다면 이런 감정까지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히려 행복을 빌어줄 수도 있다.
옛사랑에 대한 감정도 있지만, 김수훈의 와이프가 됐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다. 그건 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 질투다. “내 여자까지 너는 뺏어갔어”라는 것이다. 안은주를 자기 여자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착각이다. 안은주는 안중에도 없는데, 허문오는 “저 여자는 내 여자다”라고 확신해 버린다. 그런데 다른 놈도 아닌 김수훈이 내 여자를 뺏어갔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큰 피해망상인가.
극 중 모든 인물이 허문오의 지질함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중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진경 배우가 연기한 아내 현숙이다. 현숙과는 어떤 감정이었다고 생각했나. 사랑하긴 했나.
사랑했을 거다. 부부 관계는 복잡하다. 이혼을 하든가, 습관처럼 살 바에야 그만두든가, 그렇게 단순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나중에 아내가 짐 싸서 떠난다고 하니까 가지 말라고 하지 않나. 그걸 연기하면서도 “허문오, 너는 진짜 안 되겠다” 싶었다. 옛사랑은 집착과 질투 때문에 그렇게 연연해하면서, 현재의 사랑에 대해서는 방기하고 무책임하다. 막상 그게 깨지려고 하니까 또 안달복달한다.
이 모든 장치들이 불편하고, “저런 미친 놈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허문오의 서사와 캐릭터를 그려나가는 중요한 소재가 됐다.
이 작품은 인간의 결핍이나 열등감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흔히 질투나 부러움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면 발전의 기제로 쓰일 수도 있다. 본인에게도 질투나 부러움의 대상이 있나.
연기적으로는 많다.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같이 이 업계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에게 많이 자극받는다. 이번 현욱이 같은 경우도 “내가 저 나이 때 저렇게 했었나” 싶었다.
이번에 「핑계고」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예능에 거의 출연하지 않는데 달변이기도 하다. 예능 욕심은 없나.
하도 나가라고 해서 나갔다. (일동 웃음) 뒤에 계신 분들(드라마 홍보팀)이 다른 건 몰라도 「핑계고」는 나가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무슨 고등학교인 줄 알았다. (일동 웃음) 유재석 씨와는 예전에 「유퀴즈」에서 한 번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걸 많이 보더라. 현욱이 보셔서 알겠지만 말도 느릿느릿하고 영감님 같고, “이건 나라도 풀어야겠구나. 나라도 뻐꾸기를 날려야겠다” 싶었다. 정신없이 요이땅 하면서 터지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고 “너무 털었는데?” 싶었다. 그래도 드라마 홍보가 잘 된다면야. (일동 웃음)
「파묘」 때도 ‘할꾸’로 홍보 활동이 화제가 됐다. 예전보다 훨씬 다이내믹하고 즐거운 모습이 자주 보인다. 뭔가 바뀐 계기가 있나.
일부러 그런 건 없다. 나는 일부러는 못 한다. 싫으면 싫고 좋으면 좋다. 「파묘」 때는 너무 고마웠다. 코로나 지나고 다시 극장에 사람들 꽉 찬 걸 보고 눈이 돌아갔다. 정말 감사했다. 극장 다 망했다고 했는데 말이다.
극장 관람 문화도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박수 치고 끝났는데, 이제는 관객들이 뭘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사진을 찍자고 한다. 그거 못 해주겠나 싶었다. 영화만 잘되고 극장으로 사람들이 다시 온다면야 사진 하나 찍어주는 게 뭐 그렇게 어렵겠나. (일동 웃음)
멜로를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그렇다. 낯간지러운 젊은 친구들의 연애보다는, 인생을 어느 정도 산 사람들이 해석하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 용기 없음 같은 것 말이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같은 작품을 보면 굉장히 감동적이다. 불륜이다, 도덕적이다, 이런 측면에서 접근하기보다 사랑의 감정이 과연 무엇인지 파고들어 보고 싶다. 마지막에 비 오는 날 차 문고리를 잡는 장면이 너무 가슴 아프지 않나. 그 사람이 만약 문을 박차고 나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차에 탔다면 우리가 박수를 쳐줄 수 있을까.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어마어마한 미래가 있다. 자식들, 남편, 남편은 또 무슨 죄인가. 그런 도덕적 딜레마, 현실적 딜레마가 있다. 그걸 단순히 불륜 드라마라고 볼 게 아니라 인간의 근본적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로 해보고 싶다.
45년 동안 연기해왔다. 그동안 달라진 점이 있나.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욕망은 더 끓는 것 같다. 허문오처럼. 좋은 작품을 하고 싶은 욕망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인간에 대해서도 그렇고. 더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더 많은 작품을 다양하게 표현해보고 싶다.
글 · 나우무비 심규한 편집장
사진 · 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