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플릭스] 이동현 기자 = 2026년 대한민국 연극제 서울대회 양천지부 대표작으로 선정된 연극 ‘한의 자리_군산 1930’이 오는 3월 27일 19시 30분과 28일 15시 양일간 무대에 오른다.
작품은 작가 최정윤이 집필하고 연출가 이기석이 연출을 맡았으며, 극단 은행목이 주최해 공연을 선보인다.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민족의 깊은 한(恨)과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당시 조선인의 궁핍한 삶과 식민지 경제 구조 속에서 누적된 설움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넘어 인간 존재의 고통으로 무대 위에 되살아난다.
1930년대 군산은 식민지 경제 수탈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다. 군산에 세워진 조선은행은 일본 자본과 상권을 보호하고 확장하기 위한 금융기관으로 기능하며 일본 상인들에게 특혜를 제공했다.
일본인 상인들은 정책 금융 자금을 저리로 대출받아 조선 농민들의 논밭을 헐값에 사들였고, 고리대금업을 통해 농지를 점차 장악해 갔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조선은행은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라 식민지 경제 수탈의 상징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연극 ‘한의 자리_군산 1930’은 바로 이 조선은행을 중심으로 얽히는 인간의 욕망과 생존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 펼쳐낸다. 거대한 역사 속에서 개인의 삶이 어떻게 흔들리고 파괴되는지를 두 남성의 비극적 운명을 통해 드러낸다.
맹목적인 효심으로 동지를 배신하게 되는 사환 박재호,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은행원 최윤, 이 두 인물의 선택과 갈등은 욕망과 생존 사이에서 무너지는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보여주며, 동시에 ‘해방’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를 다시 묻게 만든다.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해방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윤리와 선택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다.
식민지 시대 민중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흔히 ‘도탄지고(塗炭之苦)’라는 말로 표현된다. 진흙과 숯불 속에 빠진 듯한 삶의 고통처럼, 문화적 억압과 경제적 수탈 속에서 백성들이 겪어야 했던 비통함은 오늘날에도 완전히 치유되지 않은 역사적 상처로 남아 있다.
무대 위에서 반복되는 장면들은 피빛 어린 역사의 흔적을 되살리며 관객의 가슴 깊숙이 공허함과 슬픔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그 속에서 평범한 사랑과 가족의 삶마저 식민 권력의 압박 속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 조선은행의 금고에 쌓여 있는 황금은 단순한 부가 아니라 민족의 피와 눈물, 그리고 억눌린 한의 상징처럼 보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토스(Heraclitus)는 “만물은 흐른다”고 말했다. 그의 사유처럼 역사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흘러간다. 무대 위에서 금고가 열리고 황금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억압된 역사 속에서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상징적 장면으로 읽힌다.

그것은 파괴나 소멸이 아니라 또 다른 변형과 해방의 가능성을 암시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특히 무대는 망아지경(忘我之境), 사물에 압도되어 자신을 잃은 듯한 상태처럼, 한민족의 설움은 수탈의 중심이었던 조선은행을 통해 더욱 잔인한 역사적 표상으로 드러난다.
이번 공연을 준비한 극단 은행목과 스태프, 그리고 배우들의 치열한 몸짓은 단순한 연극적 재현을 넘어 관객과 감정을 나누는 또 하나의 심장 박동이 될 것이다.
무대 위에서 되살아나는 군산의 1930년은 과거의 역사를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질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