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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호는 ‘만능열쇠’ 같은 남자다. 일도, 육아도, 사랑도… 심지어 외모까지 완벽 그 자체다. 일찍 부모를 잃은 탓에 빨리 가정을 꾸리려고 대학 때 만난 연인과 결혼해 딸을 낳았지만 산후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내와 곧 이혼하는 아픔을 겪는다. 현실의 어려움을 지혜와 행동으로 극복하는 그는 한창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승승장구하던 대기업 인사팀을 뒤로하고 육아 휴직을 선택해 어린 딸을 애지중지 돌보고, 복직한 뒤로도 오직 딸을 살뜰하게 돌보는 일이 가장 중요한 아빠다.
외모는 또 어떤가. ‘별이 아빠’ 유은호는 동네 유명 인사다. 이른 아침 딸을 배웅하려 유치원에 그가 나타나면 엄마들의 웅성대며 괜히 설렌다. 유은호는 우여곡절 끝에 악연으로 만난 헤드헌팅 회사의 대표 강지윤(한지민)와 ‘6개월 단기 비서’로 계약을 맺는다. 비서는 처음이지만, 그의 능력은 분야를 넘나든다. 일 외에는 대책이 없는 지윤의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유은호로 인해 지윤의 일도 술술 풀리기 시작한다. 헤드헌팅 전문가들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유은호는 척척 해결하다가 지윤과 사랑에도 빠진다.
지난 14일 막을 내린 SBS 금토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철저히 시청자의 판타지를 자극한 ‘동화 같은 드라마’다. 유은호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주인공’의 정석에 충실한 인물. 매일 아침 유치원에 가는 딸을 위해 한껏 모양을 낸 아기자기한 주먹밥을 만드는 요리실력부터 아이의 몸에 좋은 각종 과일과 채소를 종류별로 구비해놓고 사는 철저하고 다정한 아빠이기도 하다.
일에서도 빈틈이 없다. 이직과 퇴사, 능력 있는 직원 빼가기가 난무하는 대기업의 인사팀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남들 눈에는 약점처럼 보이는 난제를 어렵지 않게 극복하는 긍정의 아이콘이기도 하다. ‘나의 완벽한 비서’가 방송 내내 인기를 얻은 결정적인 힘은 유은호가 전방위에서 자극한 강력한 판타지에서 나온다. 회를 거듭하면서 상승한 시청률도 이를 증명한다. 지난 1월3일 첫 방송에서 시청률 5.2%(닐슨코리아‧전국 기준)로 출발한 드라마는 유은호에 빠져든 시청자의 뜨거운 지지에 힘입어 최종회에서 12%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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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앤 해서웨이‧로버트 드니로의 영화 ‘인턴’ 설정 차용
‘나의 완벽한 비서’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서 익숙하게 봐 왔던 남녀 주인공의 역할을 뒤바꾼 설정으로 여성 시청자들의 판타지를 한껏 자극했다. 상황을 주도하는 ‘대표님’과 그에게 이끌리면서 발을 맞추는 ‘비서’의 역할은 줄곧 남성과 여성으로 각각 설정돼 왔지만 ‘나의 완벽한 비서’는 진부하게 고착된 주인공들의 위치를 바꿔놓았다. 로맨스 드라마의 공식을 그대로 따르면서도 이전의 작품들과 다른 차별화는 이 같은 ‘성 역할의 전복’에서 비롯됐다.
강지윤은 헤드헌팅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 유능한 CEO다. 저돌적인 성향의 성공한 사업가이자, 여성들의 워너비로 통한다. 다만 일에서는 탁월하지만, 일 이외의 모든 것에는 허술하다. 매일 얼굴을 보는 직원들의 이름조차 외우지 못하고, 사무실과 집은 온갖 서류들로 아수라장이다. 반면 유은호는 일부터 육아까지, 직장부터 가정까지, 완벽하게 관리하고 돌보는 섬세한 인물. 빈틈이 많은 강지윤의 공백을 채우면서 서로에게 빠져든다.
이 같은 ‘나의 완벽한 비서’의 구조는 영화 ‘인턴’을 떠올리게 한다. 앤 해서웨이와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해 2015년 개봉한 영화는 유능한 패션 플랫폼의 여성 대표와 관록을 지녔지만 은퇴해 더는 사회에서 찾지 않는 나이든 인턴사원이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우면서 삶의 진짜 가치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개봉 당시 361만명을 동원했고, 인기에 힘입어 한국영화로 리메이크가 추진되기도 했다.
● 이준혁의 새로운 대표작
동시에 ‘나의 완벽한 비서’는 남자 주인공이 빛나야 로맨스 드라마는 성공한다는 공식을 어김없이 증명했다. 로맨스 드라마의 주요 시청층이 여성이라는 사실에서 판타지를 자극하는 남자 주인공의 활약은 작품 성공에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이준혁은 이번 드라마로 오래 기억될 이름을 얻었고, 두고두고 거론될 대표작을 품에 안았다. 이례적일 만큼 로맨스와 거리를 두고 주로 스릴러와 범죄 액션 등 장르물의 작품에 집중했던 이준혁은 단 한편의 로맨스 드라마로 이전의 성과를 뛰어넘는 ‘인기’를 얻고 있다.
이런 인기에 제작진도 한 몫을 했다. 제작진은 작정한 듯 유은호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마치 특수 조명을 쏘는 듯한 효과를 주면서 화사하고 매력적인 모습을 강조했다. 덕분에 이준혁은 ‘열혈 유은호 팬덤’을 확보했다. 그동안 팬들 사이에서만 통한 ‘밀키 바닐라 엔젤’이라는 그의 별칭이 이젠 대중적인 선호도를 얻고 있다. 불과 2년 전 주연한 영화 ‘범죄도시3’에서 보여준 잔혹한 빌런의 모습을 떠올리면 화사하게 빛나는 이준혁의 변화는 반전 그 자체다.
‘나의 완한 비서’를 통해 한지민의 선구안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눈이 부시게’부터 ‘봄밤’ ‘힙하게’까지 주연 드라마를 모두 성공으로 이끈 한지민은 이번에도 이준혁을 이끌고, 드라마 전체를 흔들림 없이 지키면서 로맨스를 넘어 전문직을 가진 직장인들의 모습을 아울러 표현했다. 분주하게 오가는 인파가 집중된 서울 광화문, 청계천, 삼청동 일대에서 야외 촬영을 진행하면서 현장감을 더한 볼거리를 강조한 제작진의 시도도 돋보였다.
다만 드라마는 ‘대책 없는 해피엔딩’으로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전체 12부작으로 구성해 빠른 이야기 전개를 선보이면서 극중 발생하는 위기와 갈등이 이렇다 할 해결 과정 없이 쉽게 해결되기를 반복했다. 때문에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 자체가 시시해졌지만, 어차피 유은호는 판타지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다시 떠올리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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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함준호 / 극본: 지은 / 출연: 한지민, 이준혁, 김도훈, 김윤혜, 이상희, 박보경, 기소유 외/ 장르: 로맨틱코미디 / 공개일: 1월3일 / 관람등급: 15세 이상 시청가 / 회차: 12부작 / 방송사 : SBS
[맥스무비 리뷰는 ‘포테이토 지수’로 이뤄집니다. 나만 보기 아까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은 반짝반짝 잘 익은 BEST potato(100~80%), 탁월하지 않아도 무난한 작품은 NORMAL potato(79~50%), 아쉬운 작품은 WORST potato(49~1%)로 나눠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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