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개발자 다룬 美영화 보고 日이 보인 반응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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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피해’ 일본이 바라보는 ‘오펜하이머’는?

영화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 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
영화 ‘오펜하이머’의 한 장면. 사진제공=유니버설픽쳐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오펜하이머’가 지난 29일 일본에서 개봉했다. 지난해 8월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 개봉한 지 8개월 만이다.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등 7관왕을 차지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작품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일본 현지 관객의 시선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일본으로서는 태평양전쟁의 가해자이면서도 1945년 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으로 인한 피해와 아픔을 상기시킬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을 비롯해 영국 BBC와 가디언, 미국 데드라인 등 다수의 외신들이 최근 ‘오펜하이머’의 일본 개봉 소식과 함께 현지 관객들의 반응을 담아냈다.

“일본의 일부 영화관은 입구에 영화가 핵실험 장면을 담고 있으며, 원자폭탄으로 인한 피해를 연상시킬 수 있는 이미지가 등장한다는 경고 표지판을 게시”(미국 데드라인)했다면서 개봉일 풍경을 전하기도 했다.

가디언은 영화에 대한 호평과 함께 “영화가 인간의 비참함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비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리뷰가 있다”고 보도했다.

이번 작품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킬리언 머피에 대한 찬사가 특히 많다고 매체는 전했다. 또 극중 오펜하이머의 윤리적 딜레마에 대한 고민도 담아냈다는 시선도 있다고 소개했다.

한 관객은 “이 영화는 오펜하이머라는 인간에 대한 작품”이라면서 “그가 양심과 씨름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 것이 “옳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원폭 투하의 아픔은 가시지 않고 있어서 ‘오펜하이머’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시선은 복잡한 듯하다.

일본 적십자사 나가사키 원폭병원의 도모나가 마사오 명예원장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오펜하이머’가 ‘반핵’ 영화라고 믿었다면서 “원폭 생존자에 대한 이미지가 없는 것이 약점이라고 생각했다. ‘오펜하이머’는 수십개 장면에서 원자폭탄의 현실에 대한 충격을 보여주었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밝혔다.

히로시마 원폭 투하 당시 3살이었고, 원폭 생존자 단체 연합인 히단쿄의 미마키 토시유키 공동의장은 “핵무기 없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희생자들을 포함해 모든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다치야마 쇼고는 60년 후 자신이 태어난 도시를 파괴한 사람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에서 폭탄 테러와 그 여파에 대해 배웠지만, 오펜하이머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 보도에서 히로시마 주민 가와이 씨는 “아카데미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놀라운 영화이다”면서 “이 영화는 원자폭탄을 찬양하는 듯한 방식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히로시마에 뿌리를 둔 사람으로서 보기 어려웠다”는 심정을 드러냈다.

히로시마의 한 젊은 관객은 BBC에 “주인공인 오펜하이머가 위대한 사람으로 묘사되었지만 마음 속의 후회와 죄책감을 숨길 수 없었다. 그걸 보는 건 정말 흥미로웠다”며 호평했다.

하지만 자신이 반핵운동가라고 밝힌 또 다른 대학생은 “역겹다”고 혹평했다.

미국 데드라인 보도에 따르면 히라오카 다카시 전 히로시마 시장은 이달 초 시사회에서 “히로시마의 입장에서 보면 핵무기의 공포는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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