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모시 샬라메라는, 아름다운 장르
따갑고 아름다운 1983년의 태양 아래서 열일곱 소년이 된 엘리오.
북부 이탈리아의 가족 별장에서 그는 이제껏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감정에 부닥친다. 역사학자인 아버지를 따라 별장에 온 24살의 청년 보조연구원 올리버가 따가워서 아름다운 태양처럼 강렬한 사랑으로 가슴 속에 각인된 것이다.
뭇사람들은 그런 두 사람, 특히 17살 소년 엘리오의 모습에 다양한 시선을 보냈다.
어떤 이들은 10대 소년의 순수하지만 그만큼 뜨거운 사랑의 욕망을 보았고, 다른 어떤 이들은 어느 순간 희미하게 순수함을 걷어내는 퇴폐미를 숨죽이며 바라보기도 했다. 또 다른 이들은 아직은 성숙하지 못한 탓에 불안하지만, 그래서 더욱 뜨겁게 그 속으로 빠져드는 캐릭터의 감성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였다.
관객들이 강렬한 캐릭터인 엘리오와 그를 연기한 배우를 동일시하게 된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네 이름으로 날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널 부를게)”라고 말하며 애절한 눈빛을 보낸 것처럼 말이다.
2018년 한국 관객 앞에 느닷없이 나타난 소년 엘리오는 바로 배우 티모시 샬라메(28)이다.
그 10여년 전 광고모델로 출발해 2009년 TV드라마 ‘로앤오더’를 통해 연기자로 데뷔한 그는, 동성애자 등 성적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퀴어 영화’의 전범(典範)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당대 가장 주목받는 젊은 배우로 도약했다.
실제로 미국 선댄스영화제에서 영화를 선보인 티모시 샬라메는 극찬에 가까운 호평 속에 미국 아카데미상 최연소 남우주연상 후보에 지명되기까지 했다. 또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2017년 10대 배우’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통해 티모시 샬라메는 한국 관객에게 자신의 ‘절대적 매력’을 각인시켰다. 한국 관객의 유난한 티모시 샬라메 사랑은 그 이듬해인 2019년 10월 부산에서도 확인됐다.
영화 ‘더 킹: 헨리 5세’의 주연 자격으로 당시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받아 한국을 처음 방문하는 그를 보기 위해 적지 않은 관객이 밤을 새우며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야외극장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한 것이다. 그 역시 “양념치킨이 맛있다”면서 한국과 한국 관객에 대한 애정을 친근하게 드러내며 박수를 받았다.
‘더 킹: 헨리 5세’는 영국과 프랑스가 1337년부터 벌인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왕 헨리 5세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티모시 샬라메는 헨리 4세의 아들이자 자유분방한 왕자 ‘할’ 역을 맡아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한 시대와 나라의 운명을 짊어지기 위해 나아가는 모습을 연기했다.
티모시 샬라메는 이 작품을 통해 미소년 특유의 유약하면서 반항적인 분위기와 강인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내면의 모습을 절묘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한국 관객에게 안겨준 매력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더 킹: 헨리 5세’의 연출자 데이비드 미쇼 감독은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속 그의 모습을 보고 캐스팅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티모시 샬라메는 ‘레이디 버드’(2018년), ‘작은 아씨들’(2020년), ‘본즈 앤 올’(2022년) 등 다채로운 이미지와 캐릭터를 내세우며 나이에 비해 적지 않은 작품으로 관객을 만나왔다. 그가 지닌 남다른 예술적 감수성 덕택이다.
미국 예일대를 졸업한 브로드웨이 댄서 출신 어머니와 출판일을 하는 아버지, 역시 배우인 누나, 여기에 더해 시나리오 작가인 외할아버지, 영화제작자인 외삼촌, 방송작가인 이모 등 그의 타고난 감각 뒤에는 문화예술적 감성을 제대로 꽃피워낼 수 있는 가정 환경이 있었다.
이는 2019년 부산을 찾았을 때 “이른 나이에 어른들의 세계에 놓여있는 헨리의 심정이 와 닿았다”는 티모시 샬라메에게 많은 관객이 ‘더 킹: 헨리 5세’ 속 왕자 ‘할’의 이미지를 그대로 등치시킬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배경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이제 새로운 무대를 선보이며 다시 한번 관객을 만난다. 28일 공개하는 ‘듄: 파트2’이다.
직전 그는 지난 1월31일 ‘웡카’를 통해 한국 관객을 찾아왔다. 2005년 개봉한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주인공 윌리 웡카가 최고의 초콜릿 메이커가 되기까지 과정을 그리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담아냈다.
관객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조니 뎁이 연기한 캐릭터 ‘웡카’를 티모시 샬라메가 어떻게 재창조해냈을지 일찌감치 호기심을 드러내 왔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등을 제작한 박찬욱 감독과 오랜 시간 호흡해온 정정훈 촬영감독이 참여하기도 해 화제를 모은 ‘웡카’가 이미 해외에서 1억5000만 달러(약 1960억 원)의 흥행 매출 성과를 올린 덕분이기도 하다. 국내에서도 현재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며 티모시 샬라메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다소 독특하고 냉소적인 이미지를 뿜어냈던 조니 뎁과 달리 티모시 샬라메는 웡카의 낙관적이며 엉뚱한 성격, 멋진 노래와 춤 실력을 제대로 표현해 호평을 받았다. 덕분에 최근 열린 미국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남우주연상에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연출자 폴 킹 감독은 “티모시 샬라메가 윌리 웡카의 본질을 완벽하게 포착했다. 이상하고 어딘가 불안하지만 재밌고 매력적이고 강인한 면모가 뒤섞여 있는 캐릭터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 소화해냈다”고 찬사했다.
2021년 ‘듄: 파트 1’을 통해 일명 ‘듄친자’(듄에 미친 자)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며 새로운 팬덤을 구축한 티모시 샬라메는 ‘웡카’에 이어 드니 빌뇌브 감독의 ‘듄: 파트 2’로 관객과 소통할 채비를 차리고 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티모시 샬라메가 “1편의 사색적이고 소년 같은 이미지와 다른, 좀 더 남성적인 모습으로 그려질 것”이라 소개했다.
1965년 프랭크 허버트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듄’ 시리즈는 생명 유지 자원인 스파이스를 두고 아라키스 모래 행성 ‘듄’에서 우주의 왕좌에 오를 운명으로 태어난 폴의 이야기를 그린다. 뒤늦게 자신의 능력을 깨달은 폴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이들을 향한 복수의 길에 나서는 과정이다.
‘듄: 파트 2’는 티모시 샬라메의 새로운 매력이 풍성하게 드러날 무대로 기대감을 한껏 빨아들이고 있다. 발랄하고 낙관적인 모습과 강렬한 액션 연기를 담아낸 두 작품은 ‘퇴폐적 미소년’ 또는 ‘불안한 듯 유약함의 이미지와 각진 얼굴이 드러내는 강인한 내면’ 사이를 오가는 것으로 비쳤던 그가 지금까지 쌓아온 예술적 감수성을 더욱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나는 굉장히 조심하려고 노력한다. 카메라 앞에서 일어나는 일보다 그 뒤에서 일어나는 일에 더 집중하게 될 수 있는 위험 때문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영화 정보 사이트 IMDB닷컴은 티모시 샬라메의 언급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티모시 샬라메는 이어 “관객의 즐거움만을 위해 즐거움을 주고 싶지 않다”면서 “작품은 작품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전히 한창 젊은 나이이지만 한 작품 한 작품 쌓아 올린 다채로운 필모그래피 속에서 스스로 길어 올린 예술가의 감성이 한껏 묻어나는 말이다. 타고난 예술적 풍모의 환경이 아니라 이제 그 스스로 더 다양한 무대를 갖기 원하는 배우로서, 당연하지만 또 그만큼 쉽지 않은 각오를 드러낸 것으로도 읽힌다.
티모시 샬라메는 그 각오를 드러내듯 또 다시 새로운 무대로 나아간다.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과 ‘로건’ 등을 연출한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새 영화 ‘어 컴플리트 언노운(A Complete Unknown)’이다. 영화는 포크음악을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싱어송라이터 밥 딜런의 이야기를 그린다.
티모시 샬라메는 밥 딜런 역을 맡아 직접 노래를 부르며 캐릭터의 예술혼을 불태운다. 우디 앨런 감독의 2019년작 ‘레이니 데이 인 뉴욕’에서 비를 맞으며 부른 ‘에브리씽 해픈스 투 미(Everything Happens to Me)’와 신작 ‘웡카’로 음악적 재능을 과시한 만큼, 밥 딜런 역에 제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어쩌면 티모시 샬라메는 ‘컴플리트 언노운’을 자신의 자유분방한 이미지를 생생하게 되살려낼 또 하나의 무대로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포크음악이 뿜어내는 ‘열림의 미학’ 그리고 밥 딜런이라는 뛰어난 예술가의 감성을 구현해내는 데 티모시 샬라메가 지닌 이미지와 지난 10여년 동안 그가 드러내 온 진정성의 연기야말로 크게 부합할 것이라는 관객의 신뢰가 여전히 탄탄하고 두터운 덕분일 것이다.
(이 기사는 덴 매거진(www.theden.co.kr)에 실린 기사를 일부 수정, 전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