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송혜교는 자신의 채널에 “우리 이모님. 혜란언니.”라는 글과 함께 염혜란과 함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두 사람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를 통해 인연을 맺었다. 현재까지 이어진 두 사람의 우정이 네티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염혜란은 ‘더 글로리’에서 일명 이모님으로 주인공 송혜교의 복수를 돕는데 많은 도움을 준 인물. 극중 슬픔과 웃음 두 가지를 모두 잘 표현해내며 극의 서사를 풀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렇듯 매 작품마다, 어떤 캐릭터든 자유자재로 소화해내는 배우 염혜란이 이번엔 스크린 신작으로 돌아왔다.
[인터뷰] 염혜란, 극의 분위기 바꾸는 팔색조 배우
교체로 투입되는 순간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은 선수처럼, 등장과 동시에 극의 분위기를 바꿔놓은 배우가 있다. 매 작품 분량과 상관없이 그 이상의 존재감을 발산하는, 그러면서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팔색조 배우 염혜란이 바로 그렇다.
염혜란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새 작품은 오는 1월24일 개봉하는 영화 ‘시민덕희'(감독 박영주·제작 씨제스엔터테인먼트)다.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한 여성이 자신의 돈을 되찾기 위해 직접 범죄 조직 본거지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를 그린다.
극중 염혜란은 라미란이 연기하는 덕희를 돕는 재중동포 출신의 세탁공장 동료 봉림을 연기했다. 덕희의 중국행에 동행해 중국어 통역을 도맡는다. 중국어 학습은 필수였다.
염혜란은 최근 영화 개봉을 앞두고 진행한 인터뷰에서 “뜻을 모른 채로 발음 그대로 외우는 게 안 되는 스타일이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수줍게 말했다.
“촬영 현장에 중국어 선생님이 상주해 계셨죠. 중국어가 어려운 게 성조 때문에 발음이 같아도 높낮이에 따라 뜻이 달라지더라고요. 한번은 ‘차 마실래요?’ 이 한 마디를 제대로 못해서 고생을 했어요. 연습 100번, 현장에서 100번, 후시 100번 총 300번은 말한 것 같아요.”(웃음)
염혜란은 자신의 중국어 연기를 아쉬워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리얼한 연기로 봉림의 캐릭터에 빠져들게 만든다. 절친에게 다급한 사정이 있다고 하지만 자신의 생계를 제쳐 두고 덕희를 따라서 중국에 가는 설정이 자칫 개연성 부족으로 비칠 수 있을 텐데, 염혜란은 찰나의 순간에 몇 마디로 봉림의 캐릭터에 정당성을 부여해낸다.
“덕희가 봉림에게 가장 소중한 친구이지만 여러 위험 요소를 감수하고 따라나설 수 있을지 관객들은 의심스러울 수 있잖아요. 그래서 감독님과 얘기해서 ‘주말 끼고 딱 하루면 되냐’ 등과 같은 대사를 넣고 수정해서 봉림이 떠날 수 있는 이유를 주려고 했죠.”
이처럼 작품을 빛내주는 배우이기 때문에 그와 함께 작업한 감독과 배우들의 칭찬은 끊이지 않는다. 그는 ‘동료들이 염혜란과 연기하고 싶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조화로움’을 언급했다. 그는 “내가 한 연기가 괜찮게 보였다면 다른 배우들과 호흡, 작품이 좋았기 때문이지 그것과 따로 생각할 수 없다”며 “모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을 좋게 봐주시는 게 아닐까 싶다”고 답했다.
그의 겸손한 화법에서 짐작되듯 연기뿐 아니라 사람이 좋아서 더 끌리는 배우다. ‘경이로운 소문’ ‘동백꽃 필 무렵’ ‘더 글로리’ ‘마스크걸’ 등 대중에게 크게 사랑받은 작품들에 대해 ‘작품 복’을 얘기하고 연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 ‘스태프 공’으로 돌리는가 하면, 매니지먼트사에 들어가게 된 계기로 “거절하기 힘들어서”라는 말로 그의 인품을 짐작케 했다.
“제안받은 작품들을 다 읽어보려고 해서 선택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이 작품의 메시지가 나한테 의미가 있는지 없는지를 우선으로, 전작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고르려고 하죠. 그 과정에서 거절하기가 쉽지 않아요. 혼자서 일하다가 회사에 들어간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죠.”
‘시민덕희’는 경찰도 잡기 힘든 보이스피싱범들을, 평범한 중년의 여성이 동료들과 합심해서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로 통쾌함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영화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는 사실에 재미 이상의 묵직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보이스피싱 소재가 새롭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가해자가 피해자와 연대하는 이야기가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또 막판에 뜨끈해지는 지점이 있더라고요. 실제 피해자가 시사회에 와 영화를 봤는데 ‘마음의 성처와 억울함이 조금 해소됐다’고 얘기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런 게 영화가 가진 힘이구나’ 생각했어요. 주인공처럼 살면서 용기가 필요할 때가 많잖아요. 영화를 통해서 그런 힘과 위로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