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판돈 빨리주면 부담? 결제주기 단축에 튀어나온 걱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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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권시장의 결제주기를 현행 결제일+2일(T+2)에서 T+1으로 단축하는 작업이 본격화하면서 결제 실패 위험과 해외 투자자의 부담을 어떻게 줄일지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은 T+1 전환을 전제로 시스템 개편을 준비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수십 년간 T+2에 맞춰진 시장 구조를 바꾸는 데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그동안 사실상 결제 실패가 없었던 국내 시장에서는 T+1 전환 이후 일시적인 결제 실패를 어디까지 정상적인 시장 리스크로 받아들일지에 대한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제 실패 늘어날 수도”…외국인도 리스크 우려
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증권시장 결제주기 단축 심층 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T+1 전환의 실무 과제와 해외 투자자 부담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날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T+1 전환으로 거래 내용을 수정하거나 부족한 증권과 자금을 확보할 시간이 줄어들면 결제 실패 가능성이 지금보다 높아질 수 있다고 짚었다.
강 실장은 “결제주기가 짧아지면 일시적으로 증권이나 자금이 부족해 결제 실패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 경우 해당 증권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며 “감독기관과 투자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시장은 결제 실패가 사실상 전무해 이를 금융회사나 시스템의 이상 신호로 받아들이기 쉽다. 반면 미국에서는 결제 실패가 전체의 2~3% 정도 발생하지만 이를 곧바로 금융회사 부실로 보지는 않는다. 결제 과정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운영상의 문제로 보고 원인 파악과 사후 처리, 비용 부과 등을 통해 관리한다는 설명이다.
강 실장은 “지금까지 우리 시장은 결제 실패를 제로로 만드는 데 익숙해져 있다”며 “T+1에서는 실패 원인을 신속하게 파악하고 해결하거나 비용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기관투자자도 T+1이라는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결제 불이행 위험과 시스템 구축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김미강 SC은행 이사는 “여러 시장이 비슷한 시기에 한꺼번에 전환하면 시스템과 인프라 구축 비용이 급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상당하다”며 “T+1 결제주기 단축의 효용성보다 오히려 결제 불이행 리스크가 더 부각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 개인투자자보다 결제 과정이 복잡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외국계 증권사의 매매계좌와 국내 보관기관의 자산보관계좌가 분리돼 있고 거래 체결 이후 펀드별 배분과 거래 확인, 결제지시, 원화와 주식 확보 등의 절차를 추가로 거쳐야 한다. 여기에 시차와 환전 문제까지 겹친다.
김 이사는 “한국 시장은 외국인 투자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제도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T+1 결제주기 단축까지 단시간에 도입된다면 현재 안정적인 결제 인프라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며 “철저한 테스트에 기반한 충분한 검증 시간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달리는 시장 주춧돌 바꾸는 일”
증권업계가 T+1 전환에 충분한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유는 결제주기가 단순한 전산 처리 일정이 아니라 시장의 각종 제도와 후선업무를 떠받치는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탁과 예탁결제, 전산 시스템, 외국인 투자 관련 업무도 모두 기존 결제주기를 기준으로 발전해왔다.
박상현 NH투자증권 차장은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이라면 처음부터 즉시결제를 전제로 설계할 수도 있지만 국내 시장은 오랜 기간 운영되면서 수탁은행과 예탁결제, 전산결제, 외국인 투자 등 많은 제도가 기존 결제주기를 전제로 만들어졌다”며 “결제주기는 기둥보다 더 아래에 있는 주춧돌과 같은 제도”라고 설명했다.
일부 증권사만 준비가 늦다고 제외할 수도 없다. 거래소와 예탁결제원, 증권사가 하나의 결제망으로 연결돼 있어 일부 회원사의 결제 불이행도 시장 전체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차장은 “시장이 달리고 있는 상태에서 주춧돌을 갈아 끼워야 하는데 준비하지 못하는 곳은 도태시키면 된다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모든 회원사가 함께 따라올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먼저 T+1을 도입한 해외에서도 전환 과정의 비용 부담은 적지 않았다는 사례도 언급됐다. 2023년 T+1 전환을 완료한 인도는 이후 과도한 결제 혼란이나 뚜렷한 외국인 이탈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보관기관이 근무시간과 교대체계를 확대했고 증권사는 사실상 3교대로 운영했다. 외국인 투자자 역시 환전을 미리 예약하거나 결제자금을 조기에 확보해야 했다는 것이다.
강 실장은 “인도 사례를 보고 별다른 충격이 없었다고 볼 것이 아니라 시장 참가자들이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들여 충격을 흡수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며 “그 비용을 누가 어떻게 부담했는지도 같이 봐야 한다”고 말했다.
10월 로드맵서 제도·시스템 개편 구체화
거래소와 예탁결제원은 이 같은 시장 부담을 반영해 T+1 전환에 필요한 제도와 시스템 개편 방안을 구체화하고 있다. 현재 시장결제와 기관결제, 인프라 혁신 등 분야별 워킹그룹을 운영하며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으며 이를 토대로 오는 10월 로드맵을 발표할 예정이다.
최훈 한국거래소 부장은 “로드맵에는 주요하게 변경되는 제도 개선이나 시스템 개편 사항도 포함돼 있고 추진 일정까지 제시하려고 한다”며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테스트 일정”이라고 말했다.
거래소는 실제 전환에 앞서 통합 테스트를 여러 차례 반복해 증권사와 유관기관 등 시장 참가자들이 T+1 체계에 맞춰 준비됐는지를 점검할 계획이다. 결제주기가 하루 줄어들면 오류를 수정하거나 결제 실패에 대응할 시간도 짧아지는 만큼 시행 전에 시스템 간 연계와 실제 결제 과정에서 문제가 없는지를 충분히 확인하겠다는 취지다.
예탁결제원도 외국인 투자자를 포함한 전체 시장 참가 기관을 대상으로 거래·결제 자동화 시스템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보다 관련 업무 처리시간을 절반 이상 줄여 T+1 전환에 따른 시차 부담을 낮추는 것이 목표다.
김진택 예탁결제원 부장은 “업무 프로세스가 자동화되고 처리시간이 크게 단축되면 결제주기 단축에 따른 리스크와 시차 부담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예탁결제원이나 거래소의 시스템 구축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유관기관과 해외 금융기관, 자산운용사까지 모두 연계돼야 한다”고 말했다.
거래소는 로드맵 발표 이후 시장 참가자들로부터 추가 개선 의견을 받은 뒤 세부 업무 표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실제 시행 시점은 해외 주요 시장의 T+1 전환 일정과 국내 업계의 준비 상황 등을 함께 살펴 정할 방침이다.
최 부장은 “글로벌 동향과 경쟁 국가의 동향을 살펴 최종적으로 언제 이행하는 것이 적정한지 금융당국의 정책 방향과 업계 의견을 수렴해 확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