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말고 슈퍼 투어러, 애스턴 마틴 DB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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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11 후속 모델은 벤틀리 컨티넨탈 GT와 페라리 로마를 정조준한다

지난해 애스턴 마틴 DBX를 대대적으로 개선한 DBX 707이 등장했을 때, 우리는 신차를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실내에 들어가 대시보드의 스크린을 건드리기 전까지는 모든 게 좋았다. “아, 네… 아직도 여전히 터치스크린이 아니에요.” 어색한 대답이 들려왔다.

애스턴 마틴이 아무리 멋있어 보이고 근사한 사운드를 뽐내며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한들, 대시보드 한가운데의 대형 디스플레이를 터치로 조작할 수 없다면 요즘 세상에서는 그저 ‘구식’일 뿐이다(터치스크린이 좋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독자 여러분은 아마 무슨 말인지 알 것이다…). 업계 최고 수준의 브랜드가 2022년에 공개한 DBX 707은, 바로 그 하나 때문에 만족스럽지 않았다. 다른 모든 부분이 얼마나 환상적인지는 상관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애스턴 마틴 DB12에는 터치스크린이 있다. 구동 소프트웨어는 완벽하진 않다. 서체는 다소 작은 편이고 일부 메뉴는 찾아 들어가 실행하기 어렵다. 하지만, 엔지니어링 팀은 이 차의 양산을 시작할 몇 주 뒤까지 계속해서 보정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그리고 양산 시점에는 모든 걸 제대로 맞춰 놓을 것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스크린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그 스크린을 손가락으로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소프트웨어는 메르세데스-벤츠로부터 빌려온 게 아니라 애스턴 마틴이 독자적으로 설계한 것이다.

어쨌거나 신형은 ‘애스턴 마틴의 대고객 사과’와 동의어가 되다시피 한 구형 DB11의 너무나 뚜렷했던 단점을 보완했다. 이제 더 이상 변명의 여지는 없다.

DB11에서 DB12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이전 DB9에서 DB11로 도약했던 것만큼 완전히 새로운 차는 아니다. 하지만 DB12는 완전 신차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정도로 강력한 페이스리프트다. 특히 차체 표면 아래와 실내 전체에 걸쳐 새로운 이름이 필요할 만큼의 충분한 변화를 단행했다. 애스턴 마틴은 DB12의 전체 하드웨어 중 80%, 소프트웨어의 100%가 새로 개발한 것이라고 말한다.

각도에 따라서는, 특히 뒤나 옆에서 보면 여전히 DB11의 흔적을 볼 수 있지만, 정면이나 전체 비율 면에서는 전반적으로 큰 진전을 이뤄냈다. 새로운 이름을 붙일 가치는 충분하다. 차체 측면에서는 DB11과 DB12를 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DB12의 차체는 더 넓고 목적에 더욱 충실하며 스포티 드라이브를 향한 의도를 훨씬 더 뚜렷이 드러내 보인다. 

실제로 애스턴 마틴은 DB12를 그랜드 투어러라 부르지 않고 ‘슈퍼 투어러’라고 부른다(1990년대의 BTCC 레이스카와는 다르니 오해 말기를). 대략 ‘그랜드라는 정도로는 이 차를 표현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의미 아닌가 싶다.

기계적 변화는 상당히 광범위하다. 현재 제공하는 유일한 엔진은 V8이다. 이번에는 V12가 없다. 4.0L 트윈터보 AMG 유닛은 더 큰 터보차저와 향상된 냉각 기능, 최적화한 캠 프로파일 및 정교하게 조정한 압축비로 상당한 성능개선을 실현한다. 최고출력은 이전보다 무려 168마력이나 증가한 671마력. 최대토크 역시 70.9kg·m에서 81.5kg·m로 올라갔다.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3.6초로 이전보다 거의 0.5초 줄었으며, 최고속도는 시속 320km를 넘어 시속 325km까지 올라간다.

토크 컨버터 방식 ZF 8단 자동변속기는 그대로이며, 전자식 디퍼렌셜은 스태빌리티 컨트롤 시스템과 연결된다. 전자식 디퍼렌셜은 찰나의 순간(1천분의 1초)에 완전히 잠긴 상태에서 완전히 열린 상태로 전환함으로써 민첩성과 반응성을 최상으로 유지한다. DB12의 알루미늄 차체는 DB11 대비 강성을 한층 높였다(7% 정도). 하지만 애스턴 마틴에 따르면, 섀시의 진정한 변화는 가변형 댐퍼의 적용이다. 이를 통해 기존 댐퍼보다 다섯 배 더 넓은 범위를 커버한다.

이토록 모든 면을 새롭게 가다듬고 능력을 키웠음에도, 운전하기가 조금 불편하다는 데에 살짝 놀랐다. 주행을 제어하면서 신경이 잔뜩 곤두섰다. 코너에 접근할 때 브레이크 페달을 제법 세게 밟아야 한다. 그런 다음 가속 페달을 밟으면 고개가 곧장 뒤로 휙 젖혀진다. 전작 DB11과 비교해 DB12의 모든 면이 얼마나 빨리 작동하고 반응하는지 파악해 모든 감각과 생각을 다시 계산하고 수정해야 한다. 이 차가 이전 모델과 완전히 다르다는 걸 깨닫기까지, 우리의 두뇌에겐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애스턴 마틴 회장인 로렌스 스트롤(Lawrence Stroll)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는 DB11을 두고 “느리다”고 말했다. DB12가 가히 잔인할 정도로 빠르다는 점으로 미뤄 짐작하건대, 엔지니어들이 스트롤 회장의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겨두고 개발한 듯하다. 속도 면에서 DB12는 DB11보다 DBS에 더 가깝다. 어떤 속도에서든 가속 반응은 거의 즉각적으로 이뤄진다. 그러면서도 8단 자동 변속기는 엔진과 기막힌 조합을 보이며 더욱 GT다운, 아니 진정한 슈퍼 투어러다운 면모를 분명히 보여준다. 자동 변속기 레버는 듀얼 클러치와 달리 다루기 까다롭거나 가혹하지 않다. 귀가 먹먹한 V12만큼은 아니지만, V8 엔진 사운드는 이 차의 몸놀림에 걸맞게 웅장하다.

우리는 DB12를 몰고 루트 나폴레옹과 콜 드 뱅스를 달렸다. 모두 프랑스를 대표하는 멋진 도로다. 루트 나폴레옹은 수많은 헤어핀 커브와 저단으로 공략해야 할 급커브를 갖추고 있는 반면, 콜 드 뱅스에는 3단 정도로 공략할 수 있는 좀 더 빠른 코너가 여럿 있다. 탁월한 차체 제어와 유연한 흐름, 안정적 핸들링과 강력한 접지력을 단단히 갖춘 DB12는 콜 드 뱅스에서 운전하기에 더 재미있었다. DB11보다 차체 강성을 7% 강화했다고 했는데, 수치보다 더 강한 느낌이었으며 특히 고속 코너에서는 흥미진진한 스포츠카의 면모를 마음껏 드러냈다. 

마지막 코너를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다음 코너를 간절히 기대하게 된다. 반면 저속에서는 오히려 긴장감이 커질 수도 있다. 차체 사이즈가 새삼 느껴질 뿐만 아니라 저속에서는 디퍼렌셜과 변속기 사이의 보정이 상대적으로 매끈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순발력 측면만 놓고 보자면 아랫급 밴티지와 DB12의 격차는 뚜렷하다. 심지어 더욱 스포티한 큰 차체를 고려하더라도 그 차이는 명확하다.

아마도 DB12의 가장 두드러진 면은 승차감과 안락함일 것이다. 더욱 강력해진 가속력과 순발력보다도 훨씬 크고 분명한 변화인데, 도심 곳곳을 운전하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댐퍼 성능을 크게 개선했다는 애스턴 마틴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물론 차를 잘 다뤄야 하겠지만, 저속에서의 정교함과 편안함을 생각하면 당신이 그렇게 스포티하고 강력한 차를 운전하고 있다는 걸 결코 짐작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전혀 위협적이지 않다. 우리의 시승 경로는 고속도로를 많이 포함하진 않았지만, 고속도로가 아닌 구간에서도 무척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하루 동안 어느 정도 익숙해진 뒤에도 여전히 모든 제어장치가 쉽게 손에 익지 않았다. 애스턴 마틴이 터치스크린에 모든 기능을 집어넣지 않은 건 높이 살 만하지만, 물리적 제어와 디지털 제어를 혼합한 방식은 어딘가 1세대 실내 구성을 떠올리게 한다. 향후 2년에 걸쳐 파생 모델을 포함해 모두 일곱 가지의 앞 엔진 스포츠카가 DB12의 뒤를 이어 등장할 예정이다. ‘새로운 애스턴 마틴’은 이제 시작일 뿐인데, 그럼에도 조립 품질과 최신 기술 및 편안함은 이미 상당한 폭으로 개선되어 있었다. 새로운 인테리어는 DB11의 가장 큰 단점을 성공적으로 해결해냈다.

전체적으로 볼 때 DB12는 성공적인 제품으로 간주할 만하다. 이 차는 또한 세그먼트에 흥미를 더한다. 아마 애스턴 마틴이 편안함과 정교함 측면에서 벤틀리 컨티넨탈 GT와 이 정도로 격차를 벌린 적은 없었을 것이다. DB11에서 DB12로 잘 전환함으로써 애스턴 마틴은 페라리 로마에 한 발 더 다가섰다.

물론 로마는 지금까지 받은 것보다 더 큰 관심과 폭넓은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지만, 사상 최고의 미드십 엔진 페라리 중 일부와 라인업을 공유함으로써 그 빛이 다소 바랜 면도 있다. 대륙을 가로지르는 GT에 걸맞은 능력을 경험하며 운전하는 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일이다. 다만, 로마는 DB12와 밴티지의 관계와 달리 아랫급 모델과의 차별화를 걱정하거나 고민할 이유가 없다.

페라리가 훨씬 더 다양한 기술을 갖추고 있다 할지라도, 이 애스턴 마틴과 페라리의 비교 테스트는 박빙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그 둘의 맞대결은 머지않아 있을 것이고, 아마도 올해의 가장 위대한 승부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일단 지금은 애스턴 마틴을 자동차 제조사로서, 그리고 브랜드로서 다시 업계의 최상위 수준으로 올려놓은 DB12에 축하를 보낸다. 변명 같은 건 전혀 필요 없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애스턴 마틴이 오랫동안 갈망해온 순간이었다. 

fact file | ASTON MARTIN DB12
동급 최고의 선택은 아니라 할지라도, 애스턴 마틴의 획기적 결과물로서 손색없다
가격 18만5000파운드(약 3억670만 원) 엔진 V8 3982cc, 가솔린 트윈터보 
최고출력 671마력/6000rpm 최대토크 81.5kg·m/2750~6000rpm 변속기 8단 자동, 뒷바퀴굴림
건조중량 1685kg 0→시속 100km 가속 3.6초 최고시속 325km 연비 N/A
경쟁모델 페라리 로마, 벤틀리 컨티넨탈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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