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브랜드의 세계화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왕촨푸 비야디(BYD) 회장이 얼마 전 자사의 신에너지차(전기차, 수소차 등) 누적 생산 500만 대 돌파를 기념하는 자리에서 한 말이다. 경쟁사 니오의 윌리엄 리 최고경영자(CEO)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중국 자동차 산업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화답했다.
2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중국 자동차 업체들의 해외 판로 개척 행보가 갈수록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인도와 동남아시아 등에서 기존 강자인 한국, 일본과 정면충돌하면서 신흥 자동차 시장을 둘러싼 ‘한중일 삼국지’가 치열해지는 모양새다.
중국 자동차 브랜드들은 인구 14억 명의 거대한 내수시장을 등에 업고 고속성장을 해왔다. 하지만 중국 경제성장률 저하 등으로 한계에 부딪히자 곧바로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저가 모델을 중심으로 수출에 주력한 결과 지난해는 독일을 밀어내고 일본에 이은 세계 2위 자동차 수출국이 됐다. 올 상반기(1∼6월)엔 전년 동기보다 76% 증가한 214만 대를 수출하며 일본(202만 대)마저 넘어섰다.
인도는 그런 중국의 제1타깃이다. 인도는 세계 1위 인구 국가인 데다 지난해 신차 판매량이 476만 대로 중국(2320만 대), 미국(1420만 대)에 이은 세계 3위 자동차 시장으로 급성장했다.
인도에서는 일본계 자본이 들어온 자국 기업 마루티스즈키가 시장의 거의 절반(47.8%·지난해 기준)을 차지하고 있고, 현대자동차그룹(17.4%)이 빠르게 성장하며 2위에 올라 있다. 최근 정의선 현대차 회장이 직접 인도로 건너가 현지 전기차 시장 선점을 강조했다. 생산기지 확대를 위해 미국 제너럴모터스(GM)로부터 마하라슈트라주 탈레가온 공장을 인수하기도 했다.
중국 비야디는 올해 초 2030년까지 인도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 40%를 차지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를 위해 인도정부에 10억 달러(약 1조3430억 원)에 달하는 대규모 전기차 및 배터리 생산기지 건설 투자 제안을 했다. 세계 1위 자동차 기업인 일본 도요타는 인도에서 4%대 점유율로 6위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480억 루피(약 7750억 원) 규모의 전기차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현지 공략에 기어를 올리고 있다.
일본 차가 안방 시장처럼 장악하고 있던 인도네시아, 태국 등 동남아 시장에서도 3국 간의 경쟁에 불이 붙고 있다. 전기차 전환 시기를 맞아 상대적으로 전기차에 강점을 가진 한국과 중국 업체들이 일본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을 가동한 현대차는 ‘아이오닉 5’ 등 전기차에 주력하면서 상반기(1∼6월) 1만8208대를 판매했다. 작년 같은 기간 대비 93.1% 오른 수치다. 이 기간 시장 점유율도 10위에서 6위로 끌어올렸다. 1위 도요타(15만6830대)와의 격차가 여전히 크지만, 추격전이 이제 막 시작됐다는 평가다.
비야디는 3월 태국 동부 라용에 연간 15만 대 규모의 공장을 착공했다. 동시에 베트남에도 전기차 부품 공장 건설을 추진하며 동남아 전기차 생산 밸류 체인을 구축하고 있다. 시장 조사 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최근 중국 자동차 제조사가 1분기(1∼3월) 동남아 전기차 시장의 75%를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이미 일본은 동남아 시장에 탄탄한 판매망과 부품사 네트워크를 갖춰 한중 기업이 쉽게 공략하긴 힘들 것”이라면서도 “그런 면을 알기에 중국은 소형 ‘가성비’ 전기차를 앞세우고 한국은 기술력을 내세운 중형 전기차로 공략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고 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