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배터리 매출 올해 첫 역성장… 中 가격-日 기술력 매서운 협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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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 배터리 업계 매출이 2010년 관련 매출을 집계한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줄어들 게 확실시된다. 성장 일변도를 달려온 배터리 업계가 첫 역성장에 직면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과 경쟁을 벌이는 중국 및 일본 배터리 업체들은 올해도 성장세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됐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부진)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과 기술력을 높이는 ‘배터리 종주국’ 일본 사이에서 한국이 넛크래커 신세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9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및 증권가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의 올해 매출은 각각 전년 대비 11.3%, 27.8% 감소할 것으로 추정됐다. 2010년 LG화학이 전지사업부문 매출을 집계한 이래, 2017년 SK이노베이션 내 배터리사업부가 만들어진 이래 모두 첫 역성장이다. 삼성SDI의 매출 성장률 전망치는 올 초 15.2%에서 이달 8일 0.7%로 급락했다.

반면 중국과 일본 업체들은 매출 증가세가 예상된다. 블룸버그 컨센서스에 따르면 중국 CATL의 올해 매출은 전년 대비 4.8%, BYD는 23.1% 성장할 것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부진에도 올해 중국 전기차 내수 시장은 30% 성장할 전망인 데다 해외에서 가성비가 우수한 중국 배터리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를 고객사로 보유한 일본 파나소닉홀딩스도 올해 매출이 1.6%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중국 제외)은 한중일 주요 기업 6곳이 전체의 92%를 점유하며 각축을 벌이고 있다. 현재는 K배터리 3사를 합산한 한국의 점유율이 가장 높지만 중국이 빠르게 추격해 오는 상황이다. 최재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전기차 트렌드가 최근 성능에서 가격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기에 한국도 ‘가성비 배터리’ 개발에 주력해야 한다”며 “민간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직접 보조금 지급 등과 같은 정부 차원의 지원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中 “1회 충전에 1000㎞” 日 “R&D 허브 구축”… 세계 1위 韓 위협
中, ‘가성비 LFP배터리’ 편견 깨… 日, 테슬라 탑재 ‘원통형’에 사활
“전기차 캐즘에 중저가 기술 각광… 반도체 못지않게 배터리도 중요
공급다변화 등 정부차원 지원 시급”


올해 4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2024 오토 차이나’에서는 중국 CATL이 공개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팩 때문에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배터리 성능을 좌우하는 에너지 밀도가 kg당 205Wh(와트시)에 달해 한 번 충전으로 1000km나 주행할 수 있다고 소개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저가형 LFP 배터리의 주행거리 기술력이 한국 업체가 주력으로 하는 고가형 삼원계 배터리의 중간 수준까지 올라왔다는 평가가 나왔다.

9일 외신에 따르면 일본 파나소닉은 내년까지 오사카를 일본 최대 배터리 연구개발(R&D) 허브로 구축할 계획이다. 차세대 공정에 특화된 최첨단 시설로 북미 등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싱크탱크다. 이미 올 4월 연면적 7900㎡, 높이 4층짜리 시설을 완공한 데 이어 내년 4월 추가 R&D 시설을 세우겠다는 목표다. 모두 합쳐 1100명의 전문 인력이 배터리 공정 고도화와 양산 장비 개발에 투입될 예정이다.

가성비를 앞세우던 중국이 기술력을 키우고 일본은 기술 주도권 지키기에 사활을 걸고 나서면서 성장세가 꺾인 K배터리의 ‘글로벌 1위’ 지위가 위협받고 있다. “한중일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위기에 한국 배터리가 도태되지 않도록 정부가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기술력 쫓아온 中, 더 앞서가려는 日


중국 기업들은 그간 내수용에 그치던 ‘가성비’ LFP 배터리의 판로를 유럽, 북미까지 확대하며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특히 4월 공개된 CATL의 배터리는 ‘값이 싸고 주행거리가 짧다’는 LFP에 대한 편견을 깼다. 시중에 나온 LFP의 에너지 밀도는 통상 kg당 160Wh 안팎인데 고가형인 삼원계(200∼350Wh)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이상영 연세대 화공생명공학과 교수는 “LFP 배터리가 밀도 200을 넘겼다는 것은 굉장한 성과”라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주력하는 니켈·코발트·망간(NCM) 등을 포함한 삼원계 배터리는 한중일이 시장을 삼분(三分)하고 있지만 LFP는 중국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배터리 업계는 앞으로 2, 3년 내 LFP 점유율이 삼원계를 앞지를 것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특히 미국 대비 규제가 느슨한 유럽 시장을 겨냥해 LFP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파나소닉은 테슬라가 탑재하는 원통형 배터리 분야에서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R&D에 사활을 걸고 있다. 파나소닉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원통형 배터리는 높은 안정성과 가격 장점 때문에 테슬라뿐 아니라 BMW, 볼보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탑재하고 있다.

현재 원통형 시장의 주류는 2170(지름 21mm, 높이 70mm) 배터리다. 파나소닉은 용량과 출력을 크게 높인 차세대 4680(지름 46mm, 높이 80mm) 시장에서도 선두 자리를 내놓지 않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캔자스주에 짓고 있는 공장에 기존 투자 액수와 맞먹는 40억 달러(약 5조5000억 원)를 추가 투자하는 방안이다. 3월 일본 배터리 업계 한 관계자는 닛케이아시아에 “LG에너지솔루션도 4680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지만 기술과 안전 면에서 업계를 선도하는 곳은 파나소닉”이라고 말했다. 파나소닉은 그룹 차원에서 배터리를 신성장 동력으로 낙점하고 ‘실탄’ 확보를 위해 자동차 전장(전자 장치) 등 기존 알짜배기 사업들도 대거 정리하고 있다.

● “반도체 못지않게 중요한 산업이 배터리”

중일 경쟁사들의 거센 공세 속에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점유율은 하락하고 있다. 9일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5월 중국 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3사(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의 점유율은 모두 합쳐 46.8%였다. 2021년(55.6%) 이후 매년 떨어지는 추세다. 반면 중국 CATL과 BYD는 2021년 합계 점유율 14.4%에서 올 5월 30.7%까지 올라왔다.

국내 배터리 업계가 수세에 몰린 가장 큰 이유는 전기차 캐즘 때문이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며 소비자들이 중저가 전기차를 찾자 전기차 원가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배터리에서도 중저가 기술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고부가가치, 고성능 중심으로 배터리 사업을 키워 오던 한국은 뒤늦게 가격 경쟁력까지 키워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중국이 주도권을 쥔 LFP 배터리는 삼원계 대비 30%가량 싸다.

하지만 한국산 LFP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프랑스 르노와 LFP 공급 계약을 맺었지만 중국 기업들과 비교해 규모가 한참 모자란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산 시점도 내년 말부터다. 삼성SDI, SK온도 2026년부터 LFP 배터리를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제조 원가도 차이가 난다. 중국은 리튬, 전구체 등 주요 광물 및 소재 공급망과 기술을 확보한 데다 인건비도 저렴하다. 반면 한국은 중국에 비해 여전히 해외 공급망 의존도가 높고 이는 단가 인상으로 이어지는 구조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과거 호황과 불황을 수차례 이겨낸 반도체와 비교할 때 배터리는 산업의 역사가 짧은 만큼 처음 맞닥뜨리는 위기에 대한 대응 노하우가 부족하다는 한계도 있다.

배터리 전문가들은 한중일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업 대 기업’ 싸움만으로는 시장 부진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배터리 단가를 낮추기 위한 핵심 공급망 다변화, 차별화된 기술력 확보를 위한 R&D 등 정부 차원의 지원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특히 전고체 등 차세대 배터리 분야에서의 시장 선점을 위한 보조금 등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배터리 업계 한 임원은 “배터리 공장은 장비 국산화 비율이 높아 공장을 지으면 연관된 부품 회사들도 함께 성장한다”며 “반도체 못지않게 배터리에 대해서도 국민적 관심과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넛크래커
호두를 양쪽으로 눌러 껍질을 까는 기계. 기계 사이에 낀 호두처럼 기술을 앞세운 선진국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후발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고전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박현익 기자 beepark@donga.com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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