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는 제원이 큰 의미가 없다. 굳이 제원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가치가 짐작된다. 그래서 롤스로이스를 바라보는 관점은 조금 다르다. 롤스로이스 역사와 가치에 보다 더 집중할 수 있다. 이런 본질적인 의미를 깊게 파고들면 브랜드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선택의 이유를 스스로 찾게 된다.
120년 역사의 롤스로이스 저력은 비스포크에서 나온다. 고도로 숙련된 장인들의 손길을 거쳐 고객이 원하는 작품을 빚는다. ‘스피릿 오브 엑스터시’ 역시 빼놓을 수 없다. 환희의 여신상이 주는 환상도 특별함을 더한다.
이번에 만나본 스펙터는 롤스로이스의 새 시대를 여는 최고급차다. 스펙터는 기존 롤스로이스가 추구해온 틀을 유지하되 새로운 시도가 더해져 무척 흥미롭게 다가왔다. 스펙터는 롤스로이스 첫 순수 전기차이자 2도어 쿠페 모델 역사상 처음으로 23인치 휠이 달렸다. 큰 휠은 차를 낮고 안정감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 쿠페의 역동적인 분위기를 한층 더 강조한다.
코치도어 크기도 키웠다. 너비가 1.5m에 이르는 코치 도어는 롤스로이스 중 가장 크다. 2도어의 불편함을 상쇄시키기 위해 크기를 최대로 키웠다. 그만큼 뒷좌석 타고 내리는 공간을 확보했다. 계폐 조작도 간단하다. 도어 핸들을 살짝 당기면 부드럽게 열리고 운전석에 앉아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자동으로 닫힌다. 계기판도 디지털로 바뀌었다. 디지털 계기판의 미래지향적인 이질감이 아닌 아날로그 방식을 유지해 보기 편했다. 롤스로이스 상징인 코치 도어 우산도 들어가 있다.
실내 공간에는 4796개의 별을 코치도어 안쪽에 새겨 넣은 ‘스타라이트 도어’와 5500개 이상의 별무리와 스펙터 네임 플레이트로 이루어진 ‘일루미네이티드 페시아’가 신비로운 밤하늘을 연출한다. 시간차를 두고 별똥별처럼 떨어지는 효과를 입혀 감성을 자극했다. 차량 소유주는 별 모양을 원하는 대로 디자인할 수 있다고 한다.
전기 동력계가 만나 롤스로이스의 부드러운 승차감은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달 서울 강남에서 강원 원주 약 200km를 오가면서 느낀 환상적인 승차감은 여운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주행을 시작하면 악기 하프에서 영감을 얻은 전기 모터 소리가 들려온다. 큰 차체에 대용량 고전압 배터리를 달아 무겁지만 원하는 만큼 자유자재로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특히 가속페달에서 발을 뗄 때 회생제동이 작동되는데 출렁거림 없이 편안하게 주행을 이어갔다. 길이가 5.5m에 이르는 거구여도 회전반경을 줄이는 설계덕분에 유턴을 하거나 급격한 곡선주로에서 다루기 수월했다.
뒷자리에서는 몸이 공중에 붕 떠다니는 것처럼 시승 내내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덕분에 방지턱은 물론, 어지간한 노면을 지나칠 때 실내는 미세한 진동 외에는 고요한 상태를 유지했다. 수작업으로 마감한 가죽 시트와 바닥의 양털 매트의 안락한 촉감도 안정감을 배가시켰다. 신발을 벗고 양털 매트에 발을 두면 최고급 1인용 소파에 앉아있는 기분도 든다. 스펙터는 1000개 이상의 차량 기능이 서로 유연하게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혁신적인 ‘탈중심화 인공지능’ 기술과 운전자 상황과 도로 환경에 맞춰 정확하게 반응하는 ‘플레이너 서스펜션’을 탑재해 탁월한 승차감을 완성한다.
롤스로이스는 소음 차단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다. 전기차 기술적 특성을 고려해 다른 소음이 들리지 않도록 세밀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차체 아래에 설치한 고전압 배터리가 방음재 역할을 하는데도 700kg 가까운 무게의 방음재를 넣었다.
스펙터는 브랜드 역사상 가장 까다로운 개발 과정을 견뎠다. 총 250만㎞를 달리며 400년 이상 분량의 시뮬레이션 데이터를 축적했다. 혹서기·혹한기 테스트를 통해 영하 40도에서 영상 50도에 이르는 극한의 온도를 견디고 빙설·사막·고산지대·대도시 등 다양한 주행 환경과 맞섰다.
스펙터의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는 복합 383㎞다. 파워트레인은 최고 출력 430㎾와 최대 토크 91.8㎏·m에 달하는 성능을 발휘한다. 스펙터 가격은 6억2200만 원부터 시작된다.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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