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열 갖춘 대형 SUV를 찾는다면?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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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진 휠베이스와 뒷오버행으로 2·3열 공간 활용도 높아져
유럽산 동급 차량들과는 다른 지프만의 매력 갖추고 있어

언제부터인가 국내에서도 3열 공간까지 갖춘 대형 SUV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우리네 생활 환경에서 싼타페 정도면 충분한 크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무색하게 팰리세이드는 출시와 동시에 폭발적으로 판매됐다. 비단 국산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1억 5천만 원 이상의 고가가 훌쩍 넘어가는 BMW X7과 벤츠 GLS도 엄청난 판매량을 보인다.

그랜드 체로키 L의 후측면. / 권혁재 PD

지프의 그랜드 체로키 L은 그런 수요에 제법 적합한 차량이다. 기본형 그랜드 체로키와 비교해 전장이 320mm 증가했는데, 125mm는 휠베이스에 투입됐고 나머지는 후면부의 크기를 늘리는 데 집중했다. 그러면서 그랜드 체로키에는 없던 3열을 집어넣었다. 하위 트림인 오버랜드에는 2열에 벤치 시트가 적용돼 7인승, 상위 트림은 서밋 리저브는 2열 독립식 시트가 적용돼 6인승이다. 시승 차량은 서밋 리저브로 2열 독립식 시트가 적용됐다.

흔히 3열을 갖춘 미국산 SUV라고 생각하면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나 쉐보레 타호 같은 풀 사이즈 SUV를 생각하기 쉽지만 그랜드 체로키 L은 BMW X7이나 벤츠 GLS보다 전장이 살짝 더 긴 수준이다. 오히려 전폭과 전고는 그들과 비교해 조금 더 작은 편에 속한다. 풀 사이즈 SUV만큼 운전이 부담스럽지는 않다.

그랜드 체로키 L의 2열 공간. / 권혁재 PD

2열과 3열의 공간을 추가로 확보한 만큼 공간이 매우 여유롭다. 리클라이닝과 슬라이딩 기능을 갖춘 2열 시트는 조정 폭이 제법 큰 편이다. 슬라이딩을 끝까지 뒤로 밀었을 때와 앞으로 끝까지 당겼을 때의 차이는 주먹 두 개 반 이상만큼 차이가 난다. 리클라이닝 역시 벌 받는 자세처럼 90도 각도에 가깝게 세울 수도 있고 가장 눕혔을 때에는 여타 다른 수입차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많이 눕혀진다. 탑승자가 불편한 자세를 고수하지 않는다면 헤드룸, 레그룸, 발 공간 모두 여유롭다. 거기에 동급의 수입SUV에서는 보기 힘든 2열 통풍 시트까지 챙겼다.

독립식 시트가 적용되면서 양 시트 가운데에는 컵홀더와 수납공간 등이 마련된 센터 콘솔 박스가 생겼다. 최상단 부분은 180도 가깝게 열려 풀 폴딩 했을 때 평평한 공간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컵홀더 주변 공간이 블랙 하이 글로시로 마감돼 자잘한 상처에 예민한 점은 아쉽지만 활용성 자체는 나빠 보이지 않는다.

그랜드 체로키 L의 3열 공간. / 권혁재 PD

3열 공간도 전체적으로 넉넉한 편이다. 4륜구동 탑재로 2열보다 바닥이 높아져 무릎이 다소 들뜨고 발 공간이 부족한 단점은 있지만 이는 4륜구동을 탑재한 내연기관 SUV라면 모두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외의 공간은 다 넉넉하다. 박스형 디자인으로 천장이 낮은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머리 공간을 살짝 파서 헤드룸이 널널하다. 뒷머리가 트렁크 경첩 부분에 살짝 닿기는 하지만 헤드레스트 위치와 거의 다르지 않다.

통상적으로 3열 시트의 방석 길이는 두 뼘이 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엉덩이만 겨우 걸칠 수 있는 옹색한 구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그랜드 체로키L의 3열 시트는 두 뼘 반 정도의 방석을 가지고 있다. 1열, 2열 시트의 방석 크기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열과의 레그룸도 주먹 하나 이상 정도는 확보돼 있다. 넓은 쿼터 글라스와 C필러에 장착된 에어 벤트로 인해 갇힌 공간임에도 크게 답답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양쪽으로 USB C타입과 A타입 단자가 마련되어 있으며 팔받침 공간도 우레탄폼으로 푹신하게 마감되어 있다. 일반적으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저렴한 소재로 마감하는 공간이다. 이렇게까지 3열을 세심하게 마감하는 차들은 생각보다 흔치 않다.

그랜드 체로키 L의 2열, 3열 공간을 모두 폴딩했을 때 만들어지는 공간. / 권혁재 PD

2열은 수동식 조절 시트가 적용됐고 3열은 전동식이다. 트렁크 내부에 2열과 3열 시트를 폴딩 할 수 있는 버튼이 마련되어 있어 위의 사진과 같은 구성을 만들기 매우 편하다. 특히 3열 시트를 접고 펼 수 있는 버튼은 후륜 휠 하우스 앞부분에도 있다. 즉 2열 문을 열고 3열 시트를 접고 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광활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저 상태에서 트렁크에 들어가 앉았을 때, 허리를 꼿꼿하게 편다면 머리가 천장에 닿겠지만 차체에 몸을 기댄다면 불편하지 않게 앉을 수 있을 정도다. 캠핑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면 썩 마음에 들만하다.

그랜드 체로키 L에 적용된 3.6ℓ 펜타스타 엔진. / 권혁재 PD

파워트레인은 V6 3.6ℓ 자연흡기 방식의 펜타스타 엔진과 ZF에서 공급받은 8단 자동변속기가 결합됐다. 숏바디 모델에는 2.0ℓ 과급 엔진을 탑재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모델 4xe도 있지만 L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숏바디임에도 불구하고 4xe의 공차중량이 2.5톤이 넘는다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참고로 그랜드 체로키 L의 공차중량은 2,325kg이다.

배기량 대비 출력 상승을 위해 대부분의 차량들이 과급 엔진을 사용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V6 3.6ℓ 자연 흡기 엔진은 귀한 존재다. 최고 출력은 286마력은 6400RPM에서 나오며 최대 토크 35.1kg.m은 4000RPM에서 나온다. 동급의 3.0ℓ 과급 엔진과 비교하자면 다소 초라해 보일 수 있는 수치다. 자연 흡기이기 때문에 출력 분포도 높은 회전수에서 나온다. 그래서 시내 구간에서는 높은 RPM을 자주 쓰는 편이다. 과급 엔진 차에 익숙해졌다면 영 못 마땅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대배기량 자연 흡기에 대한 향수가 있다면 펜타스타 엔진이 가져다주는 엔진 질감은 황홀한 느낌을 안겨줄 수도 있다.

그랜드 체로키 L의 대시보드. / 권혁재 PD

실크와 같은 부드러운 느낌을 전달하는 차는 아니다. 오히려 엔진 소리와 진동이 어느 정도 운전자한테 전달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6기통 특유의 ‘그릉그릉’하는 소리와 진동은 불쾌하다기보다 이 차가 대배기량 자동차임을 한 번에 알아차릴 수 있게 한다. 도심과 같은 저속 상황에서 가속 페달을 밟으면 어느 덧 회전수는 2천RPM을 상회한다. 과급 엔진의 단점인 터보 래그가 없기 때문에 가속 페달을 밟는 만큼 정확한 피드백을 운전자에게 전달한다. 그 느낌이 운전자에게는 상당히 호쾌하게 다가오는데 마치 지프 브랜드를 형상화한 듯한 주행 질감이다. 마초적이지만 매력적이다.

고속 항속으로 넘어가면 엔진은 차분해진다. 시속 100km에서는 1500RPM 내외의 회전수를 보여주는데 주행 질감이 깔끔하다. 하지만 비교적 낮은 최고 출력과 무거운 무게, 높은 회전수에서 발휘되는 출력 분포로 인해 아주 높은 속도로 올라가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리고 높은 속도의 영역에서는 가속감도 현저하게 줄어든다. 하지만 이 차의 생김새와 목적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초고속 주행 영역으로 주행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 차는 지프다. 온로드 보다 오프로드에서 빛을 발하는 차량이다.

초고속 영역에 대한 욕심만 가지지 않는다면 결코 답답하게 느껴질 성능은 아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서 ZF의 8단 변속기가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운전자의 의도에 맞게 변속기가 그때그때 빠르게 변속을 진행한다. 그렇다고 해서 변속 충격이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아마 계기판을 보지 않는다면 변속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가능성이 높다.

완도대교를 배경으로 찍은 그랜드 체로키 L. / 권혁재 PD

그랜드 체로키 L에는 에어 서스펜션이 장착되어 있는데, 고속에서의 승차감은 의외로 탄탄한 느낌을 지니고 있다. 미국산 차나 미국을 주 시장으로 공략한 일본차를 탔을 때의 다소 출렁이는 승차감과는 반대 성향이다. 오히려 이 느낌은 고속주행 안정성을 높인 유럽산 차량과 비슷하다. 그랜드 체로키 L은 의외로 바디 온 프레임이 아닌 모노코크 바디인데, 플랫폼이 같은 스텔란티스 소속 알파로메오의 조르지오 플랫폼이다. 예상 외의 궁합으로 이런 승차감이 나오나 싶기도 한데, 그렇다고 고속에서 움직임이 아주 뛰어난 편은 아니다. 다시 한번 이 차가 전장이 5m가 넘고 공차중량이 2.3톤이 넘어가는 SUV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시내 주행과 같은 저속 상황에서는 제법 부드러운 승차감을 보여준다. 과속방지턱을 넘거나 요철을 넘는 상황에서도 날카로운 충격을 전달하지 않는다. 차체가 크고 무거운 경우에는 하중으로 인해 내려찍는 듯한 승차감이 연출될 때도 있는데 그랜드 체로키 L에서는 느끼지 못 했다. 자세하게 느껴보면 전륜보다 후륜의 서스펜션 세팅이 조금 더 무른 편이다. 동승자들도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을듯 하다. 다만 3m가 넘어가는 휠베이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후륜 조향을 갖추고 있지 않은 점은 좁은 골목이나 주차하는 상황에서 단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그랜드 체로키 L의 측면. / 권혁재 PD

그랜드 체로키 L은 한국 시장에서는 지프의 플래그십 모델이다. 미국에서는 웨고니어라는 상위 모델이 존재하지만 국내 시장에 선보이지는 않았다. 그만큼 상품의 구성이 나쁘지 않은 편이다. 특히 인테리어 소재와 편의 사양들, 무엇보다 공간은 같은 가격대의 차량들에서는 넘볼 수 없는 수준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BMW X7이나 벤츠 GLS보다 5천만 원 이상 낮은 가격대도 엄청난 메리트다.

하지만 유럽 자동차에 익숙하고 미국차가 낯설다면 구매 전에 진지하게 시승해 볼 필요가 있다. 이야기했듯이 이 차는 마냥 부드러운 차와는 거리가 멀다. 약간의 거친 맛도 갖추고 있는 전형적인 미국스러운, 그리고 지프다운 자동차다. 하지만 장담하건데 이 맛에 매료된다면 아마 대배기량 자연흡기 미국차만 찾게 되는 본인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랜드 체로키 L 시승 영상. / 유튜브 채널 [카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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