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와 法] 교통사고 과실비율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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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첨단 기능을 결합한 자동차에 결함과 오작동이 발생하면, 원인을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급발진 사고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자동차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고 유형도 천차만별입니다. 전기차 전환을 맞아 새로 도입되는 자동차 관련 법안도 다양합니다. 이에 IT동아는 법무법인 엘앤엘 정경일 대표변호사(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와 함께 자동차 관련 법과 판례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는 [자동차와 法] 기고를 연재합니다.

출처=엔바토엘리먼츠크게보기출처=엔바토엘리먼츠

교통사고에서 과실비율은 사고 발생 시 각 당사자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지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교통사고 과실비율은 ▲교통법규 위반 여부(신호위반, 속도위반 등) ▲사고 상황 및 위치 ▲기상 조건 ▲ 사고 관련 증거(블랙박스, 목격자 등)와 같은 요소를 고려해 산정합니다.

수사기관과 형사재판에서는 운전자의 주의의무 위반 여부로 가해자와 피해자 정도를 판단하며 구체적인 과실 비율 판단은 하지 않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운전자의 주의의무 위반 여부만을 판단해 기소여부를 결정하고 형사재판은 운전자의 주의의무 위반에 대해 검사가 합리적으로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입증했는지를 살핍니다. 이후 판사가 입증됐다고 판단하면 유죄,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 무죄 판결할 뿐입니다. 따라서 구체적인 과실 비율 판단은 경찰, 검찰, 형사재판이 아닌 1차적으로는 보험사에서 이뤄집니다. 궁극적으로는 민사재판에서 최종 결정이 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민사재판에서 과실 비율을 판단할 때, 가해자 과실만이 아닌 피해자의 과실도 함께 고려합니다.

즉 불법행위에 있어서 과실상계는 공평 내지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해서 피해자 과실을 참작하는 것입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과실 정도, 위법 행위의 발생 및 손해의 확대에 관해 어느 정도 원인을 제공했는지 등의 제반 사정을 고려해 배상액의 범위를 정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불법행위에서 가해자의 과실이란 사회통념상, 신의성실의 원칙상, 공동생활상 부주의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1다58269 판결).

예를 들어 가해자가 과속과 중앙선 침범으로 정면충돌 사고를 일으켰거나 신호대기 중인 차량을 뒤에서 과속으로 추돌하는 사고를 일으켰더라도 피해자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면 손해의 확대에 기여한 것입니다. 따라서 피해자에게도 일부 과실 10~20%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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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실에 대한 입증책임이 형사재판에서는 검사에게 있고 민사재판에서는 가해 운전자에게 있기 때문에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의 결과가 외견상 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례로 적색신호인 횡단보도 부근에서 버스 사이로 무단횡단하던 보행자가 버스전용차로로 진행하던 버스에 치여 사망한 사고에서 재판부는 다음과 같이 판단했습니다. 판결문에서 “운전자는 통상 예견되는 사태에 대비해 그 결과를 회피할 수 있는 정도의 주의 의무를 다했고 통상 예견하기 어려운 이례적인 사태의 발생을 예견해 이에 대비해야 할 주의 의무까지는 없다고 본다. 따라서 운전자가 사고 당시 업무상 주의 의무를 위반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보아 운전자에게 무죄를 판결(서울남부지방법원 2012. 7. 4. 선고 2013고단1033판결, 서울남부지방법원 2013노1243 판결, 대법원 2015. 1. 29. 선고 2014도11770 판결)한다”는 선고가 먼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민사재판에서는 운전자가 전방주시 의무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로 보아 버스 운전자의 과실을 35% 인정(2015. 10. 27. 선고 2013가단172326 판결)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차이는 재판 외에서도 나타납니다. 손해보험협회의 과실비율 인정 기준을 보면, 주취자가 도로상에 누워있어 발생한 교통사고에서 주취자의 기본 과실을 40%로 판정, 운전자 과실을 더 크게 보고 있습니다. 운전자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판정입니다.

손해보험협회의 과실비율 인정 기준 / 출처=손해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의 과실비율 인정 기준 / 출처=손해보험협회

이러한 과실 비율들에 대한 판단은 제로섬 게임과 같이 피해자와 가해자 어느 일방에 유리하면, 일방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과실 비율은 확정된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이지만, 다른 어떤 법률적 분쟁보다 판단자의 주관이 많이 개입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10% 정도의 과실 비율 편차는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따라서 과실 비율을 다투는 경우, 피해자 입장에서는 모든 손해를 보상 내지 배상받지 못하고 일부 과실이 인정되는 억울한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피해자 입장에서 이같은 억울한 상황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방어운전과 양보운전을 습관화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글 / 정경일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

정경일 변호사는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제49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제40기)했습니다. 대한변호사협회 등록, 교통사고·손해배상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법무법인 엘앤엘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입니다.

정리 / IT동아 김동진 기자 (kdj@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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