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명 끝나버린 이 장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스테이션 왜건은 수명을 다한 장르다. 주행 안정성과 적재성을 겸비한 왜건이지만,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세단과 SUV 앞에서 좀처럼 기를 펼 수 없었다. 세단과 비슷한 전고에 뒤를 길게 늘려 추가 공간을 확보한 왜건의 형태는 탄탄한 마니아층을 갖고 있긴 하나, 대중의 구미를 당기진 못했다. 결국 실용 대신 유려한 곡선 디자인이 주는 감성을 강조한 ‘슈팅 브레이크(Shooting Brake)’의 형태로 종종 도로에서 눈에 띄곤 한다.
2022년 제네시스는 돌연 ‘G70 슈팅 브레이크’를 내놓았다. 우리나라에선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후륜구동 기반의 왜건이다. 슈팅 브레이크는 과거 유럽 귀족들이 사냥할 때 사용하던 2인승 마차(brake)에서 유래한 단어로 2도어 쿠페형(차량 뒤를 날렵하게 깎은 형태) 왜건을 일컫는 것이 정론이다. 그러나 차 이름 짓는 것은 제조사 맘이기 때문에 G70을 기반으로 만든 4도어 왜건의 이름도 슈팅 브레이크가 되었다. 사실 슈팅 브레이크란 이름은 메르세데스 벤츠가 w218 CLS 왜건에 먼저 사용했다. 훌륭한 선례를 찾아 답습한 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이거 말곤 그다지 박수 칠만한 부분이 없다.
”저는 왜건이랍니다”라고 주장하지만 제원이 세단 G70과 동일해 2열은 장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뒷부분을 들어 올려 트렁크 공간은 확보했지만 또 D필러 윈도우는 없다. 그 덕분에 이게 해치백인가 왜건인가 싶은,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외모를 갖게 됐다.
타이칸 크로스투리스모의 잘생긴 실루엣을 닮을 거면 윈도우까지 닮았어야 했다. 2열과 트렁크 사이 작은 디테일. 고도로 발전한 기술의 총체적 집약체가 타이칸이라면 G70 슈팅 브레이크에선 유럽 판매 실적을 위해 급조한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긴다. 2리터 4기통 가솔린 단일 사양도 참 아쉽다. 연식 변경으로 500cc 올렸는데,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날렵하게 다듬은 디자인에 붙이기엔 둘 다 아쉬운 성능 아닌가.
왜건의 시사하는 바는 깊다. 개성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 없는 멋쟁이이자 실용성까지 챙기는 실속파다. 게다가 볼수록 매력적인 외모는 덤. 푸조 508sw, 페라리 GTC4 루소, 볼보 크로스컨트리, 아우디 RS6 아반트, BMW 3시리즈 투어링처럼 고금을 훑어보면 역작들 참 많은데, 우리나라도 좀 제대로 된 거 안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