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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수가없다’ 수상 낭보 울릴까…결과는 6일 폐막식에서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총 21편 영화 공개 직후 평단의 호평 집중

정겨운 손맛과 특별한 한 끼가 있는 이모카세 맛집 4곳

이모카세 맛집 BEST4 이모카세는 전문 셰프 대신 이모 같은 친근한 주인이 차려주는 정성 가득한 코스 요리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따뜻한 인심과 손맛이 돋보인다. 제철 재료를 활용한 음식들은 소박하면서도 깊은 풍미를 전한다. 집밥 같은 편안함과 특별한 코스의 재미가 동시에 느껴진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즐기는 식사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지금부터 이모카세 맛집 4곳을 알아보자. 한 공간에 여러 […]

금호리조트, ‘자원 순환의 날’ 맞아 의류 기부 캠페인 벌여

금호리조트가 9월 6일 ‘자원 순환의 날’을 맞아 의류 기부 캠페인 ‘가치 있는 여행: 지구를 위한 체크아웃’을 실시한다. 9월 1일부터 7일까지 진행하는 이번 ESG 캠페인은 금호리조트가 사회적 기업 ‘굿윌스토어’와 함께 2년째 협력해 운영 중인 중고 의류 기부 활동의 일환이다. 투숙객들이 사용하지 않는 의류를 기부해 환경 보호 활동에 동참하고 의류 판매 수익은 장애인 고용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

진짜 돈 많은 사람이 티내지 않는 4가지

겉으로 화려하게 보이는 사람이 꼭 부자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짜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살아간다. 그들은 부를 과시하기보다 지키고 관리하는 데 집중한다. 진짜 부자는 의외의 부분에서 티를 내지 않는다. 1. 외모와 소비에서 과시하지 않는다 진짜 부자는 명품을 과도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필요할 때 좋은 물건을 사지만 보여주기 위해

참치김치찌개 만만한 김치찌개 레시피 쉬운 우리집 집밥 찌개

참치김치찌개 김치찌개 레시피 집밥 찌개 국물요리 오늘 가시장미네 집밥 요리는 만만한 김치찌개 참치김치찌개로 보여드려요. 쉬운 우리 집 집밥 찌개요리 중 하나로 요거 하나 끓여두면 한 끼 든든해요. 아니, 두 끼가 든든해요. 밥도둑으로 추천해 드려요. 이번에 저는 무스비를 만들고 남은 스팸도 함께 넣고 끓여 냈더니 감칠맛이 더해져 더 맛있게 먹었어요. 오늘부터 개강이라 조금 일찍 일어났는데 새벽까지 비가 내려서 인지 오늘 아침은 조금 시원함도 있고 좋으네요. 아침 식탁에서 제가 "9월이니 조금 시원해지지 않을까?" 했더니 "저는 계속 더울 것 같아요~" 하는 남자 3호 올여름 더위는 내년보다는 덜 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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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천 원 한 장”으로 재벌 회장까지 갔지만 한순간에 쫄딱 망한 이...

"3천 원 한 장"으로 재벌 회장까지 갔지만 한순간에 무너진 '나산그룹' 안병균 회장 한국 현대 경제사에는 맨주먹으로 시작해 재벌 반열에 오른 인물들이 있다. 그중 안병균 전 나산그룹 회장의 삶은 드라마 같은 성공과 비극을 동시에 품고 있다. 단돈 2,700원으로 상경해 재계 57위 그룹을 일궈냈지만, IMF 한파 앞에 무너진 그의 역정은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 맨손으로 상경, 음식점으로 첫 성공 1948년 전남 함평에서 태어난 안병균은 10남매 중 여섯째였다. 18세 되던 1966년, 그는 단돈 2,700원을 쥐고 서울로 올라왔다.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에 불과했지만, 공사장 일용직, 중국집 배달원, 영화 엑스트라까지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종잣돈을 모았다. 1969년 광화문 인근에 중국집 ‘왕자관’을 열며 첫 사업에 도전했고, 이어 일식집 ‘해녀’로 돈을 벌었다. 그러나 1974년 화재 사고로 종업원이 숨지고 본인도 중상을 입으며 벼랑 끝에 내몰렸다. 극장식당으로 대박…의류업으로 대도약 재기의 무대는 명동이었다. 1975년 극장식 비어홀을 열어 다시 일어섰고, 1977년 ‘초원의 집’, 1979년 ‘무랑루즈’를 연이어 성공시켰다. 특히 코미디언 이주일을 무대에 세우며 “일단 한번 와보시라니까요”라는 유행어를 남겼을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1980년대에는 의류업에 뛰어들었다. 1982년 나산실업을 세우고, 여성복 브랜드 ‘조이너스’를 출시했다. 이 브랜드는 1994년 단일 브랜드 매출 1,000억 원을 기록하며 기네스북에 오르는 신화를 썼다. 재벌 반열에 오른 나산그룹 안병균은 ‘조이너스’ 성공을 발판으로 그룹을 키워나갔다. 건설, 유통, 금융, 방송, 프로농구단까지 영역을 넓히며 1990년대 중견 재벌로 성장했다. 1990년에는 소득세 23억 원을 납부하며 삼성·현대 총수를 제치고 ‘대한민국 최고 납세자’라는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1997년에는 13개 계열사, 매출 1조 3천억 원을 기록하며 재계 57위에 올랐다. 단돈 3천 원으로 시작해 재벌 총수가 된, 전형적인 ‘맨주먹 신화’였다. IMF 한파, 모든 것을 앗아가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과도한 차입과 무리한 백화점 확장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영동·수서·천호 등으로 백화점을 늘렸지만, 불황 속에서 매출은 따라주지 못했다. 1998년 1월, 결국 나산그룹은 부도를 선언했다. 한때 1조 원을 넘나드는 매출을 자랑했던 그룹은 하루아침에 무너졌고, 안병균 회장의 신화도 막을 내렸다. ⚖ 몰락 이후의 삶과 교훈 그룹 해체 이후 그는 횡령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2004년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현재는 가족 기업과 호텔 감사직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안병균의 인생은 무리한 확장과 빚 경영의 위험성, 그리고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가 한 개인과 기업에 어떤 파괴력을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핵심 정리 1966년 단돈 2,700원으로 상경해 재벌 총수로 성장 음식점·극장식당 성공 → 의류 ‘조이너스’로 대박 1990년 최고 납세자, 1997년 재계 57위 그룹 달성 IMF 외환위기와 무리한 백화점 확장으로 그룹 몰락 지금은 사업 일선에서 물러나 가족 기업 지원